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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Nov 24. 2018

 시민의 의무-배심원의 하루

Jury Duty (배심원 임무)

11월 5일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른 아침이었다.

이 날은  직장을 가는 대신 법원으로 미국 시민으로서 하루 업무를 하러 가는 날.

나에게 배정된 법원은 집으로부터 시카고 다운타운을 지나 사우스 28 가쪽에 있는

Cook County Circuit Court (쿡 카운티 서킷 법원)이다.


Illinois Supreme Court -사진 출처 Independentmaps.org


미국의 법정은 모든 사건 (Case)에 대한 유. 무죄를 최종적으로 가르기 위해 12명의 배심원들이

선정되며, 주어진 사건의 증거를 토대로 하여 판사의 지시에 따라 이들의 의견이

사건에 최종적으로 반영된다.


Jury Duty (배심원 임무)는 "배심원으로 봉사하는 시민의 의무(Civic duty to serve on a jury)".

미국 시민이면 누구나 해당이 되며,  주기적으로 2-3년 사이에 한 번씩 당첨? 이 되는데, 잊을만하면

다시 날아오는 무슨 과세금 청구서처럼 그렇다.. 매번 부담스럽기만 한 과제처럼 말이다.

그때마다 다른 장소 또는 이전과 같은 곳으로 배정되는 법원으로 변호사처럼 출두해야 한다.


Jury Duty에 관한 통지는 대략 1달 전에 미리 편지로 알려주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개인적인 스케줄을 여기에 맞추어 나갈 수 있도록 조절이 가능하다.

모든 직장에서는 이 날 하루는 "시민의 의무의 날"로 여기고 하루치 일당을 국가업무로 처리해준다.

신체적으로 허약한 노약자나 환자, 임산부와 장애자를 제외하고는 법원에 출석해야만 하며 시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벌금이나 심할 경우 판사의 소환장까지 받을 수 있다.

부득이 못 갈 경우에는 납득할 만한 어떤 사유서나 의사의 진단서를 보내야 한다.


  재미있게도, 아주 오래전에는 한인교포의 대부분은 몇 년에 한 번 오는 이 행사에

가기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무조건 영어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대부분이 비즈니스 때문에 가게를 비울 수 없었을 것이고, 또는 일부는 영어문제도 있지

않았나 추측이 된다.

"전~ 영어를 다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말로 핑계를 대면, 거의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됐었다고 한다.

근데 요즘은 이런 구실로도 승낙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무조건 법원에 나가야 하니 웬만한 핑곗거리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막상 "Jury Duty"의 통지서를 받으면 "아니? 또 갈 때가 되었어?" 하며

일단 좀 번거롭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직장으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것과 같은..

하지만 미국 시민으로서 하루 임무를 하는 것도 나에겐 가끔 법원을 방문해보는 사회경험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진작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출석하고 있다.


뭐~혹시라도 이해하기 힘든 사건에 개입되면 판사에게 "excuse"(예외)로 빠져나올 수 있으니..

이런 배짱으로 이번에도 "아! 하루라도 직장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오랜만에 법정으로~"라는

생각으로 나섰다.

결정적인 순간에 마지막 카드를 내밀듯, 운명의 12명의 배심원으로 선출이 된다 해도

내가 의견을 낼 사건에 자신이 없으면 판사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고, 이는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나의 히든카드(hidden card)!

그래서 2-3년 만의 법원 나들이도 읽을 책 한 권 들고 직장에 가는 것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다.

의외로 나처럼 미국 사람들 대부분도 하루 중 업무를 직장에서보다 차라리 법원에서

"시민의 임무"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더 좋아라 한단다.

반나절은 대개가 그냥 기다리면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걸 하고 그러다가 법정에 들어갈 수도,

아니면 그날 법정 스케줄이 더 이상 없으면 일찍 귀가하는 일도 종종 있다.


일단 아침 9시에 법원에 도착하면, 보안상 가방과 함께 시큐리티 검색대를 통과하고

배심원 대기실로 올라간다. 거기에서 일일이 개인 명단을 확인하는 직원에 따라

어떤 특정한 사건이 치러질 법정(Court Room) 번호가 개인적으로 주어진다.

