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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Aug 16. 2020

미국 교포들의 밥벌이

이민사회의 블루칼라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물어온다.

"미국 교포들은 대체 무슨 일들로 밥벌이하니?”


사실, 나도 누군가 "뉴질랜드에 살아요" 하면 ,

"거기서 무얼 해서 먹고살아?라고 다급히 물어본다.


그처럼 언어가 다른 먼 이국땅에서의 밥벌이란 생계와 관련된 중요한 이슈다.

궁금증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미국에서 교포들이  직업을 갖는 일은 주로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이루어진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점에서다. 한인 커뮤니티는 "미국 속의 작은 한국"이다.  L.A 나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이민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시카고 역시 한인이 어림잡아 십만 명쯤 된다. “미국 속의 작은 한국"이라고 할 만큼 큰 이민사회다.  


 이민사회에서 한인들(한인 1세 기준)의 밥벌이란, 주로 육체적인 노동일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세탁소, 미용실, 식당, 식품점이나 뷰티 서플라이 스토어 (Beauty supply store -흑인 미용제품 등을 판매하는 잡화점 ), 빌딩 청소업 등이다. 보통 부부가 함께하는 개인 비즈니스가 가장 흔하다. 크고 작은 사업체에서 교포들은 주인과 직원으로 만나 밥벌이를 위해 동고동락한다.


 내가 20여 년 전 미국에 왔을 당시에 교포들의 밥벌이는 주로, 세탁소나 미용실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세탁소는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도 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음, 여기는 세탁소가?” 하고 두리번거리다 보면 어김없이 "보그(Vogue) 세탁소"하고 나타난다.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한인 부부가 보인다. 주인장 아저씨는 쉴 새 없이 다림질을 한다. 아주머니는 손님을 맞고, 바느질을 한다. "어머, 여기에도 한인이 ~" 하면서  반갑다. 왠지 짠~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세탁소는 한인 중. 장년 부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사업체요, 밥벌이다. 마땅히 직업을 찾기가 힘든 연령대고, 언어문제도 장벽이다. 그러다 보니 "부부가 함께" 하는 비즈니스로 1위다.


내가 보기에, 세탁소는 비즈니스중에서 고된 밥벌이 중에 하나다. 바쁠 땐 온종일 서있어야 한다. 게다가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중노동이다.


동네 이모 정도로 친해진 단골 세탁소 여주인장의 귀띔이다. 부부가 함께하는 비즈니스로는 세탁소가 최악(?)이라고 한다. 24시간을 함께 붙어있어야 한다는 이유다. 그들에겐 휴가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지겨워(?) 죽겠어요~"라고 매번 하소연을 하신다.


전날 밤, 집이 떠나가도록 부부싸움을 했어도 다음날은 실. 바늘처럼 나란히 한 장소에서 버텨야 한다. 수십 년간 이런 식이 되다 보니 서로 (남편이, 아내가) "돌"처럼 여겨질 정도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힘든 노동으로 푼돈을 모아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집도 장만했다. 그런 자랑들을 늘어놓을 때면 아주머니의 얼굴은 금세 환해진다.


한편으론, 누구나 치열한 밥벌이를 하는 이민사회에서 러키 맨(Lucky Men)들도 존재한다. 빈둥거리며 출. 퇴근 시 가게문만 열고 닫는 일명 셔터맨(?) 남성들이다. 주로 밥벌이가 좋은 여행사(에이전트)와 약국(약사)을 운영하는 아내를 둔 운 좋은 남성들이다. 러키 맨들이란 일은 사모님들께서 하시고 사장님 명함만 달고 다니신다. 로렌스 약국의 김 사장님, 선 여행사의 박 사장님. 이런 식이다.


자녀들 픽업이나 심부름 정도를 하면서 온종일 골프만 치고 어슬렁거린다. 이민사회에서 아마 모든 남성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장님이 아닌가 싶다. 출. 퇴근 시만 나타난다고 해서 이들에게 "셔터 맨"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졌을 정도다.  


