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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Jul 28. 2021

올림픽 양궁의 '끝'은
아름다운 '직감'의 표현이다

PM이 바라본 반복훈련을 통한 직감 형성의 과정

7월 27일 오늘 자로,
지금까지 도쿄 올림픽 2021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종목이 있다면 단연 '양궁'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양궁에 있어서는 세계 최강국임을 혼성, 여자단체, 남자단체 종목에서 연이어 증명해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 중에서도 명장면을 꼽으라면 아마 모두가 지금 타이밍에서 한 장면을 뽑을 것이다.



대만과의 남자단체양궁 결승전, 마지막 상황. 양궁대표팀 맏형 오진혁 선수의 순서.

9점 이상을 쏘면 대한민국 금메달이 확정되는 상황, 나지막히 뒤에서 김우진 선수가 남은 시간을 세고, 오진혁 선수가 화살을 쏘자마자 외친다. '끝'

멋있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끝'이라는 외침은 직감이다.

스포츠 선수가 어마어마한 훈련량을 통해 갖게 된 확신에서 오는 아름다운 직감이다.

쏘는 순간 오진혁 선수는 알았을 것이다. 너무도 익숙한 느낌이 그를 감쌌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떠오른 장면이 두 가지 있었다. (역시나, 나에게 대부분의 레퍼런스는 농구다)


첫번째로는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

북산고의 에이스 서태웅은 경기 중 눈 부상을 당하게 되는데, 이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슛을 성공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 몇백만 개나 쏘아온 슛이다.

두번째로는 NBA 대표 스타, 전세계에서 가장 슛을 잘 쏘는 선수, 스테판 커리이다.


스테판 커리하면 떠오르는 많은 장면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Look Away Shots'라고 불리는 그의 세레모니이다. 말이 세레모니이고 형태가 다를 뿐, 그 본질적인 모습은 이번에 양궁 대표팀에서 본 오진혁 선수의 '끝'과 매우 흡사하다.

[유튜브] 스테판 커리의 Look Away Shots 모음

스테판 커리의 'Look Away Shots'는 바로 그가 슛을 쏜 뒤 확신에 찾을 때 나오는 액션이다.

농구에서는 골이 들어가기까지 코트 위 10명의 선수들이 공의 향방에 온 집중을 다한다. 슛을 쏜 슈터도 마찬가지. 슛을 쏘고 정석적으로 바로 다음 취해야 할 액션은, 위치를 잡고, 상대 선수를 박스아웃(몸으로 견제하며 리바운드를 따기위해 포지션 우위를 차지하는 행동)하며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스테판 커리는 뒤돌아 자기 코트로 향한다.

이 것은 직감이다. 공이 손을 떠나자마자 온 직감. 서태웅이 만화에서 몇백만 번 쏜 것처럼, 실제로 몇 백만개의 슛을 쏘며 훈련했을 스테판 커리가 가진 확신에서 비롯된 직감이다.

오진혁 선수의 '끝'을 보고 떠오른 장면이었다.


그리고 하나가 더 떠올랐다.


머슬 메모리

나는 농구를 보는 것만큼이나 하는 것도 좋아해서, 한번씩 큰 돈을 들여 스킬 트레이닝을 받으러가곤 한다.

스킬 트레이닝이란 시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격 기술들을 중심으로한 일종의 '농구 과외'다.

처음 스킬 트레이닝을 받으러 갔을 때, 뇌리에 강하게 꽂힌 말이 있었다. 바로 '머슬 메모리'.


공을 잡은 상태에서 콘을 수비수라고 가정하고 강하게 숄더 훼이크, 이후 축발 반대발을 내딛었다가 반대방향으로 강하게 치고 나가며 펀치드리블, 드롭스텝 이후 스텝백 슛.

같은 동작을 구분동작으로 연습하고, 연속동작으로 연습하고, 콘을 놓고 했다가 코치를 앞에 두고 했다가, 전력으로 달린 뒤에 해보기도 하고, 계속 반복했다. 

그 때 트레이닝 코치가 '머슬 메모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공부를 하면 지식을 기억하는 것처럼 훈련을 거듭하면 몸이 알아서 기억하고, 시합과 같이 정신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그 동작이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농구는 상당히 의사결정이 많은 스포츠라, 얼핏 보기에는 별 것 없어보여도 한 선수가 공을 갖고 드리블해 슛을 넣기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맞닦뜨리게 된다.

찰나의 순간 순간, 최적의 선택을 내야 골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때 그 선택을 돕는 직관은 훈련으로 쌓이고 생성된 머슬 메모리로부터 비롯된다.



이 모든 파편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핵심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 이 모든 아름다운 직감과 직관이 생긴다는 것이다.

약 두달 전의 일이다. 

이직을 희망하던 한 회사에 PM 포지션으로 지원하기 전, PM리드와 커피챗 시간을 가졌다.

단순한 채용과정 전 커피챗이었다기 보다,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던 대화의 장으로 나에게 기억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 주제에 대한 내용이었다.


"User Centric(고객 중심적)한 의사결정을 내리면 무조건 성공하는가?"

아마도 그 전에 내가 계속 User Centric한 PM이 되고자 함을 강조하였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 문제를 정의할 때 고객의 눈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이미 많이 언급해서 이 이야기가 나왔지 않았나 싶다.


PM리드 분이 말했다.

User Centric, 좋죠. 좋습니다. 그 가치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user-centric한 의사결정을 내리면 무조건 성공하나요? 이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많은 프로덕들은 생각보다 기획자의 직관에서 비롯된 경우들이 많아요. 유저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기획자의 직관이 더 중요할 때도 많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User Centric의 가치,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에 대해 '그래서 왜 중요한가', '절대적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그간 너무 교과서적으로 User Centric을 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User Centric함이 중요한가라는 의문에는 당연히 Yes. 뒤이어 나는 이렇게 답했다.

맞습니다, 기획자의 직관이 실패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죠. 하지만 그 기획자의 직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고 하면 전 축적된 경험, 그리고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도 수많은 의사결정들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결과가 성공적일 때도, 실패로 연결될 때도 있었을 것이고, 그 크고 작은 시도와 결정의 경험들을 거쳐오면서 기획자에게 '자신만의 빅데이터', 즉 직관이 생겼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가 바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내려 성공적인 프로덕트를 만든 PM, 기획자의 과거를 생각해본다면 결국 User-Centric의 중요도를 인식하고, 그 간의 결정들에서 항상 이 유저 중심적으로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그 직관 또한 User-Centric한 방향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고객의 목소리만 듣는다고 해서 좋은 결정을 내리기보다 결국은 기획자의 직관이 좌우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그 직관이 형성되기까지는 치열하게 고객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기획자의 마인드셋이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직감과 직관. 정확히는 직관에 근거한 의사결정과 그 뒤에 확신을 거쳐 나오는 아주 강한 직감.

그 과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반복된 훈련.

스포츠에서 뚜렷히 나타나기에 오늘 올림픽 양궁과 농구의 예시를 들었지만, 결국 어느 영역에서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절대로 함부로 단언하거나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활을 쏘자마자 그 즉시 튀어나오는 '끝'이라는 오진혁 선수의 외침처럼,

슛을 쏘자마자 그 즉시 뒤를 돌아보는 스테판 커리의 자신감처럼

숱한 연습과 훈련에서 얻어진 자연스러운 '확신'이어야 한다.


그 확신에서 나온 직관과 직감은 충분히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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