호출되는 사람들은 한 그룹이 되어 같은 법정에 들어간다.

100-150명 정도의 사람들은 받아 쥔 번호가 호출될 때까지 기다리며,

그 안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개인일도 할 수 있으니, 나름 편안한 분위기다.

재수가 좋으면 법정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대기만 하고 있다가

"오늘 법정 사건 종료! 더 이상 없어요! 모두들 돌아가요~"라는 말이 떨어지면 오후 2-3시 사이에도

오늘 임무는 끝나니.. 차라리 하루 업무를 법원에서 보내는 "Jury Duty"를 선호하는 쪽이

많은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까지 운 좋게? 한 번도 법정에 들어가지 않아서 이번에도 뭐~괜찮겠지~했는데..

이 기회에 얼마 전에 사놓고도 읽지 못한 여행 에세이집을 한 권 가져가 그야말로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찰나,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을게다..


2번째 그룹 번호 호출! 나의 번호가 불려지지 않는가!   하하하 드디어 올 것이  ~ 점심식사 후

40명가량의 그룹이 한 법정으로 출두하여 거기서 또 28명만 호명, 나의 이름이 또 불려지고~

처음으로 법정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은 법정 밖 대기실에서 창문을 통해

판사가 하는 말을 경청해야만 했다  계속 대기해 있어야 했기에.


IL Supreme Court-사진 출처 chicagobusiness.com


판사는 우선 피해자와 가해자 쪽 변호사를 소개하고 선서한 뒤,

이 법정에서 판결할 사건을 간단히 설명하고 28명 중 12명의 배심원을 선별한다.

(참고: 법정에서 거론된 사건(Case)은 그 법정을 나오는 순간부터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음)

12명의 배심원은 판사가 일일이 개인별로 여러 가지 신상 질문을 끝마친 뒤, 이 사건과

연관이 없는 (직업적/ 과거 경험/ 유사한 범죄기록 등 ) 사람만을 결정한다.


여기서 한 가지 너무 인상적이었던 것은, 판사가 12명의 배심원을 선택하기 위해

28명의 개인에게 돌아가면서 대략 10개에 해당하는 똑같은 신상 질문을 반복해서

한다는 것이었어요. 참 지겨울만할 텐데..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처음부터 단호한

음성으로.. 잠시 휴식 시간이 있었지만 2시간여 동안이나 그렇게 많은 질문을 이끌어갔던

그 여판사님! 참 대단하다 싶었다.!

  

여기에서 치명적인 일은 개인이나 가족, 친척들의 범죄사실이나 연루된 일등을 정직하게

Yes, No로 판사에게 고백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이런 건 개인에겐 어렵고도 힘든 일인 것 같았다.

 옆에 있던 한 여성은 잠시 휴식시간에  이런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실토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소리도 들렸으니까.


저녁 5시가 가까워질 무렵 28명의 예리한 신상 질문이 끝났고,

드디어 그 여판사님은 12명의 배심원들을 선정했다.

"수고하셨어요 여러분! 나머지분들은 가셔도 됩니다!"

"와우~오늘의 시민의 임무 끝!"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마치 기말고사를 치른 학생들처럼 마냥 홀가분한 얼굴로,

"We're done today~우리 끝났어! "

그리고 법원 사무원이 우리들에게 나누어 준 수표 한 장 $17.20 -그날 일당인셈이다.

모두들 급히 자리를 떠났다.

반나절은 책을 읽고 지나갔지만, 오랜만의 법원 출두? 는 나에게 있어

가끔, 완전한 미국 바람?을 쐬는 것과 같은 날..

왠지 뭔가 뜻깊은 일을 한 듯-가슴 뿌듯한 날이다.


바깥을 나오니 이미 까만 어둠이 깔렸고 아침부터 내린 비는 여전히 깊어가는

가을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IL Supreme Court -사진 출처 wg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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