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생각 차이. 아들 육아
"미카야, 내일 받아쓰기 시험인데 준비했어?"
"응!"
다음 날 점수를 보니 50점..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열심히 준비한 거야?"
"응!"
"이 점수에 만족해?"
"응! 왜?"
"응? ... 아니야..."
아들이 2학년 때 종종 했던 대화다. 만족한다는 대답이 더 당황스러워서 나도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고
어물쩍 넘어갔다. 칭찬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해 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100점을 맞으면 점수가 아니라 100점을 맞기 위해 노력한 점을 칭찬하라는 것이다. 이 내용을 배우고 나는 점수로 스트레스받게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한 편으로는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면 점수는 당연히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성적이 좋은 편이었는데, 부모님은 공부에 대해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지만 나 스스로 달달 볶으며
노력하는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은 첫째 딸이 닮았다. 유치원 때부터 2학년 때까지 독서골든벨 대회를 준비하며 치열하게 노력하더니 늘 1등을 했다. 결과도 과정도 굉장히 칭찬할 만했으니 우리 부부와 조부모님들까지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지금도 수행평가, 단원평가 등 크고 작은 평가들을 스스로 준비하고 잘 해내는 딸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도 좋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아들들도 좋은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아들이 학교를 가며 시작되었다. 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받아쓰기 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들은 처음 보는 시험에 불안해했고 나는 '열심히 준비하면 점수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육아서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50점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 점수를 본 딸이 놀라서
"나는 한 번도 50점은 안 받아봤는데!"
라고 말했다. 물론 아들은 누나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이 된 나는 먼저 아들에게 맡겨 두었던 받아쓰기 준비를 살펴보게 되었다. 노는 것인지 준비를 하는 것인지 모를 태도로 한두 번 써보고 끝! 그러고 시험을 보니 반을 맞거나, 운이 좋으면 60점이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60점이라면 당연히 과정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우리 아들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고, 결과도 능력에 비해 덜 나왔다고 생각되었다. 점수가 좋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결론이 나왔다.
남편과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아이들에게 선포(?)했다.
'모든 시험은 100점을 목표로 한다!'
100점을 꼭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 맞추겠다는 각오로 노력하라는 것이다. 아빠,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너희도 학생이니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100점을 맞으면 상을 준다는 식의 보상은 걸지 않았다. 네가 공부를 잘하면 너에게 좋은 것이지 엄마 아빠를 위한 것이 아니다고 말해주었다.
목표 점수를 알려주자 받아쓰기 준비에 조금 더 시간을 들인 아들은 2학년 2학기에는 평균 80점 이상은 받아왔다. 한 번은 100점을 받았기에
"네가 열심히 준비하더니 다 맞았네! 우리 미카는 노력하면 이렇게 잘하는 아이야!"
라고 한껏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한번 씩 웃고는
"응." 그러고 말았다.
'음.. 이게 뭐지? 기쁘지 않다는 건가?'
그래서 물었다.
"미카야, 100점 맞고 좋지 않아?"
"좋아~"
"끝이야?"
"왜?"
아.. 그때야 알았다. 우리 아들에게 받아쓰기 100점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공을 찼는데
세게, 멀리, 높이 나가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받아쓰기 자체에 관심이 없으니 다 맞은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런 아들이 3학년이 되더니 받아쓰기 점수에 무지 예민하게 굴었다. 자기 전에도 써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한테 불러달라고 해서 다시 써보고 갔다.
'아~ 이제 우리 아들이 점수에 욕심이 생겼나 보다.' 하고 내심 기뻐했지만 곧 비밀은 풀렸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70점 이하는 재시험을 치게 하셨던 것이다. 2학년 때 선생님은 시험치고는 점수에 상관없이 끝이었는데 3학년 때는 재시험이 있으니 그게 싫어서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것이다!
딸은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매사에 열심히 하고, 아들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만 신경 쓰거나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준비한다. 공부도 못하는 정도만 아니면 만족하는 듯하다.
'최선을 다하자.'
얼마나 흔히 쓰는 표현인가? 이 '최선'의 기준이 어느 정도 일까? 아들이 자랄수록 생각의 차이를 좁혀가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사춘기 때도 잘 맞춰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