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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Jul 13. 2020

가지 같은 시간

마지막 페랑디



끝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니 다시 우리가 만나면 끝이 오는  알면서도 우리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출이 빨라서 새벽 5시가 넘으면 햇빛이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 들어온다.  앞에 가지런히 놓인 전날 말끔하게 다려놓은 페랑디 유니폼과 도구가방을 한참 바라보았다. 2019 10 페랑디  등교날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하게 다르지만 다른 느낌으로 설레고 벅차다. 나에게는 이제 꿈이 생겼고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 그들과 프랑스 생활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마지막 7일의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펜을 잡았다.



반년만에 다시 등교하는 학교가는길, 아침 6시



다시 우리가 만났을 때 두 계절이 지나간 반년이 훌쩍 넘어 버린 시간이었다. 모두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었다. 우리 막내이자 동네 친구였던 줄은 그 사이에 약혼을 해서 여자 친구와 파리 외곽으로 이사를 갔고, 하나타는 가끔씩 전 직장인 약국에서 소일거리를 한다. 시리엘의 안경은 얼굴을 반쯤이나 가리는 절반만 한 네모난 금색 뿔테로 바뀌었다. 엘로디는 일주일 내내 '차(茶)의 애호가'라는 책을 들고 다녔는데 학교로 돌아오기 전 일주일 동안 차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다며 일주일 내내 자랑을 했다. 학교를 자전거로 통학하는 엠마는 프랑스 "어머이날"에 자신의 남편에게 값비싼 자전거를 선물 받았는데 실물로 보니 더 근사했다. 휴직했던 에어프랑스 승무원 마날은 복직하여 다시 일주일에 두 번씩 비행기에 오른다. 몇몇의 친구들은 다시 제과점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제과 초급자들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내 이야기를 글로 풀로 나갔고 그 덕분에 조금 더 건강한 마음과 풍요로운 생각을 가졌다.




다시 돌아온 학교, 반가워 페랑디



엘로디가 들고 다닌 차에 관련된 책, 친구들과 점심식사


코로나로 인한 변화, 다시 시작



7일간 사용할 새로운 개인 사물함을 다시 배정받아야 했다. 지하철로 15분이면 가는 거리를  시간이나 일찍 서둘러 도착했다. 도구가방과 유니폼, 그리고 조리화등을 챙기니 양손이 한가득이다. 반갑고 아쉬운 마음에 학교 주변을  바퀴 맴돌았다. 예정대로라면 4개월의 실습이 끝나고 올해 5월에 학교에서 다시 만났어야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검은색 블라우스 차림의 여성이 자기 상체만  도구가방을 어깨에 메고 빠른 걸음으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틀어 묶인 금발머리, 안경테가 네모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금빛이 반짝인다. 목소리만 듣고 보지 않아도 이제 나는 그녀가 시리엘인줄   있다. 안고 얼굴을 맞대어하는 인사를 해야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안부를 전했다. 하타나가  뒤로 오더니 우리를 덥석 껴안았다. 코로나가 무색하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고, 서로 보고 싶어 했는지.



기존 12명씩 2그룹이 작업하던 실습실은 작업대에 6명씩 작업할  있도록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프랑스인들이 마스크를 쓴다는 것이 얼마큼 놀라운 일인지 안다면 셰프를 비롯한 친구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광경이 신기할 수 밖에 없다. 서로 조심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눈이 마주치면 코밑으로 걸쳐진 마스크를 재빠르게 다시 올리곤 했다. 더워진 날씨만큼 마스크를 쓰고 주방에서 작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지 모른다. 창밖의 구름도 가만히 우리의 수업을 듣기 위해 기웃거린다.



