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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Jul 28. 2020

가지 같은 시간

하나의 추억을 더 만들어 줘서 고마워 2



원하던 원하지 상관없다. 이별과 헤어짐 앞에서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불어 오는 찬바람이 가슴 깊은 곳을 헤집고 다니는 시린 마음을 경험해본 자의 두려움이라고 해두자. 어느 누가 사람을 떠나야 하는 것에 그토록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달랐다.  오래 아파하고  오래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렇다고 결코 무뎌지는 감정은 아니다.  알면서도 만나야 했고, 어떻게든 기회가 된다면 함께 공유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내밀  있는 용기,  잡아줄  있는 용기를 배웠으니 적어도 이번만큼은  아픔의 두려움을 맞서는 나약함 보다는 단순한 인간적인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바라보는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그녀에게 "다시  올게"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지고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단둘이서 만나는 것의 의미


페랑디 마지막 날, 페랑디  앞에서 엘로디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초대받는 날에 하타나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그녀에게 제안했다. 며칠  우리의 약속이 잡히고 하타나는 그날 자신의 근무와 겹쳐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뒤이어 자신의 휴무에  시간을 맞춰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문득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을 알게 되어도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풀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페랑디 친구들은 나에게 외국인이라는 생각, 내가 그들에게 외국인이라는 생각은 잊고 있다가도 문득 찾아와 애틋함과 약간의 거리감을 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와 그들의 관계는 서로가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나는 4명 이상이 있는 사적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분산되거나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없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는 만남의 목적에는 부합할 수 있으나 대화의 기본 목적에서는 크게 빗나간다. 사적인 자리는 더군다나 그렇다. 불어는  모국어가 아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이전부터, 아니 프랑스를 오기 이전부터 나에게 의사소통 이상의 가치를 가진 특별한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도 대화가  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비단 다른 언어의 사용이 대화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믿는다.



단둘이 만나서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대도 나를 이해하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나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노력이 동반되는데 그때서야 비로써 이 시간이 '우리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녀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녀의 고민


개인적으로 그녀를 만나고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페랑디의 과정이 온전히 끝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친구들의 시간을 번갈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아니고 네가 나를 방해하는 것은 뭐든 좋아"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는  또한 실례라고 생각했다.



엘로디와 일정이 끝나고 나서 하타나가 나와의 만남에 고민이 깊어진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엘로디의 일정보다 자신의 일정에 내가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해주려는 것 때문이었다. 몇 개의 장소를 놓고 고민했다는 것은 그녀가 나와 함께 다니며 "원래 처음에 저기 가려고 했었어"등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퇴근길에 나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네가 좋아하는 파리에서 해보고 싶은 것 중에 아직 못해본 거 있어?"

"나 바토무슈(Bateaux Mouches : 파리의 중심부를 흐르는 센강에 있는 유람선으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삼십 분가량 걸리는 관광투어) 아직 안 타봤어. 그거 타고 싶은데 너는?

"또 다른 건?"

"그냥 너랑 함께 하는 것은 다 좋아. 계획 세우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 보내지 않으면 좋겠어. 네가 가고 싶은 곳, 네가 안 가본 곳도 궁금하거든"


우리의 대화에서 그녀가 조금 고민을 덜어주길 바랬다. 행복한 고민도 고민이니까. 난 사실 무엇을 해도 상관없지만 그녀의 소중한 퇴근 시간 이후의 일과에 나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7월 22일 수요일 오전 11시에 내가 보내준 주소 앞에서 보자. 좋은 저녁 보내"


페랑디에서 아무것도 서로에 대해 모르고 만나서 우리가 함께 새벽을 깨우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들이 내 곁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충분히 벅차고 행복했다. 내가 프랑스를 떠나는 순간까지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챙겨주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있어 가슴 한켠이 뭉클하고 말하지 못할 감정에 한동안 휩싸였다. '그래 나는 떠나야 하는 사람이야'라며 애써 스스로 위로하고 흘러버린 감정들을 밤새 주어 담았다.



그녀를 위한 몇가지 선물들


그녀와의 인연



첫 번째 일정은 어두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벽면에 빔으로 화가들의 작품을 음악과 함께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Atelier des lumieres'였다. 일반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이동 경로가 따로 있거나 작품을 찾아 헤매는 수고가 없으며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어두운 곳에서 영화처럼 상영하면 되는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반가움도 표현해야 하고 나에게 입장 전에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그녀의 이마가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미 표를 예약해둔 그녀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했다. 평소 같으면 작품에 조금 더 몰두해서 시간을 보냈을 텐데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서 나는 말 없이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겼다.



