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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y 13. 2021

시어머니의 수상한 식욕

시어머니는 항상 배가 부르다

시어머니께 밥을 해드리기 시작하면서 식사 메뉴 선택은 며느리(나)가 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더로 나오는 특식과 반찬은 모두 며느리가 정한다는 뜻이다.


시어머니는 가사도움이 며느리를 어쩜 해고하고 싶을 거다. 지난번에는 부엌 재산(?)을 탕진해버리더니 급기야는 "내 맘대로 밥도 못 먹어어어어어~~~~~~~~요년아!!!" 하실게 뻔하다.


시어머니가 정하는 식사메뉴는 달랑 밥에 김치 아니면 라면이나 인스턴트 쌀국수 같은 거다. 음식을 아끼고 아끼느라 냉장고의 음식은 바라만 보아도 배부르다.  밥 한술에 냉장고의 음식들을 한번 떠올리면서 “ 음, 맛있네~그려”하며 식사를 한다. 시어머니에겐 초라한 밥상이 오히려 맘이 편하다.


사실, 가사 도움이는 고객(시어머니)의 오더에 따라 음식을 만들게 되어있다. 하지만 며느리가 가사도움이고, 시어머니는 식사 불량이다. 이럴 때 가사 도움이는 식단을 개선하는 것이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부엌을 한바탕 뒤집어엎은 며느리는 하마터면 착각할뻔했다. 며느리가 고집불통의 시어머니를 꺾어버렸다고!. 시어머니는 이제 항복했노라고!. 하지만 세상사 어디 모든 일이 그리 간단한가? 아침에 며느리가 집에 들어서자 시어머니의 얼굴은 "나, 기분 상당히 안 좋거든!" 하는 분위기였다. 며느리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뾰루뚱, 시끈둥이었으니까.


“ 앞치마 혀!”


그래도 희한한 게 잊지 않는 것은 앞치마다. 며느리는 이 시간부터 주인의 말에만 복종하는 가사도우미일 뿐이고 “내 앞에서 꼼짝 마!” 뭐 이런 사인인 것도 같다.


"네, 네~ 어머니이~" 하며 척~하니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시어머니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식탁 테이블에 앉는다. 식탁에 앉으면 부엌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 시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고고한 자세로 성경을 읽는다.


 어느 날 며느리가 들이닥쳐 부엌을 차지한 후 부터다. 시어머니는 성경책을 양손에 꼭 부여잡고 마음을 다 잡고 있는 듯하다. "주여~ 참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라라~” 라며 무척 힘을 쓰는 것 같다. 한때 창궐한(?) 그 성질을 좀 누르고, 달래 보느라 그러시는듯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건 부엌이다. 며느리가 뒤통수를 보일 때면 한번 쫘~악 째려보고, 부엌 쪽의 상태를 슬그머니 첵업한다. 혹, 뭘 버리는지, 뭘 냉장고에서 꺼내어 끓이고, 볶고 하는지, 혹, 키친 페이퍼를 마구 마구 쓰는지. 쌀은 밥통이 아니라 바가지에 씻는지 등이다. 그래서 며느리의 뒤통수는 좀 화끈거린다.


시어머니의 아침식사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끝난다. 시어머니 말로는 밥, (쌀국수나 식빵), 과일, 찐계란 등을 드신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배가 부르다고 한다. 근데, 도대체 뭘, 얼마나 드셨는지, 아님 진짜 드셨는지 모르겠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별 흔적이 없다.


그러면서 며느리께 주문을 한다. "배 안 고파!, 하지 마! 하지 마!"다. 그래도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뭘 드셨는지 궁금하다.


“어머니이~ 아침식사로 뭐 드셨어요?”


“응~ 쌀국수(인스턴트용) 먹었어, 긍께  반찬, 그까짓 거~하지 마!”


”아니, 그게(인스턴트식품) 식사가 돼요?”


“ 그럼! 닥터 천이 나, 무지 건강하뎌~, 아무거나 먹어도 소화 하나는 기가 막혀~음.”


 글쎄, 소화기능과 영양섭취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좋다!  일단 시어머니는 당신 말씀대로 식성이 좋으니 밥상을 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완벽한 영양 식단은 아니지만 시어머니께서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오늘의 식사"리스트를 만들었다.


11시경쯤 이른 런치를 차린다. (정오 12시면 며느리의 칼퇴근이라) 시어머니가 자전거 타기 운동을 끝나고 오는 시간이다. 시어머니의 한 끼 중 가장 따끈한 식사다.


