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백수가 된 나는 단돈 생활비 20만 원 만을 내고 본가에 살고 있다. 숨만 쉬는데도 돈이 든다고, 집에서 살면서 필요한 공과금 그리고 식비와 생활비는 내가 내는 20만 원으로는 택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동생은 생활비 30만 원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종 퇴근길에 맛있는 걸 사 온다. 집에서 큰돈이 나갈 일 있으면 스스로 부담도 하고 있다. 엄마도 일을 다니시는데 나와 동생이 내는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생활비를 부담하고 계신다. 나로서는 죄송스러우면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엄마는 내가 일없이 회사 없이 노는 걸 뭐라고 생각하실까. 때 늦은 방황이라고 보실까. 그런데 그 방황이라는 시간은 내 나이 마흔에 하기엔 뭔가 철이 없어 보인다. 그 방황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고 어느덧 1년이 되었다.
나는 돈을 못 벌고 노는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지만 정말 진짜로 미안한 것이 맞나 싶었다. 정말 미안하면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고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놀고 있으니 어쩐다.
엄마는 나에게 설거지도 맡기지 못했고 쓰레기봉투도 홀로 버리러 간다. 나는 그저 내 먹은 것 설거지나 어쩌다가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내가 저녁은 차리지만 그마저도 힘들면 내팽개치는 경우도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나는 청소도 잘 안 하는 편이라 깔끔한 성격의 엄마가 한다.
일하는 엄마가 집안일까지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되도록 내가 하려고 노력하지만 집안일하는 습관이 아직 베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는 시간도 없고 몸이 힘들어서 잘하지 않은 집안일이었지만 지금은 놀고 있는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하면 안 될 것이기에 다시 신경을 쓰기로 한다.
일하지 않은 내가 일하는 엄마보다 더 많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집안일이다. 가족들은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부담하고 있으니 나는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나마 보답해야 한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밥벌이를 다시 해야겠다고. 그것이 가족들을 위한 길일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길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