학교 중앙에 정원을 만들기 위한 공사, 그리고 작업대 위의 테이프



두 배움의 차이점



수업 방식은 작년과 변함이 없으나   동안 셰프는 우리에게 얽매이지 않는 창작의 장식을 요구했다. 우리 모두 적어도   이상의 제과점에서 실습을 했기에 듣고, 보고, 배운 것이 있었다. 작년 12월의 모습은 찾아볼  없었다. 셰프가 시연을  때면 각자 자신이 제과점에서 했던 방식들을 서로 이야기한다. 나와 친구들은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되었고 창의력을 한껏 발휘하는 장식을 선보였다. "창의성" 생겼고 누군가와 제과로 이야기할  있는 지식과 경험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는 개인의 제품을 각자 만들고 하루에 보통   개의 제품을 만들지만, 제과점에서는 많은 양과, 상황을 고려하여 하나의 제품에 들어가는 각각의 부분을 만들고 어떻게 보관하여 어떻게 다시 조립하는지도 중요하다. 양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보관방법과 공간도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매출도 그만큼 나오는 곳이며, 적은 양을 만들 때보다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학교에서 오랜 수업을 듣다 보면 이론과 체계적인 배움을 습득할  있지만 현장감과 속도가 떨어지고 창의성이 결여된다. 배움은 스승과 제자라는 명목 하에 어떠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딱딱한 존재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어디에서든 찾을  있다는 마음가짐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이야기들 사이에서  배움이 공존했고 셰프와 우리 각자가 바라보는 제품에 대한 지식이 조화롭게 공유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교육의 모습이다. 자신에게 제과를 배운 학생들이 다시 돌아와 그들의 의견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가르치는 셰프에게는 얼마나 뜻깊을까?


한주 동안 내가 만들었던 디저트들



창작의 고통, 평생 안고 살아갈 숙제



학교에 복귀하기 일주일 전쯤, 셰프가 창의적인 도전과제를 우리에게 주었다. 마지막 이틀 동안, 각자 준비한 배합표로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거나 각자 실습했던 곳의 제과점 제품을 스스로 구현해볼 기회를 준 것이다. 나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ENSP에서 단기 수업 중에 배운 코코넛과 파인애플 디저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 인생의 최고의 디저트를 마지막 날 친구들과 셰프에게 맛 보여 주고 싶었다. 일주일 내내 디저트를 만드는 방법부터 생소한 재료들의 특성들을 찾아보고 단면도를 수차례 그렸다. 작은 디저트를 6~8인 분양의 무스케이크로 만들 때 생기는 문제점도 잊지 않았다. 8가지나 되는 각 부분을 온전하게 성공해야만 그 제품의 맛을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실수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수 없이 연구하고 고민했다. 친구들은 심지어 레시피를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그들 눈에는 서로에게 특별한 디저트를 선물하기 위한 선한 마음만 가득했다.



단 하나 제품을 만들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당일날 아침 우리가 주문했던 재료들이 도착하고 작업이 시작될 때까지  번이고 배합표를 읽어보고 머리에 배치된 순서를 점검했다. 그러나 욕심이 많았던 것일까? 어려운 배합표 때문이었을까? 소량의 배합표를 대량으로 늘리는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들, 그만큼 늘어난 크림과 충전물들의 양으로 느껴지는 맛의 미세한 변화까지 잡아내기는  실력으로 역부족이었다. 장식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맛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의 실수였다. 각자의 맛과 부분이 적당한 시간에 순차적으로 입에서 사라져야 하는데 농도 짙은 코코넛 크림과 향이 불편하게 입안에 계속 맴돌았다. 내가 맛보았고, 원하는 맛이 아니었다.



엠마가 마지막날 나에게 써준 편지와 선물, 그리고 빌려준 실리콘 틀



셰프가 각각의 제품을 먹어보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줬다.  차례가 되자 이미 땀이 실습모 앞부분을 촉촉하게 적셨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잘하고 싶었는데, 제가 하려는 것은 이게 아니었어요. 이런 맛을 내고 싶었거든요. 이런 부분에서는 어려움이 많았고  부분은 상태가 이상한데  모르겠어요 셰프" 말이 끝나자마자 셰프는  제품을 한입 작게 잘라먹고  바라보았다. "Bien réalisé, c’est bien” ( 만들었어. 잘했어). 위에 올린 크림의 모양보다 전체 맛을 고려하고 장식은 간단하고 빠르게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해주긴 했지만 그의 첫마디는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내가  만들지 못한 것을 셰프는  알았을 것이다. 그의 대답 속에는, 그의 눈빛에는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을 잊지 , 고생 많았다. 성민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좋은 제품은 무엇인지에 대해 셰프에게 조언을 받고 내가 그동안 수업에 임하는 태도부터 모든 것을 지켜봐  셰프니까. 비록   있는 제품은 아니었지만 셰프는 훌륭한 제품을 위해  도전을 우리에게  것이 아니다. 제과사로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행복한 창작의 고통을 우리 과정의 마지막에 경험시켜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셰프 항상 감사했어요.



맘에 들지 않는 내 마지막 제품, 그리고 저 엄청난 크림양



나에게 FERRANDI 란?



