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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y 25. 2021

시어머니와 조기 두 마리!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한방 날리다

시어머니는 공식적(?)으로 한 달에 한번 장을 본다.


공식적인 장보기는 순전히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사는 일이다. 비록 며느리의 밥을 먹는다지만 그래 보았자 일주일에 삼일이다. 나머지 4일은 그야말로 시어머니 맘대로, 맘껏 드신다.


추측건대 당신이 즐기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라면이나 국수 종류다. 그러니 좋아하는 식품을 사 재는 재미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래서  이 날을 무척 기다린다. 더더구나 미 정부에서 거저 주는 식품비가 카드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에게 공식적인 장보기가 생긴 것은 정부(미)에서 식품비를 받기 시작하면 서다. *SNAP 카드에 매달 190불이 입금된다. SNAP은 저소득층이나 시어머니처럼 은퇴연금이 적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식품 보조금이다. 이 금액은 임금이나 연금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SNAP(The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식품보조 프로그램;이전의 푸드스탬프)


아무튼 시어머니는 공돈이 고맙기만 하다. 매달 돈이 입금되는 날이면 미국의 한 신사에게 감사하는 걸 잊지 않는다.


“아이고~ thank you!, thank you sir! "을 메조 소프라노톤으로 외친다. 그리고선 돈 쓸 준비를 한다. 장보기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받는 돈은 시어머니의 장을 보고도 남는다. 그런 이유로  자선을 베푸는 일을 좀 하신다. ( 카드에 들어오는 돈은 모두 사용해야 함)


시어머니는 장을 보면서 아들에 장바구니를 채워준다? 가 아니다. 여동생의 장을 봐주고 있다. (참고로, 여동생은 부자고, 냉장고가 차고 넘친다^)


여동생이 남편이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는 것이 불쌍하고 안됐다고.. 그게 그렇게 마음이 쓰인다고 먹을 것 하나라도 주고 싶어 몸 처리치 신다.^


뭐, 그건 그렇고, 코로나 이후로는 평일에 쉬는 아들이 장을 보고 배달을 했다. 이제 며느리가 가사도움이니 시어머니의 공식적인 장보는 일에 합류를 했다.

아들은 그저 시어머니가 건네준 장보기 리스트만  착실히 채우는 일만 했다. 이번에는 며느리가 끼어들어 리스트에도 없는 품목을 덜렁 샀다.


“에라~ 정부 돈이니~” 하며 조기 한팩을 사버린 것이다. 주인님(시어머니)의 허락도 없이.


시어머니가 전해준 장보기 리스트에는 항상 같은 식품명들만 적혀있다. 예상대로다. 전혀 손이 가지 않을 맛김, 계란, 너구리 한 박스, 만두, 두부, 과일 정도다.


세상에~ 고기나 생선 한토막도 적혀있지 않다. 음, 갈비는 지난번에 해드렸으니 이번엔 생선이다! 며느리는 척~하니 조기한 팩을 장바구니에 후~훅 던져 넣었다.


조기는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생선이다. 생선중의 으뜸이요 맛도 좋고, 게다가 비싸다. 시어머니는 드시고 싶어도 손수 사 드실 엄두도 내지 않는다. 돈이 아까워서다. 정부에서 거저 받는 식품비로도 당신이 드시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오동통한 조기 두 마리다. 냄비에 지은 하얀 쌀밥과 구운 조기의 쫀득한 맛이 벌써 군침을 돌게 할 정도다.


“어머니이~담주는 조기 구이 해 드릴게요~”

며느리는 정부 돈으로 , 정확히는 시어머니의 돈으로 산 조기를 생색내며 말했다.


아녀~ ~~ , 나 안 먹어!, 아들 구워줘! 가져가! 가져가! ”


응? 웬 아들이람? 며느리 생각에는 조기 두 마리를 맛있게 구워서 시어머니와 나란히 한 마리씩 먹을 참인데..


“어머니이~ 아들은 어제 조기 구워 줬어요!”

(사실은 구워줄 예정임)


“ 그럼 담에 구워줘~, 아들이 겁나게~ 조기 좋아 혀!”


며느리는 이 말을 들은 척 만척했다. 기어코 아들이 아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구운 조기를 다정하게 먹으리라 다짐했다. 며느리는 그날 조기 두 마리를 냉동실 깊숙이 꼭꼭~ 밀어 넣고, 숨겨 놓았다.


