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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Jun 18. 2020

가지 같은 시간

마지막 리츠호텔



코로나로 프랑스가 술렁이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새벽 6 20분쯤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위해 지하 3층으로 향하던 호텔 내부 엘리베이터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날이 마지막 근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날씨가 제법 추워서 겉옷을 단단히 껴입었는데 이제는 계절이 바뀌었다. 그날 이후 롤라는 자신의 부모님이 계시는 툴루즈로 내려갔다.  또한 위험한 파리보다는 지방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지방에 살고 있는 한국인 동생 집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했었다. 불행하게도 이동제한이 발표되고 하루 전날 저녁 기차가 취소되었다. 페랑디 친구들도 당연히 모두 실습이 멈췄고, 자신의 가족들과 제한된 공간 안에서 그들의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미래의 이야기를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지만, 갑작스러운 재난 선포에  상황이 언제 끝날지 자주 물어봤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나도 모른다, 침착하게 다음 정부의 안내를 기다려보자"였다. 텅 비어 버린 리츠의 제과 주방에서 " 보자"하고 인사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빠른 시일 내에 '가지 같은 시간 리츠호텔' 글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갈수록 프랑스는 상황이 좋지 못했고 프랑스의 코로나 감염률이  세계의 4위에 올라가는 불명예를 가졌다. 3 지난 지금, 프랑스가 예전의 모습으로 대부분 돌아갔지만 리츠호텔은 아직 오픈하지 못했다. 그리고  글은 '가지 같은 시간 리츠호텔' 마지막 글이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파리의 모습



굳게 닫혀 버린 호텔

이동제한 동안 파리의 모든 상점은 전부 문을 닫았고, 관광객이 북적이던 명소, 공원 모두 문을 닫았다.  3달의 이동제한이 점차적으로 완화될 무렵에도 리츠에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기간 동안 함께 일했던 리츠의 친구들과 연락은 가끔씩 했으나 그들 역시 리츠에서 여전히 연락을 받지 못했고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실습생인 나의 경우에도 많지는 않았으나 이동제한 기간 동안 급여의 일부분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결국 리츠 호텔로 향했다.  돌아갈 줄 알았던 곳에  안전화와 제과를 하기 위한 주요 도구들을 모두 놔두고 왔기 때문이다. 행정상으로 6월까지 근무였기 때문에 완전히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6 말에 있을 페랑디 수업과 추후 일정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정문에서 리츠의 웅장함과 나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서 직원 출입구가 있는 Chambon 거리로 가지 않고 Vendom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금장의 장식과 리츠의 로고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지만, 문은 굳게 닫히고 항상 관광객들과 호텔 이용객들로 북적이던 주변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직원 출입구는 24시간 보안 직원들이 상주한다. 그날은 굳게 닫힌 문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내부에 붙여 놓은 안내문뿐이었다. 손으로 외부 빛을 차단하고 어두운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유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많은 직원들이 출퇴근하는 공간이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들은 많은 다짐을 하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하루의 시작과 끝이었던 공간은 사람의 흔적들 대신 적막함만 흐른다. 안내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이내 굵은 목소리의 보안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호텔 내부로 들어오는 것은 어렵다고 재차 이야기하며 해당부서 책임자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안되는 걸 알지만 한참을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렇게라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마지막은 그때처럼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



어쩌면, 아니 마지막


그날 저녁 아직 툴루즈에 있는 롤라에게 SNS 통해 연락을 했다. 서로의 안부는 짧게 마치고  상황과 오늘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는 나에게 6 2일부터 Vendom 광장에서 진행하게 되는 Le petit comptoir(작은 판매대) 때문에 셰프와 수셰프들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인력이 리츠 제과주방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수셰프에게  상황을 이야기해 놓을 테니, 연락해서 다녀오라고 했다. 곧바로 그에게 연락을 하고 방문 날짜, 시간,  사물함 비밀번호를 알려준 뒤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기꺼이 준비해 놓겠다고 그날 보자고 한참이 지나서 답장이 왔다.


내가 리츠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Le petiti comptoir의 첫째 날이었고, 지난번과 다르게 정문은 반쯤 열려 있었으며 호텔 관계자들이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춤거리다가 이내 고객들 뒤에 줄을 섰다. 어색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어색했다. 다정하게 인사하는 판매 직원들 뒤에 반가운 제품이 가득했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이전 제품들도 보였다. 비록 우아한 공간에서 예전처럼 차와 커피와 공간을 즐기지 못하지만, 이동제한 기간 동안 리츠의 제품을 기다려온 고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행사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몇 가지 제품을 고르다 보니 수셰프가 내 물건들은 잘 정리해서 가지고 나왔다. 코로나 덕분에 악수나 볼인사 대신 반가움에 팔목을 서로 부딪히는 것으로 대신했다. 잠깐 이야기하는 동안 Francois 셰프가 호텔 내부에서 나왔다. 나도 모르게 "Chef!" 외쳤지만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Ça va? Je te dis comment et c’est trop compliqué"
(잘 지냈어? 내가 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것은 매우 복잡해)



