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독서문화 만들기
2021년은 우리 가족이 매일 저녁 함께 책을 읽은 해이다. 우리 부부는 공부하라고 잔소리는 안 해도 책 읽으라는 잔소리는 한다. 공부는 못하면 스스로 하고 싶을 때 노력해서 쫓아갈 수 있지만 책 읽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문해력이 약해지고 그러면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할 때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바로 '우리 가족 독서 챌린지'였다.
방법은 저녁 8시부터 30분간 식탁에 함께 앉아 책을 읽는다. 이 시기에 막내는 읽기 독립 전이었으므로 나와 남편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읽어주었다. 30분이 지나면 아이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사회를 보고 돌아가며 그날 읽은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들은 사람은 '잘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박수를 쳤다.
조건은 아이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글책을 읽어야 한다. 학습만화나 '나무집'처럼 그림이 너무 많은 책도 제외된다. 대신 삼국지와 초한지는 어른판 만화로 된 것을 허락했다. 책 100쪽당 스티커를 하나씩 주고 스티커가 20개 될 때마다 1만 원씩 상금을 준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100개를 다 채우고, 읽은 책 중 20개를 골라 독서감상문을 쓰면 6만 원을 한꺼번에 주어 총 10만 원을 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 상금은 무엇을 사든, 어디에 쓰든 상관하지 않도록 했다.
막내는 한글을 완벽하게 떼지 못한 상태라서 매일 엄마나 아빠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발표하면 스티커를 주었는데 첫째, 둘째는 100개가 완성이었지만 막내는 1000권이 완성이었다. 독서감상문 대신 독서감상화를 그렸고, 그림책 5권을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으면 마지막 6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한창 레고에 빠져있던 아이들은 상금으로 레고를 사겠다는 생각이었는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사실 이 챌린지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빠가 같이 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쭉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책 읽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읽는 속도가 매우 더뎠는데 몇 년간 꾸준히 읽더니 지금은 관심 있는 여러 종류의 책을 한꺼번에
잘 읽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이런 경험이 있으니 남편도 아이들에게 꾸준히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늘 강조하고 독서 챌린지에 적극 동참하였다.
나는 내심 이렇게 1년을 보냈으니 아이들이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게 되리라 기대했다. 딸은 이미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 걱정이 없었지만 아들들은 반대였기에 이 챌린지는 사실 아들들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기도 했다.
챌린지가 끝나고도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아쉽게도 우리 아들들은 여전히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둘째가 글 읽는 속도도 느리고, 글 읽는 행위 자체를 꺼렸었는데 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글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거부감 없이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또, 삼국지와 초한지를 누나와 함께 읽었는데 남편까지 셋이 이 내용으로 나누는 대화도 많아졌다. 엄마는 모르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은근히 으쓱해하는 것 같다. ㅎㅎ
단지 읽기로 끝내지 않고 매일 짧게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우리 가족은 대화 시간이 많았고, 아이들의 생각도 잘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전에 함께 이야기하고 웃는 시간을 가진 것이 가장 즐거운 기억이다.
2022년까지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엄마, 아빠의 열정이 떨어져서 인 것 같다. ㅋㅋ 사실 매일 8시에 꼭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정말 '챌린지'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나는 치울 것이 많았고, 남편도 일하고, 저녁 운동까지 다녀와서 빨리 씻고 쉬고 싶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들이 다 자고 나면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우리 집은 평소에도 아이들과 대화가 많은 편이라서 그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으니 더 지속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2021년 한 해를 그렇게 보낸 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뜻깊은 일이었다. 내년이면 첫째가 13살, 둘째가 11살이 된다. 어쩌면 세 아이가 부모랑 함께 책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막내도 이제 스스로 읽기가 가능하니 다시 챌린지를 시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