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고 1년, 나는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닌 돈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1년간 놀면서 그간 모아둔 돈을 헐어 썼다. 일해서 번 월급이 없으니 통장 잔고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한 달에 쓰는 돈은 6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로 편차가 있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본가에서 살고 있으니 월세는 들지 않았다. 대신 엄마에게 생활비는 20만 원 드리고 있다. 보험료와 휴대폰 요금, 스포츠센터 헬스비가 고정적으로 나갔고, 나머지는 음식 사 먹고 커피 마시는 데에 썼다. 이동이 많지도 않으니 교통비는 별로 들지는 않았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기도 했다. 사람인지라 아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병원비로 지출이 훨씬 많이 나갔다. 나의 경우 치과 치료를 받을 때였다. 5년 쓴 휴대폰을 바꿀 때가 되어 새 휴대폰을 사게 된 달에도 마찬가지로 지출이 늘어났다. 그런 달에는 다른 소비는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100만 원이 넘었다.
들어오는 고정적인 월급이 없으니 돈이 새어나갈 때면 괜스레 불안해졌다. 돈이 바닥나면, 이 자유로운 시간들도 끝날 테니까. 나는 조금이라도 오래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절약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절약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이 맨날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가끔 밖에 나가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물건 구경도 하고 자연스레 쇼핑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밥은 사 먹더라도 커피는 집에서 만들어 텀블러에 넣고 다녔다. 어쩌다 카페에 갈 때는 2~3시간은 머물다 왔다. 밥값이 비싸다 싶으면 저렴한 김밥집에 들르기도 했다.
소비 욕구가 올라올 때마다 나는 아름다운 가게나 기빙플러스를 이용했다. 아름다운 가게는 헌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다. 기빙플러스는 기업이 후원해 주는 새 물건을 저렴하게 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면 기분 좋게 구입했다.
밖에 나간다 싶으면 동네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 주로 갔다. 도서관은 돈 없어도 시간을 잘 보내면서 놀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쾌적한 환경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조금 지루하면 장르를 바꿔 만화책을 보거나 또는 종이신문을 보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정보와 지혜를 얻고 나면 근처 공원을 걷는다.
공원 산책은 겨울에는 춥다 쳐도, 여름에는 분수대로, 봄가을에는 꽃과 단풍이 있어 눈이 즐겁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한낮 하굣길에 공원을 들른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정겹고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도 시원하다. 돈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이 여유가 참 감사했다.
나는 언젠가 다시 일을 시작하더라도, 1년간 배운 절약 습관만큼은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