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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Aug 12. 2021

우상혁은 즐겁다

'긍정성의 미학', 즐거울 수 있다면 결과는 변화의 과정이 된다.

행복해서 뛰는게 아닙니다. 뛰어서 행복한 겁니다.


매년 싸이 콘서트를 가면 (코로나 때문에 이것도 공백이 생겼지만) 공연 중후반부에 싸이가 항상 하는 말이다. 이 말을 참 좋아하는게, 업무든 업무 외적인 일이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높은 에너지레벨을 만들고, 이 에너지레벨은 좋은 퍼포먼스로 이어진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은 퍼포먼스란, 아웃풋 그 자체만을 의미한다기보다, 결과에 대한 반응과 후속조치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개념이다. 좋은 효율, 실패 없는 좋은 결과,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높은 예측성공률, 모두 정말 가질 수만 있다면 가지고 싶은 요소들이지만, 내 성향은 애초에 이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 무수한 시도와 무수한 실패, 그 속에서 얻는 레슨런들로 적어도 같은 실수, 실패를 하지는 않겠다는 마인드셋, 결과의 시점보다는 의사결정의 시점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선택과 과정에 믿음을 갖는 것. 이 방향이 지금까지 택한,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택하게 될 기조이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긍정성', '즐거움'에서 오는 모티베이션이 바로 내가 택한 기조를 위한 대전제이다.


잠깐 이 타이밍에서, '나만의 결과론'을 한 번 짚고 넘어가본다.


긍정성과 즐거움에 대한 강조 없이는 결과를 경계하는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선택은 항상 결과에 앞서야 한다. 그 순서가 제대로 서야, 그 사이사이의 요소들이 채워져 합을 낸다. 선택할 때에는 오로지 선택에만 집중한다. 내 가치관과 내 경험에 기반해 옳은 선택인지를 정하게 되고, 그렇게 내린 선택은 '못 먹어도 고' 마인드와 함께한다. 내가 내린 결정이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내가 만든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을 때, 이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다음 선택에 대한 소중한 레퍼런스가 된다. 좋다면 한 번 더 고다. 좋지 않았다면, 수정한다. 항상 최종 결과 같아보이는 스테이지 뒤에도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은 없다. 끝이 없으니 실패는 '오히려 좋아'로 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너무 의식하다 보면, 결과가 선택에 우선하다보면 순서가 꼬이고, 사이에 힘을 싣어줄 수 있는 요소 대신 방해요소들이 들어서게 된다. 내가 내린 선택에 만족할 수 있을까? 좋은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더라도 선택의 시간부터 결과의 순간까지 너무 심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여기까지 보면, 그래서 그게 긍정성과 무슨 관련인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성 없이 내 선택에 확신을 갖고, 결과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덮을 수 있는 건 즐거움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잘되든 잘 안 되든 결과를 확인하는 즐거움이다. 결과를 보는 빈도를 더 늘려서 결과 하나하나가 끼치는 영향이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를 보는 텀이 길어지면 두려움에 잠식되는 정도도 커진다. 하지만 결과를 확인하는 텀이 짧다면 그만큼 하나하나가 별 것 아니게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결과 대신 '변화의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이를 일깨워 준 것이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본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표정과 행동이었다.

개인 이전 최고기록(2m 31cm)에 임박한 2m 30cm를 달성한 후 우상혁 선수는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이제 시작이에요.

그의 다음 차례, 그는 2m 33cm를 시도했다. 1차 시도 실패. 당연한 실패다. 이전 최고 기록을 웃도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큰 도전인 셈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에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어려울 텐데,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결과의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2차 시도에서 그는 웃는 얼굴로 관중의 박수를 유도했다.

물론 높이뛰기 종목 자체가 관중의 박수를 일부러 유도해서, 박자를 맞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더 큰 이유는 에너지레벨이다. 박수를 유도하는 동작에서, 실제로 관중들이 박수를 치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는 우상혁 선수 본인에게 흡수되었다. 2차 시도 성공. 새로운 개인 기록을 가장 큰 올림픽 무대에서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 시도. 2m 35cm. 그는 계속 웃었고, 계속 박수를 유도했다. 그리고 또 넘었다. 그렇게 한국 신기록.