몽환적인 음악과 영상의 시청각실



그녀는 가지 같은 시간의 글에서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페랑디 친구들이 모두 그랬지만, 그녀는 유독 내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내 손을 잡아줬다.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서 매일 먼저 장난도 치고 습관처럼 자주 안기도 하고 잘 웃었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나 분위기가 어색했다. 그녀의 부모는 캄보디아인들이고 20대에 프랑스에 와서 그녀를 낳았다. 30대 초반에 그녀는 프랑스인과 결혼을 하고 현재 4살, 아들과 함께 파리 외곽에서 살고 있다. 엘로디 말에 의하면 자신의 3층 집보다 더 크고, 더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둘은 각별히 친해서 프랑스 이동제한 전에 두세 차례 개별적으로 만났다고 했다. 하타나는 페랑디 수업이 끝나고 여전히 약국에서 소일거리를 한다. 여기서 내가 소일거리라고 하는 것은, 그녀의 지인에 의한 부탁으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는 그룹 발표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설탕공장을 견학했던 날, 하타나가 처음으로 매우 아파서 참석하지 못했다. 견학 내내 그녀 생각에 팸플릿이며, 부족한 언어로 물어보고 자료를 정리하고 사진을 찍어서 그녀에게 보내줬다. 그녀는 단체 발표 준비에서 내가 언어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알기에 자신의 목소리로 내 발표 대본을 전부 녹음해줬다. 사실 우리의 작고 큰 이야기들을 모두 이글에 담을 수는 없다. 내가 그녀에게 천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2018년 겨울 페랑디 수업이 끝나는 날, 그녀의 것만 천사가 그려진 엽서를 고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페랑디에서 내 마니또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타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청각과 시각까지 함께 했던 특별한 추억


아시아인은 소심하다


점심 식사를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했는데 내가 계산하겠다는 것을 기어코 말리며 그녀는 자신이 전부 계산했다. 한국과 프랑스 음식을 퓨전 해서 만드는 레스토랑인데 코스가 끝날 때마다 종업원이 접시를 치워주며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맞춰보라고 한다. 두 나라의 특수재료를 맞춰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곳에는 한국인 조리사가 한 명 있었는데 하타나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잠깐 둘이 이야기해볼 시간을 가지게 해 줄 수 있냐고 종업원에게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나왔고 나와 몇 마디를 나누고 쑥스러운지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빠르게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하타나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식당 풍경, 조금만 늦게 갔으면 기다릴뻔 했다.



"무슨 이야기 했어?"

"우리 제과사라고 이야기했어. 그리고 그가 음식 잘 먹었는지 어땠는지 물어봐서 훌륭하다고 대답했지.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일했는지 물어보니까 작년 9월부터 일했다고 했어"

"그게 전부야?"

"응. 왜?"

"더 이야기하지 그랬어? 그가 좀 소심한 거 같지 않아? 일반적으로 아시아인들은 좀 소심한 거 같아. 표현도 덜하고"


그녀가 냅킨으로 입 주위를 톡톡 닦으며 아쉬운 듯 이야기했다.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와 함께 하는 오늘 남은 하루 동안 더 잘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이 밀려왔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꼈더니 숨이 턱 막혀왔다. 마스크를 코에 걸치고 그녀에게 물었다.


"나도 소심한 거 같아?"

"예전엔 그랬지, 이제 바토 뮤슈 타러 갈 거야"


미슐랭 한국과 프랑스 퓨전 레스토랑



네가 있어 든든해


식사 이후에 햇빛은 더 거세졌다. 얼굴에 바른 선크림이 이미 제 역할을 다 한 듯했다. 얼굴의 대부분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으니 숨쉬기 힘들 정도의 열기가 계속 얼굴에서 맴돌았다. 그것 때문인지 대화가 중간중간 끊겼다.


잠깐의 삶이었지만 프랑스의 생활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행객이 아닌 학생으로 지내기 위해 만들었고 혜택 받고 열어 놓은 모든 행정 관련된 것들을 닫기 위해 편지를 쓰고 기다리는 것의 연속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동 중에 메시지와 메일을 확인하다가 그녀에게 집 문제로 몇 가지 질문을 했더니 갑자기 나를 그늘로 데려가서 자신의 선글라스를 머리카락에 꽂았다.


"내가 전화해줄게, 핸드폰 줄래?"

"응? 아니야 내가 할 수 있...."

"알지, 그래도 내가 한번 전화해주는 게 더 나을 텐데"


집주인과 부동산에 자신의 소개를 하고 불어로 유창하게 그들과 20분 남짓 통화를 했다. 프랑스인에게 불어를 유창하게 잘한다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실제로 그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에 나와의 대화에서는 조금 천천히 말했다고 느낄 만큼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에게 2분 정도로 압축해서 내용을 설명해줬다. 다시 선글라스를 쓰더니 '별거 아니네'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또 문제 있으면 절대 혼자 고민하지 말고 나한테 바로 연락해"라고 말했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선착장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사실 같은 가격이라면 야경을 보고 싶었으나 더 이상 무리한 부탁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남아 근처 그늘진 곳으로 갔다. 하타나는 사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과 일을 그만 두기로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디저트를 간간히 했지만 워낙 소량이라 만드는 부분에 어려움에 있고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급여문제와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잘하는 일은 오래 해왔으니 약국일이고, 좋아하는 일은 제과다. 그러나 다시 할 수 없이 약국으로 돌아간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를 애써 외면하고 우리가 앉아 있는 곳 건너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취미로는 할 거야"라는 그녀의 말속에서 차가운 제과의 현실 세계가 밉게만 느껴졌다. 작은 보트가 재빠르게 센강을 타고 내려가며 물살을 일으켰고 우리의 적막을 깼다. 속상하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픈 감정은 왜 나의 몫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파리 생활 1년 6개월만 타보는 바토뮤슈 !



