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네, 나태주 선생님의 <풀꽃>이란 시인데요. 애정 가득한 관점이 담긴 짧은 시지만, 관찰하는 대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가 주는 통찰이 잘 적용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컬)였던 것 같습니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번씩 저에게 묻더군요. "어떤 계기로 그렇게 로컬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저는 말하곤 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여행 트렌드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대도시 관광명소 중심의 여행에서 소도시 이색 명소 중심의 여행으로 저의 관심도 옮겨 갔던 거 같아요." 그러한 흐름에 제가 살고 있는 도시 부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해졌죠. 특히나 저는 창의적인 소상공인들이 모여서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하고 있는 특화골목길 상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로컬투어 안내자료 ⓒ 피터
제가 주목한 부산의 골목길은 6군데였는데요. 부산 전포동을 기점으로 한 전리단길, 해운대역 뒤편으로 형성된 해리단길, 망미동 F1963 주변의 망미단길, 어린이대공원 부근 초읍동의 초리단길, 범어사역부터 범어사까지 형성된 범리단길, 복고풍 자원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한 뉴트로길 영도였습니다.
관심이 있으니깐, 자꾸 방문하게 됐고 해당 상권에서 영업을 하시는 사업주분들과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권에 위치한 로컬 브랜드의 운영방식과 공간을 이해하게 됐고 나름의 인사이트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가진 능력에 비해 덜 알려진 브랜드 상점들이 많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결심했던 거 같습니다. 가치 있는 로컬 브랜드를 발굴하고 스토리텔링 하여 큰소리로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그냥 골목길에서 아는 사람만 알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브랜드 상점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노력의 일환으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투어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전포동 전리단길 힙스터 투어를 했는데요.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한쌍의 부부가 예약을 하셨는데, 부산에서 오래 사시다가 현재는 양산에서 거주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부산에서 오래 사셨으면 웬만한 지역들은 잘 아실 텐데, 자주 오던 전포동이라도 색다른 관점으로 살펴보길 원하셨던 거 같습니다. 특히나 이색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고요.
전포동 카페거리 상징 조형물 ⓒ 피터
미팅 장소인 전포역 7번 출구에서 만나, 라이브 커머스 카페로 유명한 랜드마크9(라라스테이션)의 루프탑에 올라가 시원한 딸기 라테를 마시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주로 해설해드린 부분은 매스(Mass)의 종말에 따른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양상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흔히 4대 매체(TV, 라디오, 신문, 잡지)라고 하는 특정한 매체를 통해서만 사람들이 주로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그리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기에 상품을 잘 만들어서 4대 매체에 광고비를 들여 홍보만 잘하면 물건이 제법 잘 팔렸습니다.
그런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확대되고 SNS를 필두로 한 뉴미디어 채널이 확산되면서 소비와 유통의 양상이 바뀌게 되었죠. 공급자들은 넘쳐나는 상품들 속에서 자신의 상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면 소비자가 어떠한 경험과 편익을 얻게 되는지 스토리텔링 하여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광고 및 홍보에 있어서도 아주 세분화된 타깃 설정과 그에 맞는 특화 메시지 전달이 중요해지게 된 거죠.
그러한 흐름에 따라 카페, 음식점, 공방, 편집샵 등도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카페를 예로 들면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오는 공간을 넘어서서 스튜디오처럼 다양한 소품을 비치하여 사진을 좀 더 멋있게 찍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특화된 디저트 서비스를 통해 좀 더 누릴 수 있는 재미의 폭을 넓혀가기 시작했죠. 추가로 집과 사무실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라이브 커머스 카페, 랜드마크9 ⓒ 피터
투어 첫 코스인 랜드마크9은 이러한 트렌드가 잘 반영되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여러 담소를 나누고, 카페 2층에 세팅된 라이브 커머스 스튜디오와 1층에 연결된 키친 스튜디오 및 소셜 프리마켓을 둘러보면서 마치 여행지처럼 공간을 구석구석 살펴봤던 거 같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제가 공간 해설을 하고 있으니 카페 대표님이 말없이 옆에 와서 추가 설명을 해주시더군요(웃음)
두 번째 장소인 빈티지 38에 가서는 24시간 창고형 카페로 운영되는 앵커 스토어를 보면서 빈티지라는 콘셉트에 맞춰 전시되어 있는 이색적인 소품들을 살펴보고,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어떠한 디자인과 맛에 반응하는 지를 살펴봤던 거 같습니다. 오래된 LP판, 아날로그 TV, 축음기, 재봉틀 등 정말 앤틱 한 소품들이 다양하게 있더라고요.
앤틱한 소품이 가득한 카페, 빈티지 38 ⓒ 피터
이후, 전리단길로 넘어가 최근에 제일 관심이 집중되는 거리로 이동했습니다. 기존에 문구점 자리의 공간적 특징을 살려 뉴욕 스타일 수제버거를 제공하는 버거샵과 부산진구청에서 운영하는 전리단 갤러리를 둘러보았는데요. 예정했던 2시간 투어를 훌쩍 넘어 이야기를 나눌 만큼 매력적인 공간들이 주는 감동이 남달랐던 거 같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소상공인들이지만, 자신의 핵심역량을 재정의하고 브랜딩을 뚜렷이 한다면 분명히 도약을 위한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잘 구성된 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온라인 채널과 연결하여 옴니채널을 구축하는 거죠. 저 역시 계속해서 이러한 창의적인 소상공인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