우상혁 선수의 경기를 몇 번 돌려봤는데,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었다.

우상혁 선수가 시도하기 전과 후, 웃음의 차이가 재미있다.

얼핏 보면 말도 안되는 하이텐션으로 항상 웃고 있는 우상혁 선수. 하지만 달리기 전과 후의 웃음은 의미가 다르다. 달리기 전, 그는 본인을 위해 그 과정 자체를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박수 소리가 들리고, 긴장되는 마음 속에서 분위기를 만끽하며 웃는다. 그리고 달리고 난 후, 그는 땅바닥을 치며 '기뻐했다'. 결과는 결과 자체로 만끽한다.

우상혁 선수는 마지막으로 2m 37cm의 벽을 몇 차례 두들겼지만 계속 실패했다. 

처음 실패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시도를 생각했다. 

두번째는 "괜찮아!" 라며 크게 외쳤다. 

세번째는 만족스러운 웃음기와 함께 대회를 마무리지었다.


이후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이제 홀가분합니다. 2년 동안 데이터 만들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올림픽 준비했는데 후회없는 경기가 맞고요. 저는 행복합니다. 메달은 비록 못 땄지만 괜찮습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을까. 심지어 국가대표 결정전에서도 제일 마지막까지 도전해서 티켓을 따냈던 그다. 그는 과정에 집중했고, 본인의 변화에 집중했다. 하나 하나의 결과는 그에게 참고할 데이터였을 뿐이다. 끝까지 확신을 가졌고, 가장 큰 무대에 올라서도 그 과정을 즐거운 자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랬기에 한국 신기록이라는 역량을 뛰어넘는 결과를 이룰 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진짜 당연한 결과에요. 저희는 무조건 믿었고 의심하지 않았어요.'


웃으면 행복해진다라는 말은 크게 믿지 않는다. 이 말 자체가 긍정성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웃어야지 하고 웃으면 입꼬리가 올라간, 사뭇 어색한 미소가 나온다. 긍정의 에너지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에 즐거워하는지를 파악하고 즐거워지는 짧은 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진짜 즐거워져야 한다. 이를 테면 우상혁 선수가 스타트 전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처럼. 그렇게 행복해지고 즐거워지면, 자연히 웃게 된다. 나에 대한 파악이 먼저고, 해온 과정에 대한 믿음이 두번째며, 결과는 결과대로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마무리다. 그랬기에 싸이도, '행복해서 뛰는게 아니다, 뛰어서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한게 아닐까. 결과에 대한 감정을 두려워하기 보다, 과정이 지난 후의 감정을 자연히 받아들이는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메달을 못 땄지만, '240cm도 충분히 가능하고, 애들(경쟁 선수들)이 저를 무서워하겠죠. 3년 후 파리 올림픽, 내년 아시안게임, 최초로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 금메달까지 바라봐요. 저는 어리기 때문에 파리 올림픽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될 거 같습니다." 라고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말한다.

 

스스로도 본인이 맞이하게 될 변화의 순간들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서두에도 말했듯, 끝은 없으니, 이번 대회에서 마지막에 경험한 실패는 '오히려 좋다'.


일반인이 멀리서 육안으로 1cm 높이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 1cm를 높이기 위해서 높이뛰기 선수들은 수백번 수천번을 뛴다. 육안으로 구분도 어려운 변화를 조금씩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즐긴다. 그런 점에서 빠르게, 자주 결과를 확인하는 높이뛰기라는 스포츠가 정말 대단하면서도 매력적인 스포츠라고 느꼈다.


어릴 때 택시 바퀴가 오른발을 깔고 지나가는 교통사고로 왼발 오른발이 1cm 넘게 차이나는 신체적 결함도 안고 있지만, "괜찮아요. 발구름은 왼발로 하면 되니까." 라며 신체적 결함이 오히려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다음 무대를 위해 수 천번의 실패를 겪으러 간다. 그에게 올림픽 무대는 어떤 의미일까. 긴장감에 압도되는 무대였을까, 즐거움이 함께하는 무대였을까. 이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새삼 나의 일상에도 '즐거움'의 가치를 어떻게 적용시킬지, 선택과 과정을 결과와 어떻게 분리시킬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즐거워질 수 있다면, 결과는 '변화의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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