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을 통한 유목적 세계시민-되기

by 이건주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도시와 시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제시하였다. 도시에서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시골에서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무한한 순환을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시골 선물」(1954)에서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종로 네거리”에서 행길에 가까운 떠들썩한 찻집을 “일부러” 택해서 앉아 있으면서, 그 이유가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반역성” 때문이라고 밝힌다. 자신은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 문명의 한복판에서 “조용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일종의 반역자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신의 반역성이 도시 문명 속에서 이기적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노는 계집애”와 “학생복을 입은 청년”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조차 “신(神)”이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며 정신을 추구하는 자신을 “고루”하다고 비웃는다. 도시 문명 속에서 정신을 추구하려는 그의 반역이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종로 네거리도 행길에 가까운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을 택하여 나는 앉아있다

이것이 도회 안에 사는 나로서는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 살도 넘을까 말까 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슷스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 없이 처먹고 있다

神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지가 어디 있느냐고 나를 고루하다고 비웃은 어제저녁의 술친구의 천박한 머리를 생각한다 - 「시골 선물」 부분(초판:39)

그는 어느 외딴 “광산촌”에 두고 온 “갈색 낙타모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있는 “검은 바위”처럼 자신의 큰 머리에는 작은 것이지만 “시골”이라서 쓰고 갔다가 잃어버렸다고 밝힌다. 그 모자는 현대 물질문명 시대의 “유행”에서 훨씬 뒤떨어져서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도시 물질문명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개별적 민족 전통과 보편적 정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도회”의 “소음과 광증(狂症)과 속도와 허위”가 밉고 서글프게 느껴질 때마다 잃어버린 모자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잃어버린 모자 속에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놓고 왔기 때문에 시골 여행 전과 달리 도시 사람들을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것은 “시골”에서 가져온 선물인 전통적 정신의 힘으로 도시 물질문명에 대한 “반역”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시골 여행 전에는 도시 물질문명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자신의 반역이 실패하고 있다는 “설운 마음”에 빠져 있었다면, 지금은 “시골 선물”로 인해 절망적인 설움에서 벗어나 다시 반역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서울에 돌아온 지 일주일도 못 되는 나에게는 도회의 騷音과 狂症과 速度와 虛僞가 새삼스럽게 미웁고

서글프게 느껴지고

그러할 때마다 잃어버려서 아깝지 않은 잃어버리고 온 모자생각이 불현듯이 난다

저기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먹고 떠들고 웃고 있는 여자와 젊은 학생을 내가 시골을 여행하기 전에 그들을 보았더라면 대하였으리 감정과는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는 나는 내 자신의 감정이 보다 더 거만하여지고 순화되어진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비교하여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 「시골 선물」 부분(초판:39-40)

그에게 도시가 “자본주의의 속도”와 맞물려서 “허무와 우울의 공간”이라면, 시골은 “근대에 대한 응전에 필요한 힘”을 충전 받을 수 있고, 도시의 물질문명을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바라보고 반역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이므로 푸코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도시를 완전히 떠나서 시골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도시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에서도 행길에 가까운 떠들썩한 찻집을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민족과 세계, 가족과 인간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면서 다원적 세계시민-되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싸리꽃 핀 벌판」(1959)에서도 도시와 시골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피로”가 문명적 공간인 “도회”뿐만 아니라, 정신적 공간인 “시골”에도 있다고 말한다. 여기의 “피로”는 「긍지의 날」(1953)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한 “노동의 피로”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시 문명 속에서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하다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 “푸른 연못”, “싸리꽃 핀 벌판”이 있는 시골에 왔지만, 여기서도 생활의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로는 도회뿐만 아니라 시골에도 있다

푸른 연못을 넘쳐흐르는 장마통의

싸리꽃 핀 벌판에서

나는 왜 이다지도 피로에 집착하고 있는가

기적소리는 문명의 밑바닥을 가고

형이상학은 돈지갑처럼

나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 「싸리꽃 핀 벌판」 전문(초판:132)