 떨리는 외침에 그의 첫마디였다.  지낸다고 대답하고 셰프에게 다시 안부를 물어보았다. 그가 몸을 좌우로 살짝 움직 일 때마다 햇살에 비친 그의 금장 로고와 이름이 반짝거린다. 다시 시선을 옮겼다.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언제 호텔이 열릴지 모르지만 실습을  할 수 있다는 제안, 한국에 가게 되면 계획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좋은 경험이고 기회였다는 나에게 그는 최고의 실습생이었고 열정이 넘쳤으며 모두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이야기해줬다. 고맙다는 말을 몇 차례 하는 나에게 물건 빠진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손을 내미는 나에게 코로나 때문에 악수는 안된다며 라텍스 장갑을  손으로 어깨를  쳤다. Vendom 광장  무렵에 도착했을 때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남들보다 몇 뼘은  키가  셰프가 손을 크게 흔들고 사라졌다. 아무도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원하는 마지막이 아니었는데.


리츠 le Petit comptoir, 회수해온 내 물건들









나의 최고의 셰프, Francois perret


그의 제품을 먹어보고 SNS로 사진만 보다가 실제로 그를 처음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조리복에 명장을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가 없어도, 대회에 나가서 화려한 수상 경력이 없어도 그는 위엄 있었고 세계적인 셰프다운 기운이 느껴졌다. 모든 주방을 돌아다니며 실습생과 제과, 제빵 파트 전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야 가장 깊숙한 그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프랑스에서 실습을 하기 전에는 경험자들을 통해 안 좋은 문화나 제과점의 환경에 대해 많이 들었고 제과 경력은 거의 전무한 나에게 제과는 그 자체로 큰 위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프랑스의 다양한 제과점들 가운데서 내가 리츠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제품, 그가 제품을 생각하는 가치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셰프임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옷차림과 성실한 자세, 지속적인 제품에 대한 연구, 그리고 수많은 직원과 실습생들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제품 만드는 방법을 직접 공유하려고 하는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제품보다 더 화려하고 맛있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값이 비싼 디저트들을 많이 만났지만 여전히 그의 제품은 내 인생 최고의 디저트다. 셰프가 나에게 "지금처럼 해"라고 했던 말이 내가 프랑스에서 느끼고 배운 경험과 감정을 소중하게 다루라는 것처럼 들렸다.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가치관, 제과사로써 가장 중요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그를 닮아가고 싶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셰프의 한 명의 팬으로, 실습생으로 그를 응원하고 그의 제품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팀원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관심, 연락을 주고받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프랑스 디저트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Francois 셰프의 디저트를 꼭 먹어보라고 추천한다. 나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파리 리츠 호텔을 선택할 것이다. 한국의 주방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과 수십 명의 팀원, 수천 명의 직원들에게 배운 배려와 그들의 직업의식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글을 통해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The Chef in a Truck


6 10, 넷플릭스에 Francois perret 셰프가 두 명의 리츠 직원과 미국 LA에서 푸드 트럭을 하기 위한 과정의 6개의 에피소드가 업로드되었다. 제과계의 피카소인 Pierre Herme와 세계의 셰프들이 최고의 셰프라고 인정하는 요리계의 거장 Pierre Gagnaire  중간중간 그를 소개하고, 에피소드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세계적인 스타의 푸드트럭 도전기이기에 업로드 전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을 만나고 정해진 틀에서 벗어났으며, 과자는 국경이 없으며 설탕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라고 이야기했다. 6개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그는 언어가 다른 미국에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고 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색깔, 프랑스의 색깔을 그들에게 알리기 위해 연구하고 고심한 과정이  느껴졌다. 6 2일부터 리츠의 정문에 열린 Le petit comptoir 미국 LA에서 그가 만들어낸 푸드트럭 제품들을 자신의 오랜 팬들에게 맛보게 하고 홍보하는 목적이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셰프, 항상 건강하고 좋은 소식 기대할게요



J’ai toujours voulu développer un projet autour de la gastronomie.
Je cherchais une idée à développer sous forme de fiction,
 parce que sur ce sujet, il n’y a que L’aile ou la cuisse et
 Ratatouille qui soient en partie pertinents. - Francois Perret-


(나는 항상 미식에 관한 목표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나는 소설의 형태로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주제 위에 관련된 것은‘날개 또는 허벅지’ -1976년 개봉된 프랑스 영화-와 '라따뚜이'-2007년 개봉된 프랑스 애니메이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Francois Perret -




한국가기전에 고객으로 다시 갈게요, 꼭





Au revoir Ritz Paris! Merci beauc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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