이런 배경을 보면, 이민사회에서 대개 남성들이 여성보다 취업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언어 능력도 처진다. 가령, 여성들은 한인계 은행이니, 회사 사무직 등 좀 더 수월한 밥벌이가 용이하다. 남자들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한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경력이 받쳐주어도 언어가 능통하지 않으면 밥벌이는 쉽지 않다. 소위 명문대 출신이래도 소용없다. 그 이력이 미국에서는 큰 효력이 없다. 그럼에도 학벌을 따지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어른들도 꽤 있다. 가령, 식품점에서 일을 하면서  "나, 명문대 출신이야~"하며 은근히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는 소문도 있다.


이전엔 이런 어르신들을 많이 만났다. 재미있고 의아한 것은 이들에겐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남자는 모두가 서울대, 연. 고대 출신이다. 여자는 한결같이 이대 출신이란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후에는 어떻게 된 건지 만나는 어른들마다 너도 나도 “나, 서울대, 이대 출신이야~”라고 하질 않는가?


시카고는 한국 명문대 출신만 이민오나? 초기 이민자들은 유학생도 꽤 있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한동안 수많은 명문대 출신자들을 만났다.


유독 남성들 사이에서 명문대 바람(?)은 심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명문대 타령은 여전하다. 한인 세일즈팀에 조인한 새 직원이 무슨 명문대 출신이다 하면 금방 귀에 들어온다. 그날로부터 시선 집중이다.

어딜 가도 한인들은 여전히 “어디~ 출신”운운하는 걸 좋아한다.


아무튼 이민사회에서의 밥벌이는 명문대 출신 상관없이 누구나 노동이다. 멋진 집과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밥벌이를 하는 이민자들은 노동을 하는 블루칼라다.


나 같은 경우에는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첫 직장이 여행사였다.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한인 운영의 여행사로 직원의 대부분이 미국인들이었다. 사장님은 서울대 , 에이전트 한분은 이대 출신이었다. 아마 내가 "명문대 출신이야"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후로 은행에서 일을 했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밥벌이를 한 것도 10년이 넘었다. 나는 처음부터 운 좋게 미국인들과 일하는 사무직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육체적인 노동과도 같은 힘든 밥벌이였다. 이민 1세로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았다. 극성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치일 때도 있었다. 뭐, 사무직이니 늘 편안하게 앉아서 하는 밥벌이겠지가 아니다. 때로는 발로 뛰어야 하고, 내키지 않는 힘든 일도 감수해야 한다. 나의 밥벌이도 노동을 하는 블루칼라다.


세월에 따라 이민역사가 바뀌듯 교포들의 직업도 변하고 점차 다양화되었다. 이민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럴싸한 식당들도 속속들이 생겨났다. 점차 붐을 이루듯 네일 , 마사지 샵들도 경쟁하듯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직업선택은 다양해졌다. 네일숍은 딱히 일할 만한 곳을 찾기가 힘든 30-40대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밥벌이가 되었다. 팁도 두둑하고 비교적 손쉽게 네일 스킬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도 엄청난 노동이란다.


미국 땅에서 이민자들이 겪는 밥벌이에 대한 고충과 힘겨움은 어떤 형태의 직업이든 "노동"이다.

노동이란 땅을 파는 공사장에서 하는 노가다 일만도 아니다. 다른 언어와 문화와 부딪히고 깨지면서

하는 치열한 밥벌이다. 그래서 이민사회에서의 밥벌이란 절실하다.   


20대에는 노동따윈 할수 없어! 웬 블루칼라?라고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미국이란 이국땅에서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배웠다.

그래서 나는 소위 "블루칼라"를 의미하는 노동이란 말이 새삼 좋아졌다.

힘겨움속에서 느끼는 자부심과 근면성 때문이다. 경외심까지도 든다. 미국에서의 밥벌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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