그는 물질문명의 공간인 도시에서는 개별적 생활을 위한 “돈지갑”이 떨어지지만, 정신적 공간인 시골에서는 “문명”을 상징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밑바닥”을 가고,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고 말한다. 도시의 물질문명을 밑에서 받치고 있는 정신적 공간인 시골에서는 “돈지갑” 때문에 피로하지 말고 “형이상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싸리꽃 핀 벌판”은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는 도시 문명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수 있는 헤테로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해의 「미스터 리에게」(1959)에서도 도시와 시골의 순환을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어느 날 물질문명의 공간인 도시 “뒷골목의 발코니” 위에서 개인적 “생활”난으로 고통을 받아 “얼”이 빠진 한 여인을 본다. 그리고 “미스터 리”에게 쪽지를 적어 놓고 “시골”로 떠난다.

나는 어느 날 뒷골목의 발코니 위에 나타난

생활에 얼이 빠진 여인의 모습을 다방의 창 너머로 瞥見하였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쪽지를 미스터 리한테 적어놓고

시골로 떠났다

「태양이 하나이듯이

생활은 어디에 가보나 하나이다

미스터 리!

절벽에 올라가 돌을 차듯이

생활을 아는 자는

태양 아래에서

생활을 차 던진다

미스터 리!

문명에 대항하는 비결은

당신 자신이 문명이 되는 것이다

미스터 리!」 - 「미스터 리에게」 전문(초판:134)

그는 쪽지에서 “태양”이 하나인 것처럼 “생활”도 어디에 가나 하나라고 하면서, “생활을 아는 자”는 태양 아래에서 생활을 차 던진다고 말한다. 도시든 시골이든 생활은 별 차이가 없으므로 “얼”이 빠지게 만드는 도시의 물질문명을 떠나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인 시골로 가서 “얼”을 지키며 살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문명”에 대항하는 비결이 “당신 자신”이 “문명이 되는 것”이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도시 문명 속에서 얼빠진 채 살거나,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시골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골 선물」에서처럼 도시와 시골을 오가면서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을 모두 추구할 수 있는 다원적 문명을 창조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제사(題詞)인 월트 휘트먼의 시구처럼 문명의 폐단에 대해 “재판관”처럼 판단만 내리며 머물러 있지 말고, “구제”의 길이 없는 사물의 주위에 떨어지는 “태양”처럼 문명으로부터 자신을 구제하는 길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라는 것이다.


한편,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도시와 시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도시에서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시골에서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무한한 순환을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여수(旅愁)」(1961)에서부터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소록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시멘트”로 만든 뜰에 “겨울”이 와 있었다고 말한다. 정신적 공간인 소록도 여행을 마치고 왔더니, “시멘트”로 상징되는 도시의 물질문명이 차가운 “겨울”처럼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이다.

시멘트로 만든 뜰에

겨울이 와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떠난

여행에서

電報도 안 치고

돌아오기를 잘했지

이 뜰에서

나는 내가 없는 동안의

아내의 秘密을 탐지하고

내가 없는 그날의

그의 비밀을

탐지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지쳤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나를

놀래일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나는 집에 와서도

그동안의 不在에도

놀라서는 안 된다

常識에 취한 놈

常識에 취한

常識

常…… 하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아직도

小鹿島의 하얀 바다에

두고

버리고

던지고 온 醉氣가

가시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 「旅愁」 전문(초판:195)

