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12살이 된 지금까지 특별히 용돈을 주지 않았다. 간식이나 필요한 준비물은 부모가 알아서 준비해 주었고, 딸은 친구들과 방과 후에 놀거나 군것질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명절이나 행사 때 어른들께서 주시는 용돈도 아이들 지갑에 그대로 차곡차곡 넣어줬는데 딸은 거기에서 조금씩 용돈을 가지고 다녔고, 가끔 친구들과 놀 때도 그 돈을 썼다. 딸이 용돈을 헤프게 쓰는 아이가 아니었고, 따로 용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아서 용돈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둘째인 아들이 '돈 쓰는 즐거움'을 알면서부터 용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둘째가 2학년 때 친구에게 며칠 연속 음료수나 핫도그 같은 간식을 얻어먹고 왔다. 사 준다는 친구도 다양했다. 처음 한 두 번은 고맙다는 인사를 했냐고만 챙기고 넘어갔는데 세 번 이상이 되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따로 용돈을 챙겨주고 얻어먹은 친구들에게 너도 사주라고 했다. 둘째는 저한테 간식을 사줬던 친구뿐 아니라 다른 친구까지 핫도그를 하나씩 사주었고, 그 경험이 매우 좋았나 보다. 그 후로 지갑에 모여 있던 용돈을 한 장씩 가져가서 이것저것 사 먹고, 친구들에게도 인심을 썼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아까워하지 않고 사주는 모습이 흐뭇했다. 며칠이나 가겠어하고 그냥 두었다가
생각보다 오래 계속되자 돈을 계획해서 쓰고 아끼는 것도 가르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모여 있던 용돈은 엄마가 따로 관리하고, 적정한 용돈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돈을 얼마나 줄지, 어떻게 줄지에 대해 고민이 많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식이니 부모에게 거저 받는 즐거움도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남편이 '공짜로 받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당연하게 생기는 돈을 바란다.'라고
'부자아빠의 자녀교육서'에서 나왔다면서 책을 보여주었다.
그 책을 읽어보고 용돈의 기준을 세웠다. 1주일에 1학년은 1천 원, 3학년은 3천 원, 5학년은 5000원이다.
대신 집안일을 하면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정리는 아이들이 당연히 하는 거라 제외하고 엄마가 주로 하는 설거지, 빨래 개기, 청소기 돌리기,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 등을 하면 일의 힘듦에 따라 보너스가 달라진다.
친척들에게 받는 용돈은 10%만 주고 나머지는 엄마 아빠가 관리하는 통장에 입금한다. 대신 생일 선물을 현금으로 받은 경우는 다 주기로 했다. 그리고, 모인 돈을 한 달 단위로 엄마나 아빠에게 맡기면 10%의 이자를 붙여서 주기로 했다. 돈이 불어나는 재미를 느껴보라고 이자율을 높게 정해주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보너스를 받기 위해 집안일도 돕고, 이자를 받기 위해 엄마 아빠 은행을
애용할 줄 알았다. 처음에는 막내가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려서 용돈을 받으니 둘째도 하겠다고 나섰는데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용돈을 준 것은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소소한 문구류 등을 사기도 하고, 돈을 모으고 불리는 재미도 느껴봤으면 하는 의도였다. 헌데, 용돈을 정해서 주자 인심 좋던 둘째는 받은 용돈을 꽁꽁 싸매기만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피규어를 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용돈을 모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싶어서 놔두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둘째가 친구들이 모두 간식을 먹는데 그 모습을 구경만 하거나 얻어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러면 안 된다, 용돈은 그럴 때 쓰는 거라고 타일러 보았지만 변하지 않았다. 한참 피규어 사는데 빠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몇 달째 이런 모습이 계속되자 용돈을 주는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돈은 모으기만 해서도 안되고, 쓰기만 해서도 안된다. 원하는 것이 있어서 계획하고 아낄 줄도 알아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즐기면서 쓸 줄도 알아야 한다. 둘째는 용돈이 정해지자 모으기만 하고, 친구들에게는 인색한 아이가 되고 있었다. 또, 내가 보기에는 좋아하는 피규어를 사면 며칠 갖고 놀다가 부서지면 다시 사는 낭비를 하고 있었다.
첫째는 우리 부부가 의도한 대로 용돈을 잘 이용하고 있었지만 둘째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막내는 엄마랑 늘 같이 다니니 따로 돈을 쓸 일이 없었고 형을 따라 피규어 사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둘째와 막내의 용돈을 중단했다. 첫째는 가끔 따로 용돈을 준다. 지난 경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돈이 중요하다는 것, 잘 모으기도 해야 하고, 잘 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려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저축, 이자, 복리, 투자 등의 개념은 알려주지 못한 것 같다. 이것은 사실 나도 잘 모르기도 하고 평생 공부해야 하지만 아이들 나름대로 조금은 느껴보았으면 했는데 잘 못 느낀 것 같아서 아쉽다.
아들들에게도 용돈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지혜롭게 가르칠 수 있을까 아직도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