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근처로 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두려움에 휩싸인다)
벌써 6년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온몸이 오싹오싹 두려움을 때때로 느낀다. 우리가 생활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의 트라우마는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직도 나의 근처로 오는 크던 작던 바퀴가 달린 물건이 두렵다. 뭔가 모를 두려움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강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2월 봄방학을 앞두고 저녁을 다 같이 회식하고서 다시 내 작은 차를 가지러 가던 중이었다. 2차선 도로 앞에서 기다리다가 초록의 보행자 신호등을 보고서 내 앞에 있던 초등학생 2명이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걸 보았다.
나도 건너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누군가가 눈을 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아주 조금만 보였다.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만 들었을 뿐 몸이 얼어붙는 계절은 아니었다. 천천히 도로의 중간 정도까지 가다가 아무것도 못 본 채 그만 정신을 잃었다.
그 도로는 걸어서도 익숙하게 다녔던 곳이었다. 편도 1차로의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한적한 2차선 도로였다. 길 건너면 아파트가 있고 그 옆에 학교가 있고 그 도로 끝에는 도보 5분 정도의 거리에 2차 종합 병원이 있었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주 살짝 힘들게 눈을 뜨니... 앞에 언니와 형부가 서있었다. 그 옆에는 흰 가운의 의사가 있었다. 순간 기가 막혔다... 그런데 저절로 다시 눈이 감아졌다... 나중에 언니한테 들은 얘기는 간호원 4명이 들것에다 꽤 바쁘게 나를 들고 MRI 찍고 CT 찍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 나는 계속 잠만 자더란다.
가족들이 사색이 되어서 초조하게 지켜보는 동안 나는 평온하게 잠만 자는 상황이었다. 그 후에 3일이 지난 후 나는 3차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예상하지도 않았던 병원생활을 했고 오른쪽 발목을 수술하며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며 내 이름 석자로 자주 불렸다.
억울한 사건이었다. 신호 위반하고 오는 여자운전자의 그렌저 차량 교통사고를 그만 횡단보도 위에서 그야말로 당한 것이었다. 그때에 나는 계획이 많았고 또 할 일도 많았지만 모두 그만두었다. 그 억울함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서 바퀴 있는 물건이 나에게로 오는 것을 감지하면 바짝 긴장하게 된다.
바로 그 당시에는 유모차만 옆에 와도 두려워서 피했다. 마트에서 물건 담는 커트도 가까이 오는 게 싫었다. 바퀴 달린 물건이 나의 근처로 오는 건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었다. 무의식 속에서였을지라도 그 사건이 나에게 많은 공포스러움을 주었나 보다.
그 후는 재활의학과 에서 또 의사들을 만났다.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병행하느라 병원 가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다시 걸음마하는 것처럼 걷기를 배우느라 머리 위에 책을 놓고 걷는걸 했다. 물리치료사가 훈련을 시켰다. 학처럼 한 다리로 서는 동작도 하며 연습 또 연습했다.
시간이 흘러 보험사와 타협하는 것도 실랑이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 과실이 몇 대 몇으로 나뉘지만 나의 과실은 0%였다. 그래도 보험사와의 타협은 정말 힘든 작업 중에 하나이었다. 오랜 세월 운전을 했어도 전혀 경험이 없었던 일이었다.
지금은 지난 2년 동안 라인댄스도 배워서 잘 따라서 하지만 험한 바위산으로의 등산이나 빨리 뛰어서 가는 동작은 부담스럽다. 오른쪽 발목이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면도 있다. 다시 하던 일을 할 수 있고 또 세계는 넓고 하고 싶은 일도 정말로 무궁무진하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