그는 “전보”도 안 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없는 동안 “아내의 비밀”과 “그의 비밀”을 탐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비밀”은 실제 아내와 그 사이의 불륜 문제가 아니라,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속물들의 숨겨진 욕망을 불륜 관계에 빗대어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도시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아내”와 “그”를 비롯한 세인(世人)들의 비밀은 보편적 정신을 외면하고 개별적 생활만 추구하는 이기적 속물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런 비밀을 탐지하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그동안의 “부재(不在)”에도 놀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도 도시인들의 속물적 비밀은 이미 알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도시 문명 속에 있는 “집”에 돌아와서 여전히 바쁘기만 한 자신을 “상식에 취한 놈”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전통적 공간인 “소록도”의 “하얀 바다”에 버리고 온 “취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문명 속에서 개별적 생활을 위해 일하는 피로와 설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먹고 “취기”에 빠져 살다가, 정신적 공간인 소록도를 여행하면서 하얀 바다에 이를 버리고 왔는데, 아직도 그 취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은 취기를 버리기 위해 다시 소록도의 하얀 바다로 가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산문 「소록도 사죄기」(1961)에서 “봄이 오면 꼭 이 친구를 데리고 소록도를 다시 한번 찾아갈 작정이다. ‘봄에 또 한 번 오슈. 다음에 올 때는 이번하고 놀라울 만큼 소록도가 달라져 있을 테니!’ 하고 소록도의 혁명 완수를 다짐한 원장의 장담도 테스트해 볼 겸.”(3판:102)이라고 썼다. 소록도는 도시 물질문명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시 찾아가야 하는 혁명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기의 「시골 선물」(1954)에서는 “시골”에다 모자와 함께 도시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설운 마음”을 놓고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소록도”에 생활의 고통인 “취기”를 버리고 와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다. 도시에서 개별적 생활에 몰두하다가 시골로 가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무한한 순환을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X에서 Y로」(1964)에서도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을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낮의 “전등(電燈)”에서 밤의 “소등(消燈)”으로, 생활의 “소음”에서 “라디오의 중단”으로 암시되는 침묵으로, 문명적인 “모조품 은단(銀丹)”에서 유학의 “인(仁)”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인단(仁丹)”으로, 현실적 일터인 “남의 집”에서 정신적 공간인 “내 방”으로, 개별적 생활을 위한 “노동”에서 이를 잠시 중단하고 쉬면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휴식”으로, 그리고 개별적 생활을 아예 잊어버릴 수 있는 “수면”으로 왔다고 말한다. 따라서 제목인 “X에서 Y로”는 도시 X에서 시골 Y로, 다시 시골 X에서 “나의 마을” Y로의 연속적 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電燈에서 消燈으로

騷音에서 라디오의 中斷으로

模造品 銀丹에서 仁丹으로

남의 집에서 내 방으로

勞動에서 休息으로

休息에서 睡眠으로

新築工場이 아교공장의 말뚝처럼 일어서는

시골에서

새까만 발에 샌들을 신은 여자의 시골에서

무식하게 사치스러운 공허의 서울의

幹線道路를 지나

아직도 얼굴의 輪廓이 뚜렷하지 않은

발목이 굵은 여자들이 많이 사는 나의 마을로

地球에서 地球로 나는 왔다

나는 왔다 억지로 왔다 - 「X에서 Y로」 전문(초판:231)

그는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신축공장”이 있고, 새까만 발에 어울리지 않게 “샌들”을 신은 여자가 사는 “시골”, 즉 점차 도시화되고 있는 시골에서 무식하게 사치스러운 “공허의 서울”을 지나서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발목이 굵은” 여자들이 많이 사는 자연적인 “나의 마을”로 “억지”로 왔다고 말한다. 물질문명의 공간인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처럼 변해가고 있는 “시골”도 떠나서 보편적 정신이 살아 있는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로 왔다는 것이다.


그는 “억지로” 왔다는 말로 시를 마무리하면서, 무식하게 사치스럽고 공허한 도시 물질문명의 폐단을 치유하기 위해서 보편적 정신이 살아 있는 “나의 마을”로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가 “억지로”를 강조하는 것에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오게 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 X에서 억지로 Y로 왔지만, 나중에는 다시 Y에서 X로 다시 이동할 것이라는 뜻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도시 문명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X에서 Y로의 이동을 “지구”에서 “지구”로 왔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그는 개별적 생활을 위한 도시와 보편적 정신을 위한 시골이 모두 지구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를 도시, 시골, “나의 마을”이 공존하는 다원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수영의 시에는 도시와 시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이 전기의 「시골 선물」(1954), 「싸리꽃 핀 벌판」(1959), 「미스터 리에게」(1959)와 후기의 「여수(旅愁)」(1961), 「X에서 Y로」(1964) 등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김수영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을 전기부터 후기까지 일관성 있게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 이건주 문학박사/K-문학연구소 대표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