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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Feb 05. 2024

마음속 나이가 중요해

오십이 넘고 보니 내 현실적 나이는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실제로 몇 살이지?라고 정확한 숫자를 알아야 할 일도 별로 없다.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이럴 땐 미국땅에 사는 것이 좋긴 하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좀처럼 나이를 물어보는 일이 없다. 한국사람을 만날 때면 좀 분위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오십이 되고 난 후 나이는 쏜쌀같이 몰아치고, 더해지고 있지만, 나는 '몇 살이요~라고 말하기보다 '나이 좀 먹었어요~'라는 말로 살포시 넘어가고 있다. 눈치 없는 어떤 인간은 굳이 몇 살인데요?라고 캐묻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앞에서 말한 데로 '으음.. 나이 좀 먹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나면 좋겠지만 이런 류의 인간은 기어코 나이를 알아야 된다는 식이다. '아이~ 몇 살인데요~~'라고 돼묻는다. 집요하다.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그냥 '까짓것' 하며 재빠르게 대답해 주는 것이 상책이다.  '몇 살이요~'라고 말하며 소원?을 풀어주어야 한다.


사실, 나이에 대해선 친정 엄마도, 언니들도 물어보지 않는다. 게다가 서로들 나이가 정확히 몇살인지도 모른다. 나이는 세월과도 같아서 언젠가 확인을 한 적이 있었다. "어머머~ 너가 그새 그렇게나 먹었어?" 하면서 모두들 놀래자빠질 듯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다. 우리끼리는 더 이상 나이 같은 건  물어보지도, 셈하지도 않는다. 엄마는 왕초요, 우리 세 자매는 큰 얘, 작은 얘, 막내, 이런 식으로 이미 등급이 나 있는 것으로 대충 가늠할 뿐이다. 그래서 엄마와 우리 세 자매는 암묵적으로 그냥 조용히(?) 잘 지내기로 했다.^




옛말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는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이 말은 나이를 먹은 사람이 그럭저럭 나이를 피해 가고 싶을 때 꺼내는 말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 말을 써먹어야 할 때가 지금이라 좋기만 하다.


그런 말에 힘입어 오십대지만 내 마음속 나이는 '열일곱 살'로 낙찰 본지 오래다. 사실, 나이만 먹었지, 어떤 때는 내가 하는 행동을 보면,  열일곱 살의 철없는 계집아이의 모습 딱 그대로일 때가 많다.^


사람의 본성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뭐, 겉모습은 오십 대요, 속 마음은 내 감성이 굳어진 열일곱 살 그때다라고 붙여두고 싶다. 내가 마음속 나이를 열일곱 살을 택한 건, 그때의 내 모습이 여러므로 마음에 들어서다.


사차원처럼 철딱서니 없어서 마음에 들고, 당돌하고, 기가 팍 살아서 난리를 쳐대고, 교회 남고생들에게도 제법 인기가 있었고, (중요한 건,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던 녀석들만 나를 좋아했다는 것) 비가 오면 알록달록한 예쁜 우산을 들고 거리를 쏘다니기도 하면서 (이 짓은 지금도 하고있다. 걷는 대신, 드라이브) 센티멘탈의 극치를 달렸다.


매일 일기를 쓰고, 성탄절이면 교회에서  시 낭송은 내 차지였다.  항상 핸섬하고, 분위기 있었던 연하의 남고생이랑 듀엣으로 했다는 것, 그런 일로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 것,  사랑이랍시고 무슨 놈의 짝사랑만 줄~곧 몇 년을 했다. 그런 내가 기특(?)했다. 이런저런 재미로 가득 찼던 내 열일곱 살이었다. 그때는 내 십 대의 전성기였다. 열일곱 살이라서보다 그때의 '나'라는 사람이 그저 예쁘고, 좋았다.


얼마 전에 피플지에서 어느 배우 사진이 실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딱 한눈에 보아서 날씬한 그는 50대 중.후반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기사를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가 71살의 나이라는 것을!


그는 상당히 젊어 보였다. 두꺼운 검은 테로 된 안경을 썼고, 블루진에 체크무늬의 티셔츠를 멋스럽게 입고 있었다. 타고난 스타일 때문인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였다. 알고 보니 그에겐  젊게 사는 비결이 있었다.


"71살로 사는 최선의 방법은 매일 활기차게 사는 일이죠, 사실, 내 머릿속에는 71살의 남자는 없어요, 그래서 난 71살이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그저, 내 머릿속의 나는 여덟 살의 보이일 뿐이죠”


나는 이 대목에 눈이 반짝 빛났다. '아! 그렇지! 이거야~이거라고! 어쩜 나랑 생각이 같네!' 하며 동지를 만난 듯 기뻤다. 이 말은 우리식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는 말과 통하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제까지는 이 말은 별 감흥도 없고, 나와는 상관도 없는 말이었다. 이제는 어째 이 말이 명언처럼 들린다. ^


음.. 굳이 오십 대를 들추어보자면, 50대는 밸런스가 있는 나이다. 적당히 인생을 알고, 끼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겠는가? 더 좋은 건 나 자신을 다독거리고, 돌볼 수 있는 나이다.


그러니 오십 대는 좋은 때다. 나이는 저절로 들어간다. 여덟 살의 소년~이라고 말한 71살의 배우처럼 마음속 나이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마음속 나이가 시간을 되돌려주지는 않지만, 그때도 그렇듯이~하며 사기충천이 팍~팍 될 것 같다.


어느날 "나이"가지고 괜히 시무룩하고 기운빠지고, 주눅들때,  마음속 나이, 하나쯤은 정해두는것도 뭐, 괜챦다.  아무튼, 내 마음속의나이는 열일곱 살 소녀일 뿐이다. 누가 뭐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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