주로 밥(볶음밥, 카레밥, 짜장밥 등이다)이지만 간혹 국수, 떡국, 파스타 같은 음식도 런치메뉴로 식탁에 오른다. 사이더로는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부침전을 한 가지 만든다. 이때 저녁에 드실 것까지의 양을 준비한다.


식사는 밥과 국(찌개) 외에 반찬은 딱 두 종류로 정했다. 밑반찬은 집에서 만들어 조금씩 가져간다. (많으면 아끼고, 남으면 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 특히, 부침전은 나도 좋아해 빠지지 않는 사이더 메뉴다. 음식은 딱 하루 드실 만큼만 한다. 한번 맛있게 먹고 , 남기지 않고, 버릴 것도, 냉장고에 둘 것도 없다.


시어머니의 식사 테이블


따끈따끈하게 지은 런치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오손도손 하게 먹는다? 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며느리가 먼저 식사를 한다. 시어머니는 한사코 “나, 배 안 고파, 안고파!”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 어머니이~ 어째, 저가 먼저..."라든가, "네~ 어머니의 런치시간이 저의 런치시간이옵니다~"라는 말은 없다. 좀 직선적인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눈치는 안중에도 없다. 충실히 런치 시간을 지킬뿐이다.^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한 시어머니가 나름 시장할 것도 같은데?... 좀 이상하다.. 뭐, 며느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런치를 후루룩, 쩝쩝하며 한 끼 굶은 것처럼 맛있게 먹는다. 금방 지은 밥이며 반찬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러니 참새가 방앗간을 절대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시어머니는 한쪽 켠에 차려진 따끈한 런치를 안 보는 척, 힐끔 들여다본다. 부침전을 살짝 맛보는 척하시더니 슬그머니 접시채로 가져간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부추전 한 접시를 거뜬히 비우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나 같은 경우엔 부침전은 두 개 정도면 끝난다. 접시만 한 크기의 부침전을 네 개나 드셨다!. 아무튼 이해가 안 된다. 시어머니의 식욕을. 아침을 많~이 드셔서 “매번 배불러, 불러!” 하신다. 근데  숨길수 없는 저 식욕은 뭐란 말인가?.. 이상하고, 수상하다.^


그저께는 고슬고슬하게 지은 하얀 쌀밥으로 볶음밥을 했다. 그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었더니 더 먹음직스러웠다. 시어머니 드실 것은 큰 접시에 수북하게 들어놓았다. 런치와 저녁 용인 2인분짜리 볶음밥이다. 그날도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신 후였다.


 "아직 배 안 고파!, 이따 먹을 거야~”


“그래요, 어머니이~ 오늘도 며느리가 먼저 먹을게요~^"


“아니, 저 말이 맞는 거야?” 어째, 내 귀에는 “배 고파 ~고파~"로 들리는 것 같은데.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며느리는 먼저 수저를 들었다. 계란 후라이를 두 개나 얹은 볶음밥을 보란 듯이 아구아구 하며 먹었다.


나원~참, 시어머니가 “ 배  안 고파!”라는 말을 꺼낸 지 오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시어머니는 부엌으로 살짝 다가갔다. 볶음밥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그새 달랑 들고 자리(시어머니가 앉아서 쓰는 밥상 겸 책상)로 간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저녁용 볶음밥까지 다 해치워버렸다.! 며느리는 그저 놀랍고 희한했다. 평소에 저렇게 밥을 많이 드셨나? 싶을 정도다.


아~ 수상하다..... 대체 시어머니의 식욕은 어디서 펑펑 쏟아져 나오는 걸까?^^매번 부른다면서? 아침을 건너뛴 건가?.. 아님, 며느리의 따끈, 따끈한 런치가 배부른 시어머니의 넘치는 식욕을 눈치 코치없이 발동시켰나?


이날 이후로  시어머니는 하얀 쌀을 미리 씻어 물에 불려 놓기 시작했다. “긍께 , 난 냉동실에 언 잡곡밥 녹여서 먹을 테니,  너 해 먹으라고 ~” 하면서.


신기한 건, 그 쌀의 분량은 항상 3인용 분량이다. 며느리는 먹어봤자 냄비에 일부러 눌인 누룽지 정도다. 냄비에 남아있던 하얀 쌀밥은 그다음 날이면 흔적도 없어진다. 다시 씻어놓은 하~얀 쌀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아~하, 암만해도 수상하다. 항시 배부르다는 시어머니의 애사롭지않은 식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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