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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r 04. 2024

꽃과 진수성찬

나는 꽃을 좋아하지만 먹는 것도 무지 좋아한다


꽃도 꽃이지만 음식을 그냥 좋아한다가 아니라, 정확하게 '밝힌다'가 맞겠다. 밝히는 것이란 먹는 것을 즐겨 찾는 일이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다.  누구는 '이것도, 저것도 싫다' 하지만 나는 딱히 그러질 않는다. 누군가와 식사 약속을 하면 대개 상대방의 음식 취향에 맞추는 편이다. 먹어보지 않는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나의 수수한 식성(?)은 나의 성격보다 훨씬 좋다.^ 그래서 나와 밥을 몇 번 먹어본 사람들은 나를, '식성이 무지 좋아', 또는 좀 더 친한 사이인 경우에는 '먹보'라고도 한다.


꽃과 먹보라..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은 왠지 분위기가 안 맞아 보인다. 하지만 꽃과 음식은 마치 사치를 부리듯 내가 나를 위해 베푸는 것들이다. 내가 누리는 재미있는 일들이다.


꽃은 가리는 편이다. 장미처럼 화려한 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주로, 들꽃 같은 작은 꽃들이 좋다. 들꽃은 질리지가 않고, 아스라한 느낌이 있어 좋아한다. 더 좋은 것은 다른 꽃들에 비해 쉽게 시들지도 않는다. 한번 사면 일주일에서 이주일까지 간다. 한동안 그 예쁨을 맘껏 즐길 수 있다.


꽃은 주로 무슨 기념일, 밸런타인데이같이 특별한 날에만 받는 선물용이 대부분이다. 꽃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남자(남편)도 최근 몇 년 까지 이런 행사 때마다 꽃 주는 일에 열심인 듯했다.(그의 특기는 챙기는 일을 잘한다) 그런데... 작년부턴가 횟수가 뜸해졌다. 자기에게도 갱년기가 온 것 같다며 구시렁거리더니. ^


뭐 그렇다고 해서  '아니? 어떻게 된 거야?!'라고 추궁을 한 적도, 서운한 척도 하지 않았다. 갱년기라는데 어떻게 하겠어? 또는 '누가 사 주는 꽃에 안달 났나?' 하며 넘어간다.^ 따지고 보면, 그간은 꽃 사 대느라 수고도 했다.


가장 좋은 건, 내가 나를 위해 꽃을 사는 일이다. 그의 기분에 상관없이 난, 내 기분에 내가 상관하기로 했다.


‘I'm in bad mood.. 꽃 좀 사 줄래?라고 말하기도 웃긴다. 그냥 내가 사면된다. 나의 기분을 좀 풀어주어야 할 때, 나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꽃을 산다.


내 경우에, 꽃은 받는 것보다 주는 느낌이 더 좋다. 그래서 꽃 선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나에게 주는 꽃은 더 쓰릴이 있다. 괜히 소중한 느낌이랄까.. 특별한 마음이 든다.


그 남자도 내가 사놓은 꽃이 식탁에 놓여있으면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다. 혹, 부엌에 행주가 두서너 개면 '행주가 왜 이렇게 많지?라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꽃은 몇 다발이든, 무슨 꽃이든 상관없이 묵묵히 환영한다.


이런 꽃 들은 먹보인 내가 진수성찬을 하는데 한몫을 한다. 나에게 진수성찬이란 것이 대단히 많은 종류의 훌륭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잘 차리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잘 챙겨서 먹는 일이다. 이런 식탁은 나에게 하루의 위안 같은 것이다


난 '먹보'기도 하지만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지 않는다. 말하자면, 간단한 음식이라도 반드시 예쁜 접시에 담아 먹는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손님과 같은 접대를 받는 것처럼 잘 차린다.


그래서 식사 때면 찬장 안에 있는 온갖 접시가 등장한다. 가령, 삶은 계란도 거기에 맞는 앙증스럽고, 예쁜 사기그릇에 담는다. 당연히 설거지도 많아진다. 이런 것에는 개의치 않는다. 문제는 남편이다. 이런 나와는 '상관없다 주의'다.


남편은 음식에 까다로운데, 먹는 스타일은 '아무렇게나~ 식'이다. 어쩌다, 혼자 먹게 될 때다. 귀차니즘이 발동해서도 그렇다.  기가 막힌다. 양푼이, 냄비, 런치밥통, 어떤 땐 밥통째, 각종 플라스틱통, 심할 땐 종이 접시, 플라스틱 포크와 수저등이 모두 나와있다.


나는 그걸 질색한다. '음식은 이렇게 먹는 것 아냐!, 이건, 자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며 호통을 친다.^

당장, 테이블의 그릇들을 정리하고, 여기저기 담겨있는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준다. 나는 '한 끼를 먹더라도 잘 차려서 먹어야 된다'는 주의쟎아!라는 말이 연거푸 나오고 만다.


이러다 보니 두 사람이 한 끼 식사를 할 때는 설거지거리가 만만치가 않다.(설거지는 남편이 많이 도와주는 편, 속으로 이런 식탁이 귀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사양'은 없다. 그도 예쁜 식탁이 좋은 거다)


다행히, 나는 주중의 4일과 주말 하루는 혼밥을 한다. 남편이 오후부터 일을 하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평소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고루고루 투고해서 살짝~먹는다.^  (참고로, 투고한 음식도 접시에 들어서 잘 차려먹는다)


남편과 식성이 다른데,  그가 무지 싫어하고, 내가 무지 좋아하는 파스타는 물론이요, 순대, 돼지국밥, 염소탕, 족발 같은 희한한 음식들이다.  이런 음식들을 먹을 땐 그가 집안에 없는 골든 타임이 적격이다.


 며칠이라도 혼밥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설거지도 크게 부담이 없다. 꽃 앞에서 빙긋, 히죽 웃으며 진수성찬처럼 잘 차려먹으면 살 맛이 난다. 한 주일 쌓인 스트레스도 잘 먹었다는 트림과 함께 쫘~악 사라진다.^


'먹기 위해 사는 거야!‘라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이다. 먹는 것은 세상 중요한 일이다.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려면 맛난 음식을 잘 차려서 먹는 일도 멋있게 해야 한다.


혼밥도 좋지만 꽃과 더불어 진수성찬 하는 것, 나를 위해 이만큼 달콤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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