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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r 18. 2024

할머니가 되어도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나는 청바지를 참 좋아한다.


청바지는 편안한 작업복이라는 개념을 넘어 이제는 패션이다. 머스터 해브 아이템이다. 유행에 따라 디자인도 조금씩 변한다. 하지만 청바지 패션은 돌고 돈다.


크게 유행에 상관없는 와이드 레그진은 기본이다. 통바지, 나팔바지라고도 한다. 스키니진, 스트레이트, 플레어드(바지 끝 부분이 약간 넓은 것), 무릎길이의 진등등이다.


나는 십 대부터 줄곧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주로, 클래식한 통바지를  입는다. 마른 체형이라 잘 어울리고, 또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청바지는 나의 작업복이며, 외출복이다. 여름에는 집에서도 청반바지를 입을 때도 있다. 색깔별로, 디자인별로, 계절별로 다양한 청바지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나에겐 '청바지 욕심'이란 게 있다.


음.. 그러니까 샤핑만 나갔다 하면 눈에 꽂히는 것이 청바지다. 청바지가 수두룩한데도 청바지가 걸려있는 코너로 뭐에 홀린 듯 곧장 간다.  


사람마다 자기가 꽂힌 물건이 있다. 이런 게 하나 있으면 누구도 못 말린다. 언젠가 작가, 에릭 와이너가 쓴 책에서  그는 '가방 수집가(가죽 서류가방)'라고 했다. 가방에 꽂힌 사람이다.


광적으로 가방을 좋아한다. 보는 대로 괜찮다 싶으면 온갖 종류의 가방을 산다. 그렇게 해서 산 가방이 자그마치 사십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아마.. 지금쯤이면 훨씬 많아졌겠다.


또 직장의 한 동료는 수십 켤레의 스니커를 가지고 있다. 매일, 매일 다른 종류의 스니커를 신고, 뽐내며  나타난다. 실제로 누군가 그녀의  집에 놀러 갔다가 차고에 진열된 수많은 스니커를 보고 놀랬다고 할 정도다. 그녀는 스니커에 꼿힌사람이다.^


나는 청바지에 꽂힌 인간이고. 청바지가 많지만 '수집'은 하지 않는다. 아마, 그동안 계속 사 대기만 했으면 에릭 와이너나 직장 동료의 것을 능가했을 수도 있다^.

사는 만큼 조금씩 정리한다. 대충 이. 삼 년 입지 않은 것들은 정기적으로 도네이션을 한다. 왜? 또 꽂히는 물건(?)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런데, 가끔은 나의 청바지 사랑에 걸림돌이 생긴다. 그 남자(남편)는 내 청바지 사랑을 은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내가 청바지를 살 때마다 " 청바지, 또 샀어?!" 한다. 딱 잔소리다.


온라인 오더로 사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린다. 드물지만, 그의 기분이 좀 다운되었을 때는 괜히 한마디 더 할 때가 있다. "아니, 청바지가 도대체 몇 벌이나 돼?".


이럴 때면  나는 퍼뜩,  에릭와그너의 가방이나  스니커에 꽂힌 직장동료 이야기를 꺼낸다. 나만 특이한 인간이라고 내몰릴 수는 없으니까. 일단, 변명도 필요하다. 귀찮은 일이지만.


무언가에 꽂힌 일은 계속하고 싶은 법이다. 아예, 청바지 구입을 오프라인으로 한다. 살~짝, 잔소리를 피해서 은밀하고, 즐겁게 사들인다.


나는 나대로 이런 재미가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아마, 가방 사랑이 지극한 에릭 와그너도 아내의 눈을 피해 은밀히 사서, 구닥다리 속에 파묻혀 뒀다 은근슬쩍 끄집어 매고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필경 그럴 것이다.


사실, 청바지가 그렇다. 뭐가 새 옷이고, 헌 옷인지 구별이 힘들다. 그 재질이 그 재질 같다.^  딱히 ‘이거 새 옷이다' 하고 윤기도 나지 않는다. 가령, 쟈켓이나 코트를 사면, 입는 순간 바로, '어? 못 보던 옷인데?' 하며 금방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 청바지는 특수한 재질 때문에 새 옷을 헌 옷처럼 깜쪽같이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뉴 청바지는 어제의 그 청바지 같고, 작년의 그것 같기도 하다.^


청바지에 자주 꽂히는 대신,  중. 저가의 청바지를 사는 편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잘 빠진 청바지를 건질 때가 많다. 일단, 나의 핏이다 싶으면 어떤 브랜드 못지않게 멋지게 입을 수 있는 것이 청바지다.


한때는 내가 잔뜩 사 둔 청바지를 마음껏 입고 다니지를 못했다. 은행에 다닐 때다. 무조건 단아한 정장차림이 주요 복장코드였다. 일주일 내내 기지(정장용 천)  스커트 아니면 바지를 입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애정하는 청바지를 입는 날이라는 곤 고작, 토요일이었다. 하루로는 아쉬웠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를 갈 때도 청바지를 입었다.


그때부터 청바지를 정장흉내를 내며 입기 시작했다. 가령, 위에는 캐주얼 블라우스에 카디건이나 쟈켓을 걸친다. 조금도 껄렁해 보이지 않았다. 점잖은 캐주얼이 되었다.  청바지 하나로 주일 예배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내가 은행을 그만두고 난 후, 한 일은 그간 질리도록 입은 기지 바지와 치마들을 처분하는 일이었다. 장례식용의 검은 정장바지와 치마 두 벌만 남겼다. 나머지는 모두 도네이션 박스로 갔다.  


그날 이후로 기지 옷들(정장 치마와 바지)은 내 옷장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다행히도, 지금은 직장 의상코드란 '아~청바지는 기본적으로 허용합니다~'다.


일주일 내내 다양한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옷장에 쌓인 청바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 지금 누리지 않으면 언제랴? 하며 청바지 애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저~ 아직까지 청바지 핏 괜찮죠?‘ 하며.^


나의 청바지 사랑은 할머니가 되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왜 있쟎나.. 청바지를 예쁘게 입는, 여전히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할머니..


펑크 한 스타일의 아이콘,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자기 멋이 뚜렷한 할머니쯤 되지 않을까? 하고 한번 ~ 튕겨본다.



*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an westwood); 영국 패션디자이너/사회 운동가 (2022년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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