장소보다는 누구랑 함께 하는지


햇빛을 가려주는 차단막이 없고 높은 유람선에 올라타니 태양과 살이  가까워져서 가끔씩 따갑기까지 했다. 바토무슈가 센강을 타고 지나가면서 바람을 만들어 냈지만 더위를 식혀주기는 역부족이다. 탑승자들의 잡음과 언제 녹음해 논지 알 수 없는 명소 안내방송 때문에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타고 싶어 했던 바토 뮤슈를 하나타와 타고 있어서 행복했다.


대략적인 그녀의 일정이 끝나 보였고 햇빛 아래에서 하루 종일 파리를 돌아다닌 탓에 둘 다 제법 지쳐 보였다. 인파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배에서 그녀가 나에게 물어봤다.


"에펠탑은 올라가 봤어? 개선문은?"

"에펠탑은 좋아하는올라가 보지 않았어.  고소공포증 있거든"

"아 진짜? 몽마르뜨 노을 질 때 가봤어?"

"응 가봤어"


시계가 18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 들어가야 해?"

"아니 왜?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맥주 한잔 하러 가자"



자가용으로 이동했던 엘로디와 다른 스타일의 여행이기에 아무래도 서로 이야기할 시간이 적었다. 무작정 관광객처럼 돌아다니는 것은 나 혼자 해도 되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대화였다.


그녀는 앞으로 여전히 약국에서 일할 생각이라고 했고, 자신의 경력을 살려 더 크고 좋은 약국에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주말쯤 가족들과 니스에 휴가를 떠난 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어쩌다가 그녀의 남편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른다. 그녀의 남편은 연애 때부터 핸드폰이 없이 지내는데 지금도 서로 다른 곳에 있을 때면 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사무직이라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핸드폰이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휴무에 집에만 있으려는 남편 때문에 답답하다는 하소연을 하며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



서로의 가족들 이야기를 하다가 프랑스 남부에 사는 그녀의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산지 오래 됐다고 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녀의 꿈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그녀에게 많은 통제를 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제과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여러 가지 이유로 할 수 없게 되고 약사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꿈일 잃지 않아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시작한 제과의 문턱에서 그는 한계를 보았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려던 때,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자신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찍어 놓은 동영상들인데, 2살 때 알려주지도 않은 전 세계 나라 국기를 다 맞추고, 4살에 이미 어려운 책들을 읽는 영상들을 몇 가지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몇천 번은 더 봤을 그 영상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같은 꿈을 가진  프랑스인에 불과했다. 그녀는 제과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기 이전에  남자의 여자였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4살 난 아이의 엄마이다. 나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겠지만 그녀의 인생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우여곡절이 많았고 이유 없는 선택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지금까지 제과사로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제과사로써  멋있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나도 모르게 가졌다. 친구며, 가족이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나는 도대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까? 어떤 선택을 해도 응원해주고 실패해도 격려해주고 그들이 나에게  내밀어준 것처럼  내밀어줬어야 했는데. 섣부른 생각으로 그들에게 아쉬움만 가득했던 것이 부끄럽다. 30 후반에 결혼하고 다시 시작한 제과의 , 학생의 신분, 한참을 어린 친구들과 제과점에서 새벽마다 일하는 것이 그녀에게도 쉽지만 않았을 것이다. "


하타나, 페랑디 첫날 기억나? 그때 기분 어땠어? 언제든 기회다 싶으면 다시 하면 돼, 네가 꿈을 잃지 않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랄게,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고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할게"







근처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내 일정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 달력에 체크했다.


"네가 내 소식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처럼 나도 너의 새로운 소식들 궁금해할 거고 기다릴 거야"

"필요한 것들, 어려운 것들 있으면 연락 자주 해야 해, 그것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당연하지, 나 불어 학원도 계속 다닐 거야. 그래야 연락 하지"


내가 한국어를 배우기는 어려우니, 그게 좋겠다며 왠지 슬프게 웃었다.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그녀를 알고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녀를 안았더니 나보다 나를   안고 "잘 지내고, 자주 연락해, 건강하고, 그리고  좋은 말들 고마워. 아니 전부다”라고 말했다. "다시 올 거야"라고 말했는데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들어간 지하철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날씨처럼, 오늘 하루가 지독하게 따뜻했던 하루였다. 함께한 오늘의 여름 잊지 않을게. 많이 그리울 거야. 



책 나오면 꼭 프랑스로 보내줄게 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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