학교를 입학하고 올해 9월에 페랑디에 입학하는 한국인 분들도 알게 되고 페랑디를 다녀보고 싶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게 SNS로 연락을 받을 때면 감회가 새롭다. 내가 어느덧 졸업생이 되어 누군가에게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일반적인 학교 생활에 관한 질문보다 조금은 미래지향적인 다른 유형의, 아니 나와 같은 가치관을 지닌 누군가의 질문을 받을 때면 사실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페랑디는 분명하게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고 나를 변화시켰다. 내가  학교에서 '기술', '자격증'만을 위해 지내왔다면 적어도 나에게  감동은 없었고 특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니 어쩌면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정의할  없지만,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을  나를 붙잡아준 학교였고,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를 더욱더 사랑할  있게   곳이다.  없이  부족한 불어 실력도 그들은   번도 놓지 않고 들으려 했고 나를 밀고 당겨 주었다. 프랑스인 친구들과 처음으로 밤늦게까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그들의 생각도 들어보았다. 그들은 항상  옆에서  생각과 고민에 관심을 잃지 않았다. 누가 그랬다. "우리  번째 가족이니까". 맞는 말이다. 프랑스인 가족이 22명이나 생겼다. 페랑디가  어느 누구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기억만 선물해줬고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에 조금  깊게 물들  있게     번째 집이고   번째 가족이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변환점이다.




나도 이제 CAP 합격자, 고생했다 성민아




CAP 합격이 나에게 주는 의미



학교가 완전히 끝나고 학교 측에 따로 요청해서 졸업장을 받아왔다. 졸업장이라기보다는  과정을 이수했다는 증명서 같은 형식의 종이다. 다른 학교처럼 근사한 졸업장은 아니지만 진짜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하다. 수업이 끝나고 이틀 뒤에 자격증을 발급해주는 기관에서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라자를 제외하고 23 전원 합격이다.  어울리지 못하고 이탈한 라자의 잘못인지, 모두를  이끌지 못한 셰프의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명단에 그의 이름부재는 마음이 아프다. 라자에게 별도로 연락을 했으나 아직까지 답장을 받지 못했다.




시험 자격증은 10월쯤 각자의 집으로 발송될 예정이다. 외국인인 내가 정식적으로 CAP자격증 취득자가 됬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학교 수업을 위해 어학을 했고 모든 순간을 기억하며,  소중함들을 기억하며 달려왔다.   자격증을 "우리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였으면 절대 끝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이 없었으면 무너지거나 몇천   힘들었을 것이다. 모든 프랑스인이 외국인에게 절대적으로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하고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 너는 엄청난 재능과 기술을 가졌다는 , 능력이 있고 진짜 중요한 것들을 알고 있다는 , 그리고 아름답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 살면서 피를 나눈 가족 외에는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잘해주지 못한 것만 마음에 남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자격증이 한국으로 도착할 때면, 그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같다. 다시 프랑스로 온다는 약속  지킬  있길 바란다.




끝, 그리고 시작. 페랑디를 마치며



마지막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사진을 찍고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처럼 짐이 한가득인  페랑디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친구들끼리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자고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이제 쉽게   없다. 이제는 내가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만나서   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시차나 개인적인 일들로 지금처럼 자주 연락하기 어렵겠지만,   소식을 그들에게 항상 남겨주기로 약속했다.  되겠어서 마스크를 벗고 첫날 하타나가 나와 시리엘을 껴안았던 것처럼 내가 먼저 그들을 껴안았다. "우리 이제 시작이야"라는 말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귓가에 맴돌지만, 슬프고 아쉽고 그리운 감정에 솔직하고 싶다. 자꾸 뒤돌아 보는 나에게  가라며  흔드는 그들.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진심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받아 빚지고 돌아가는 기분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인생의 길이  마침 겹쳐서 그들을 알게 되어 너무 행복했던 1년이었다. 나를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그들과 "함께"라서 행복했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특별한 사람인걸 다시 깨닫게 됬어요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의 일정은 미정이지만 최대한 빠르게 현장에 복귀할 예정이다. 마치 2년 4개월 전 인천공항에서 내가 프랑스에서 이루고자 했고, 가지 같은 시간 페랑디 편의 머리말을 쓸 때의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 현재는 과거를 증명한다. 나의 미래가 지금의 나를 증명할 수 있도록 살아갈 것이다. 무엇이 내 인생에서 중요하고 근본적인 핵심인지, 어떠한 원동력으로 내가 깨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여유와 쉼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들인지에 대해 모두 글로 남겨 놓았고, 또 나의 글을 계속 써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글들이 비단 나와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아닌 모두에게 작은 울림과 공감이 되길 바란다. 진짜 안녕 페랑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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