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아닌 삶이 있는 곳
월마트(Walmart)는 내가 수시로 들르는 곳이다. 우리 가족의 단골 마트라는 말이 더 맞겠다. 일명 우리는 월마트 보이들이다. (월마트에 가는 모양새가 신나는 아이들 같아 내가 붙인 이름) 월마트는 식품, 의류, 화장품, 전자 제품, 학용품 등이 있고, 심지어 약국까지 들어서 있는 대표적인 동네 마켓이다. 갑자기 집안에 휴지나 청소 용품이 떨어지면 부리나케 가서 사 올 수 있는 곳인 만큼 편리한 곳이다.
작년 12월에 이사를 하면서 "이 동네에는 월마트가 어디에 있지?" 하며 가장 먼저 찾기 시작한 것도 월마트다. 미국에선 어디를 가든지 집 주위에 꼭 있어줘야만 하는 마트고, 사실 어디를 가도 월마트가 있다. 맥다놀드(Macdonald)나 스타벅스(Starbucks)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그 이름 때문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도 아마존(Amazon)과 더불어 전국의 월마트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인기 있는 동네 마켓이 된 것은 저렴한 가격이 한몫을 한다는 것이고, 어느 때고 반바지 입고, 슬리퍼 신고, 옷을 뒤집어 입고도 장을 보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대표적인 슬로건은 "Great Value(좋은 가격)"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월마트는 미국에서 "싱글 맘"의 마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저임금의 싱글맘이 주 고객을 차지한다고 해서 이런 말이 생겨났다. 들를 때마다 두리번거리다 보면 아이들을 대동하고 나온 엄마들이 수두룩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신기한 일은, 미국 토박이 중산층 사람들은 월마트에서 장을 보지 않는다. 특히, "나, 미국 토박이야!" 하는 까다로운 노인들은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 이들은 주로 시카고의 브랜드 마켓이라 불리는 "쥬얼 아스코(Jewel, Osco)"나 "카스코(Costco)로 간다. 쥬얼은 월마트와 가격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비싸다. 똑같은 물건이 최고 1달러 정도 더 비싼 것도 있다.
미국 노인들이나 토박이들은 가격비교도 한번 시도해볼 생각도 없는 듯하다. 평생 브랜드 마켓의 고객으로 남겠다는 의지다. 이런 걸 보면 융통성이나 흥정 같은 것에는 안중에도 없다.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지, 으음~ " 하며 식품점 가게도 물건의 브랜드를 따지는 것처럼 절대 바꾸지 않는다.
이들이 월마트에 가지 않는 진짜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poor people)이 이용하는 마트"라는 인식 때문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월마트가 저임금의 대표적인 "싱글 맘"과 가난한 이민자들의 마트라고 생각하는 인식 때문이다.
레베카가 하이스쿨 재학 중이었을 때다. 몇 종류의 스낵을 학교에 가져갔다. 물론, 월마트 상표였다. 한 친구가 대뜸, "어? 이거 월마트 표 스낵이쟎아?" 하더니,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마트라고 대놓고 말했다는 것이다. "음, 우리는 저렴한 월마트 가족이야! , 이 녀석아! 너희 가족이 다니는 마트(쥬얼)가 얼마나 비싼데?! 가격에 속고 있는 거나 알기나 해?!" 하고 한마디 쏘아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거기에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집에서 좀 떨어진 서버브 쪽으로는 보수적인 백인 밀집지역이다. 거기엔 월마트가 없다는 것이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교포들은 대략 20분 거리에 있는 월마트를 찾아가야만 한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이게 모두 극성스러운 주민들 때문이란다.
그 동네에 월마트가 들어서면 "가난한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올 것이고, 동네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이 시위까지 할 정도로 반대가 거세었다. 결국 대형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월마트의 까다로운 동네 입성은 보기 좋게 거부당했다.(참고로, 미국은 서버브의 주택가에 교회나 상업건물이 들어서려면 주민들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예를 들어, 같은 카스코-Costco라도 서버브에는 종류가 다양하고 더 좋은 품질의 물건들이 많다)
월마트는 "서민들의 마트"다. 한국 교포들도 대개가 월마트를 애용한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민자들과 미국인들 중에서도 어려운 살림을 꾸리는 저임금 사람들이 대부분의 고객이다. 오래전 월마트가 한국에도 입성했지만 브랜드에 치중하는 사람들의 취향 때문인지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월마트는 본토로 돌아와야 하지 않았나.
내가 생각하기엔 월마트는 다민족이 사는 미국형에 딱 맞는 마트다. 뭐니 해도 저렴함과 편안함이다. 월마트의 물건들은 자체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퀄리티 (Quality)가 떨어지거나 포장이 엉성하지도 않다. 브랜드 마켓에 있는 물건들과 다를 게 없다.
흔히,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을 때 약사가 묻는 말이 있다. "지네릭(generic-유명 브랜드가 아닌)으로 할래요? 브랜드(brand)로 드릴까요?" 다. 성분은 똑같다. 단지, 유명 브랜드냐, 아니냐 차이로 가격이 다를 뿐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난 항상 유명 브랜드가 아닌 지네릭(generic)을 원한다.
지네릭(generic)은 유명 브랜드가 아니다. 사실, 유명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대충 만들어져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뢰감을 얻기 위해 제품에 더 공을 들였을거란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브랜드를 고르고, 따지고, 선호하지 않는다. 여성 세안제, 화장을 지우는 폰즈(Pond's)나 코티 파우더(coty face powder)는 품질이 우수하다. 20대부터 줄곧 사용하는 제품들이고 월마트에서만 구입한다.
각종 브랜드를 사용해본 결과 이 제품만큼 좋은 게 없다. 마스카라, 립스틱, 아이섀도 같은 디테일 화장품도 월마트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얼굴에 사용하는 건데, 괜찮을까?" 하고 한동안 이 제품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런 생각은 편견에 대한 오만이었다고 할까. 뭐 그랬을 정도다.
나에겐 브랜드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상품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멋지게 걸치는 것이다. 그냥 디자인이 예쁘고, 마음에 들면 30불짜리의 가방도 명품처럼 들고 다닌다. 내가 나만의 브랜드를 만든다. 그것이 나의 브랜드가 된다. 미국에서 월마트가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누군가가 어쩌고저쩌고 할지라도 월마트는 내가 선호하는 식품 브랜드고 마트다.
어떤 의미에서, 월마트는 사실, 상당한 브랜드다. 미 전역, 가는 곳마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가격이 저렴하든, 누가 이용하든 상관없이 인기로 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상당한 것 아닌가. 미 전역에 걸쳐 있고, 가는 곳마다 쉽게 만날 수 있으니.
거기에 가면 영어보다는 각자의 모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나와 같은 이민자들이 있고, 서민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쪼들리는 생활에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들도 있다. 진정한 월마트 보이들이다.
난 월마트가 저렴해서 좋고, 다국적 재래시장처럼 웅성 웅성거려서 즐겁다.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풍선껌 불고, 슬리프를 질질 끌며 한밤중에도 달려가는 곳이다. 싸구려 솜사탕을 입에 물고 마냥 신나 하는 아이들처럼. 나도 매번 그렇게 룰루랄라하며 가는 월마트 보이다.
함께 나누는 영화
The Guernsey-Literary and potato pie society -"건지"/감자 껍질 파이, 문학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