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로 수놓은 밤하늘 - ENSP
유럽 해변에 대한 막연한 낭만이었는지 그때의 시간에 대한 도피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나에 대한 선물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2018년 여름 프랑스 니스에 있었고, 2019년 여름은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올해의 유럽의 여름은 그리스나 이탈리아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 유럽 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의 국가들이 더 이상 확산을 막고 자국민의 건강을 위해 빗장을 걸었다. 유럽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름이었기에 아쉬운 마음에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나를 위한 또 다른 특별한 경험과 코로나로 인한 리츠의 완벽하지 못한 추억을 대신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에게 프랑스에서 첫 패배의 아픔을 안겨준 프랑스 남부의 Yssingeaux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살면서 가장 많은 별을 보았던 곳, 그 별의 숫자 만큼 내 미래에 대해 수 없이 생각했던 시간을 글로 남긴다.
ENSP와의 첫 만남
ENSP(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pâtisserie)는 1984년 La confédération des Pâtissiers(제과인들의 연합)에 의해 Jean Millet에 의해 Yssingeaux라는 프랑스 남부 고산지대 3000평의 부지에 세워진다. 이후 Alain Ducasse와 Yves Thuries가 학교를 인수하고 매년 수백 명의 학생을 배출하며 유명한 셰프들을 초청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과학교다.
내가 유학을 결심한 순간,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에서 제과제빵을 유학하고 온 동료들이 내 옆에는 많았다. 그들에게 듣고 내가 조사했던 것을 종합해본 결과, 프랑스는 제과제빵의 장단기 과정, 학사, CAP, BTM 등 입맛과 각자 경제상황에 맞게 고를 수 있는 학교들과 프로그램들이 다양했다. 경력과 경험이 일방적으로 제빵에 치우쳐 있었기에 제과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확고했으나 다양한 만큼 선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단순히 입학조건이 다른 제과학교에 비해 수월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 학교를 선택했고, 이 학교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다른 친구들처럼 여러 개의 후보군을 둔 것도 아녔으며 재입학을 위해 어학을 다시 공부할 여건도 되지 않았고 할 마음도 없었다. 9개월의 어학과 프랑스에서 살아봤다는 경험만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페랑디를 지원하려는 어학원에서 알게 된 동생의 권유로 마지못해 페랑디 파리 캠퍼스를 지원하기는 했으나 큰 기대는 없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파리에서 하루를 꼬박 걸려서 기차역도 없는 Yssingeaux에 내려와 면접을 보았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처참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준비를 하던 중 페랑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운명이 바뀐 것일까? 페랑디를 지원하려는 동생은 페랑디에서 두 번의 불합격 통보를 받고 결국 ENSP에 입학했다. 불합격을 안겨준 내 꿈의 학교였고 다시는 이 근처에 오지도 않을 것 같았지만 결국 나는 이 곳에 있다.
수많은 셰프 중에서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
"J’aime travailler avec le chocolat et les fruits secs pour les jeux de texture. Je suis très attentif aux goûts simples et souhaite encore plus incorporer les fruits de saison et frais dans les créations de la pâtisserie"
- Etienne Leroys(Champions du monde de la pâtisserie 2017) - L’entremets et les petits gateaux -
(나는 텍스트의 상태를 위해 초콜릿과 건과류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단순한 맛을 추구하며 제과의 창조에서 계절의 과일과 신선함을 더 집어넣기를 원합니다)
CAP 과정을 비롯한 다른 과정들과 다르게 제과제빵 단기과정은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큰 조건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수업 가격과 일정, 품목 등을 보고 자신이 비교하여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로 소수의 인원으로 수업하기에 내용이 알차다. 세 번째는 같은 기간에 수업을 하는 명장이나 유명한 셰프들을 만나고 그들의 수업 제품을 맛볼 수 있다. 네 번째는 현업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현지의 제과사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CAP 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프랑스의 제과 기초 과정을 알아가기에는 좋으나 매장에서 응용하거나 판매할 정도의 제품을 다양하게 배우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수업은 기대가 크고 많은 것을 발전시켜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내가 프랑스에 온 뒤 "셰프의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제품을 만들고 가치를 불어넣는 것이 먼저인지, 가치를 만들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 나는 후자라고 대답한다. 전자의 상황은 환경과 상황과 직급 등을 고려해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낼 뿐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제품이 나왔을 때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변명하기 급급하고 가치 없이 시작된 창작물은 실패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3년 전까지의 내 모습은 전자였다. 그의 수업을 선택하기 전에 그가 만들었던 제품보다 그의 인터뷰와 기사들을 통해 그의 철학에 다가가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제품의 모습과 맛은 그다음의 문제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적절했을 때 나는 그의 수업을 듣기로 결심했다.