“어머니이~ 담주엔 맛난 조기구이예요~~”

라고 약속이나 하듯 한마디 던졌다. 하지만 대꾸 한마디도 없는 시어머니다. 며느리는 담주에 먹을 맛난 조기를 가슴에 품고  칼퇴근을 했다.^



주말이 후딱 지나갔다. 시어머니의 가사도움이 일이 시작되는 수요일이다. 며느리는 훌루 랄라 하며 시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오늘 런치 밥상에는 조기가 오른다.  시어머니도 드시고, 그 덕에 며느리도 한 마리 먹을 생각을 하니 여느 때보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며느리는 휘파람을 불듯 산뜻하게 시어머니게 아침인사를 했다.


"굿모닝 , 어머니이~~~"


"응"  

짧게 한마디다. 며느리를 본 듯, 안 본 듯, 또다시 시큰둥, 뽀루둥이다. 영락없이 "나, 오늘도 기분 안 좋거든!"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며느리는 그러시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워낙, 시어머니의 삐지심은 천둥 번개처럼 갑자기 생겼다가 고요히 가라앉기 때문이고 늘 이러한 루틴을 되풀이한다. 그러다가  "나, 이제 안 삐짐~” 하며 어느새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잠깐 사이에 어쩜 "주님~ 이놈의 성질 좀 죽여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는 업. 다운이 심하고, 그야말로 변덕이 아침, 저녁으로 변화무쌍함을 기본으로 알고 대처(?) 해야 한다. 그냥 "Let it go(맘대로 하시옵소서)"가 최고의 처방책이다!.


그나저나 며느리는 조기 두 마리에 마음이 가 있었다. 런치를 준비하기 위해 짜~잔 하며 냉동실을 열었다.


그런데  조기 두 마리가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꼬~옥 숨겨두었는데.. 이상하다? 여기저기 뒤적거려 보았지만 흔적도 없이 달아났다?


"어머니이~~ 조기가 없어졌어요???"


 "으음! 조기는 내가  다~~~ 구워 먹었다!!!"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대답을 하셨다. 그것도 웅변조로 아주 강경하고도 우렁찬 목소리였다.


마치 그 소리는 “내, 오늘 발칙한 며느리를 한방 날렸어!” 하듯이 들렸다.^^ 한쪽 눈썹산이 심하게 일그러 질정도로 무시무시한 인상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두 마리를 몽땅 구워 드셨다고? 순간, 며느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띵~"하며 어지러웠다.^  

하지만, 며느리는 조기 두 마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시어머니가 열렬히 동정하고, 아끼는 여동생에게 갖다 바친 것이다(사실, 동생도 냉장고가 미어터지는 상태인데..).  그 진실을 모를 턱이 없는 며느리는 약이 확~올랐다!.


”아이고~ 어머니이 너무 잘하셨어요” 했으면 좋겠지만 아니다. 대놓고 아는 척을 했다.


“ 어머니이~ 조기에 발이 달렸나 봐요?  걸어서 이모님 집으로 간 것 같아요!"


"으~~ 음"


시어머니는 대꾸 한마디 없었다. 얼굴은 승리의 기쁨으로 빛났다. 끝까지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나름 태연한 척하셨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 얼떨떨한 며느리는 속으로 무지~ 서운했다. 한편으로는 조기를 빼돌린 시어머니의 거짓말이 귀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며느리는 밥 할 기분이 썩 나지 않았다.


조기구이 대신 간단한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그것도 핫~ 스파이시한 김치볶음밥이다!. 아마 시어머니에게는 매웠을지도 모른다.^^ 며느리는 다른 때보다 김치볶음밥을 두배나 먹어치웠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 받침을 삭이느라...^^


 나름 똑똑하다고 뻐기는 며느리는 좀 착각을 한 것 같다. 시어머니는 맛난 조기구이를 아들에게 먼저 먹이고 싶었다는 것을. 시어머니는 어디까지나 아들 우선주의 자라는 것을 잠시 잊은 것 같다. 이래저래 시어머니는 부엌을 점령당한 것에 대한 삐지심을 조기로 대신한 것인가 보다.^


아무튼, 시어머니는 이번 기회에 며느리를 통쾌하게 한방 날렸다!


아~ 시어머니와 마주 앉아 맛있게 먹을 꿈을 상상한 그 조기는 내 돈으로 사서 구워 먹어야겠다..


원래, 시어머니란 좀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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