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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Oct 08. 2021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가 나타났다

서툰 엄마는 마음이 조급했다. 아일랜드에 도착하고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금발머리, 파란 눈의 아이들이 가득한 교실로 현이를 밀어 넣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현이는 학교에 가는 걸 즐거워했다. 쉬는 시간에 공을 찰 수 있어 좋고, 학교 마당을 뛰어 다니다 솔라솔라 흘러나오는 신기한 말소리가 재미있다고도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냐고 묻자, 말은 몰라도 무슨 뜻인지는 안다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곤 했다.

입학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담임선생님이 아이 편에 메모지를 보내왔다. 면담을 청하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현이는 한국에서 유치원 다닐 때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클 정도로 월등하게 발육이 좋았다. 힘도 세고 달리기도 잘하고 유난히 활동적인 아이라 종종 선생님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낮잠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놀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야단을 맞고, 둘이 놀다가 서로 밀치면 힘센 현이는 괜찮은데 상대 아이는 나동그라지기 일쑤라 늘 가해자로 몰리는 신세였다. 유치원 선생님은 엄마인 나를 불러 아이가 과격하다고 불평하는 일이 잦았다. 색칠 공부보다 팽이치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책 읽기보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질타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답답했다.

야단은 엄마가 맞을 테니, 우리 현이는 기죽지 말고 즐겁게 뛰어 놀아줘. 초라한 엄마의 자구책이었다. 유치원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혹시나 우리 현이가 마음을 다쳤을까 싶어 격려와 칭찬을 하며 꼭 껴안아주곤 했다. 어쩐지 내가 이중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불편하기도 했다. 선생님 앞에서는 한없이 양순하고 겸손한 학부형의 자세로 마치 속죄라도 하는 양, 아이를 잘 타일러서 얌전해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집에 오면 야단은커녕 아이의 기를 살려주느라 급급했으니 말이다.

나는 설거지가 쌓여 있어도, 작은 아이가 칭얼거려도, 현이가 나가서 놀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오케이! 현이의 탈출 같아 보이는 외출을 응원하며 같이 신나게 뛰어 놀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밖이 어두워져도 아이가 원하면 무조건 같이 나가 놀았다. 나는 점점 더 많이 사과를 해야 했다.

지난날의 기억이, 선생님의 메모를 받아 든 순간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언어로 새롭게 시작할 줄 알았다.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한국에서처럼 아이의 의견도, 입장도 무시한 채 몰아세우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나는 현이에게, 선생님이 왜 메모를 주셨는지 묻지도 않은 채, 영어로는 미안하다는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온갖 사과의 문장을 짜 맞추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 말을 선생님이 잘 알아듣기는 하실라나?

선생님은 한참을 설명했다. 모두 현이에 관한 얘기인데 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선생님과의 필담이 시작되었다.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힘든 아이의 고충을 위로하듯 친절하게 말을 꺼낸 선생님이 결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이가 산만하고 시끄러워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현이에게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수업이 재미 없으면 그냥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현이는 한결 학교 생활이 편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면담 요청이 왔다. 선생님은 의례 하던 인사도 생략하고 분노를 토하듯 말을 이어갔다. 일주일 전부터 현이를 뒤로 돌아앉게 했는데, 삼사일 지난 후 다시 앞을 봐도 좋다고 했더니 현이가 싫다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I am happy look back.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뒤를 보는 게 해피하다고 한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뒤에는 선생님이 없으니까’라고 했다고.

순간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영어를 몰라서 한국말을 하는 것을 소란스럽다고 이제 겨우 일곱 살 아이를 뒤돌아 앉게 했으니, 친구들이 얼마나 현이를 우습게 보았을까. 얼마나 놀렸을까. 그보다 그 어린 것이 어미인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으니 그 속은 또 오죽했을까?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어서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젊은 여자 선생님이 오셨다. 나는 새 선생님이 오셨으니 인사를 가서 앞으로 현이로 인해서 선생님이 좀 고생스러울 수 있다는 걸 이실직고하고 미리 양해를 구해 보고자 했다.

“선생님, 현이는 지난 시월에 아일랜드에 왔는데 아직 몇 개월 되지 않아서 영어를 잘 못합니다. 선생님께서 좀 이해해 주시고, 혹시 수업에 방해가 되면 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그림을 그리게 해 주시면 좀 조용히 앉아 있을 거예요. 괜찮다면요.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사과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지난 며칠 동안 저는 현이한테 너무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제가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에게서 배우고 있습니다. 부탁이 있는데 몇 가지 단어를 여기 종이에 좀 써 주세요. 식사는 맛있니? 화장실 갈래? 어디 아프니? 재미있니? 잘했어! 멋있어! 이런 거요.”

진짜가 나타났다. 나는 진짜 선생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감동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영어로 한국말을 소리 나는 대로 써 주시면 제가 잘 활용해 볼게요. 그럼 좀 현이한테 덜 미안할 것 같아요. 저는 스무 살이 훨씬 넘었고, 현이는 이제 겨우 일곱 살도 안 되었는데 제가 너무 현이한테 의지하는 것 같아서요. 저도 조금은 노력해야죠. 현이가 저렇게 열심히 영어를 알아들으려 노력하는데 말이에요. 정말 아이들은 너무 경이로워요. 현이는 아름다운 소년이에요!”

선생님은 아이 노트에 자주 메모를 보내왔다. 현이가 축구를 잘한다고, 말썽쟁이 친구를 혼내 주었다고, 약한 친구를 도와주는 정의로운 아이라고, 궁금한 건 참지 않고 물어봐 준다고, 반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다고, 피카츄 그림카드를 그린 걸 보면 진짜 카드보다 더 생동감 있다고, 숫자 계산이 엄청 빨라서 계산기 같다고, 좋아하는 것에는 누구보다 집중을 잘 한다고……. 셀 수 없이 많은 칭찬을 메모지에 실어 날랐다. 그해 여름 아이는 여름방학을 해서 굳게 닫친 교문 앞에서 언제 학교에 다시 갈 수 있냐고 몇 번이나 물어 보았다. 뒤를 보는 게 해피했던 기억은 까마득히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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