디저트의 신세계, 교육자의 모습
한 기자가 좋은 제과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 Etienne셰프에게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C’est la rigueur qu’il faut s’imposer tous les jours. L’obligation d’avoir la même exigence au quotidien afin que le client ne soit jamais déçu. Je crois que nous devons aussi nous remettre en question. C’est un effort permanent. Sinon, on stagne. Et parfois, lorsqu’on arrive à faire un tout petit mieux, c’est déjà une grande victoire”
(그것은 매일 강행해야 하는 엄격함이다. 고객이 절대 실망하지 않도록 매일 동일한 요구사항을 가져야 한다. 나는 우리 또한 우리에게 질문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지속적인 노력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체된다. 우리가 조금씩 나아질 때, 그것은 이미 큰 승리입니다)
ENSP 학교 정문에서 만났던 그는 사진으로 봤던 모습보다 더 젊어 보였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느꼈다. 짧지만 잘 고정된 머리와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 때문이었다. 세계 제과 챔피언들의 상징인 조리복 옷깃의 세계 국기들이 그의 화려함을 대신한다. 간단히 자기소개와 함께 시작된 6명의 학생과 한 명의 보조셰프, 그리고 Etienne셰프, 3일 과정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매장에서 사용하기에 다소 복잡한 공정과 처음 접해보는 다양한 원재료들과의 만남만으로 이미 충분히 압도당했다. 반죽의 작은 상태만으로도 계량의 문제를 알아내며, 현업에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질문에도 능숙하게 답변해낸다. 마침내 3일이 끝나고 모두가 함께 제품을 시식할 때도 그는 먹는 순서를 정해줬다. 그것은 수업을 위한 제품을 구성할 때 이미 자신의 디저트가 우리의 입술과 혀에 닿는 순서와 순간까지 고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들만의 독창성과 창의력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합리적으로 매장에서 판매 가능성을 제외한다면 내 인생 최고의 디저트들인 리츠의 디저트를 능가하는 맛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이런 디저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살면서 다시 이 정도 수준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을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가 이 수업을 듣기로 결정하고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의 수업방식과 교육자의 모습이었다. 그가 유명하다고만 해서 지속적인 교육을 이어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술자와 교육자는 다른 말이다. 셰프는 세상에 많지만 후배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자신이 이해한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능력은 교육자라는 이름 아래 내려진 특별한 능력이다. 때로는 부족한 점을 감추어 줄 수 있어야 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이끌어 내주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상대가 완벽히 실현시킬 수 있고 응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보다 더 나은 기술인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은 유명하다고 해서 얻어지는 특혜는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교육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과 기술은 그것들이 갖춰졌을 때 더 빛난다.
창작의 시작, 고객
수업이 끝나고 파리 하늘에서는 볼 수 없는 수천 개의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고민했다. 이 수업이 시간이 지나서 한 장의 수료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랬기에 그가 우리에게 전했던 말들을 수없이 회상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말 그대로 물음표로 수놓은 밤하늘이었다. 누군가는 고민 없이 쉽게 살아가지만 그들보다 조금 예민한 나는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느라 때로는 돌아갈 때도 있고 무작정 부딪혀 볼 때도 있어서 피곤하고 상처가 확실히 많다. 그리고 분명 실패도 많았다. 그의 수업의 순간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애쓴 것은 그의 제품을 나의 제품으로 소화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소화한다는 것은 제품을 이해하기 위한 것인데, 배운 것을 반복 없이 똑같이 만들어 내는 것, 모방이나 현란한 기술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내가 그의 제품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은 그가 왜 이 제품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접근을 의미한다.
한 가지 제품을 기억하고 그려보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려한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행동과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빼고 온전히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에게 내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제품을 만들 때 무작정 앞치마를 매고 주방으로 가는 것은 8년 경력에서 내가 했던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중간에 계획이 바뀌기도 하고 주변 탓을 하며 핑계가 많아진다. 타협이 많아지고 의도하지 않은 제품이 나올 때가 많다. 계획이 산으로 간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판매한다. 내가 만든 제품이 고객에게 서비스돼서 마주하여 모든 감각의 마지막에 오는 맛에 대해 생각해본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문제를 적어야 한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을 몇백 번 반복해야 하고 최소한의 오류에 다가섰을 때 비로써 앞치마를 맨다. 이 과정은 이 직업에서 매번 반복되어야 하며 훈련되어야 한다. 고객은 테스트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고 내 최고의 가치를 공유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름 없는 제과점 진열장의 손가락질받는 볼품없는 제품도 어쩌면 한순간에 뚝딱 나온 것이 아닐 것임을 깨닫는다. 내가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내 가치관을 적고 찾아가고 그것들을 내가 살아가면서 잊지 않는 것이 나에게 최우선의 과제이자 이상향이다. 그리고 나도 그들의 가치관과 경험을 먹고 싶다. 이 곳의 셀 수 없는 별만큼 수없이 생각했던 것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을 잊지 않는다면 이 수업의 가치는 영원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시기에 이 곳 밤하늘을 수놓았던 물음표들이 모두 느낌표가 되길 바란다.
"En période de création, je laisse la précision de côté. Mais elle n’est jamais loin. Je note tout, dans les moindres détails : ingrédients, grammes, températures, durées de cuisson. Car le plus difficile c’est de reproduire ces sensations et cette folie que l’on réussit parfois à trouver"
(생산하는 동안 나는 정밀도를 따로 둡니다. 그러나 그것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는 재료, 무게(G), 온도, 굽는 시간 등의 세부 사항들을 모두 적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때때로 찾을 수 있는 그 감각과 그 광기를 다시 재현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