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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r 25. 2024

내가 생일을 보내는 법이란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언젠가부터는 생일이 오는 것도 그렇게 반갑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생일이 다가온다는 건, 또 한 살을 먹는다는 뜻이니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일'하면 한 끼 잘 먹는 ‘밥'이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해주는 생일밥상이 최고였다. 미역국과 내가 좋아하는 하얀 쌀밥을 먹는 일이 즐거웠다. 생일밥에는 콩밥이라는데, 나는 쌀밥을 좋아해서 내 식대로 해주셨다. 그 이상의 특별한 선물이 없어도 좋았다. 조그만 그 밥상하나로 마냥 히죽거리며 행복했다.


그렇게 엄마가 해주는 생일 밥을 오랫동안 먹었다. 결혼 후에는 웬걸, 내 생일 밥상을 엄마처럼 차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소박하게 미역국에 하얀 쌀밥 정도인데도.^


나랑 사는 남자(남편)는 그럭저럭 생일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생일 때는 그가 미역국을 끓여주냐? 그건 아니다. 밥상 대신, 레스토랑의 밥 한 끼가 생일 음식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화~악 든다. 뭐, 여자는 그 남자의 엄마의 바톤을 넘겨받아 그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기 위해 결혼한 건가?


그렇다면, 남자도 여자의 미역국을 끓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의 생일 미역국을 준비하기 위해 레시피라도 보고 끓여내야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아니면, 이걸 얻어먹자고 미역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하나?


생각하니… 따지는 일도 머리 아프다.  가르치는 것은 더 번거로운 일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둘 다 미역국을 좋아하다 보니 수시로 먹는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미역국을 생일밥상에서 아예 생략했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밥상대신 레스토랑에서 밥 먹기를 주고니, 받거니 하고 있다.  


시어머니는 어떤가? 음식을 도통 못하신다. 못할 뿐 아니라 어쩌다 하신 음식도 당신 외에는 못 먹을 맛이다.^ 아예 기대를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생일밥 대신 항상 돈봉투다. 뭐, 안되시니 이것도 좋다.^ 가까이 있는 조카도 생일밥을 사고, 꽃으로 한몫을 한다.


생일은 밥 외에 케이크나 선물이나 꽃도 따라온다. 나같은 경우엔, 밥, 선물, 돈 봉투 중에 하나만 받는다.


나는 일찌감치 선언했다.

‘여러분들! (가족, 직장동료) 뭘 할지, 살지 고민하지 말아요!  케익은 싫어하니 사양합니다, 요란한 생일 디스플레이도 하지 말아요!‘


'혹, 뭘 줄려면 10불짜리도 좋아요, 단 선물권 카드로 받겠습니다~, 스타벅스, 타겟, 월마트 좋아해요~~' 다.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고서 속으로 ‘이게 뭐야아~~’하느니 차라리 '이렇게요~'하고 선포를 하는 게 낮다.


아무튼..  생일~하면, 엄마가 차려준 생일밥상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돈봉투도 좋고, 레스토랑 밥도, 10불짜리 카드도 좋고, 꽃도 좋다.


그런데.. 점점 시시해지는 생일날이다.


왜 있잖아.. 어릴 땐 생일 밥상이란 '세상에 태어남을 축복하며 앞으로 잘 살아!'라는 격려가 아니었던가.. 이제 생일이란, 나이 먹는 것이고, 그간 열심히 살아온 나에 대한 위로의 시간이 필요한 때 같다.


뭐.. 특이한 거 없을까? 하고 한동안 생각을 좀 했다. 내가 이러면,  '어머? 뭐 더 이상 바랄 게 있나요?' 할지 모른다.


음.. 당연히 있다. 뭐가 점점 허해지고, 쓸쓸해지니..  그러다.. 팍, 기분을 업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내 생일 내식으로 잘 챙겨 먹기다!


언젠가 하루키 작가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생일날의 하루에 대해서다. 생일날, 혼자서 외출하여 점심 때 외식을 하고, 레코드 가게를 들러서  좋아하는 레코드 판 하나를 산다.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것 을 하며 보낸 생일날이였다. 조용한 생일날이 쓸쓸할 수도 있었겠지만 형편과 상황에 맞게 잘 보낸 생일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는 글이었다.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그때부터 나도 내 식으로 내 생일 근사하게 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생일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쯤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 한다. 서둘러 음악회티켓을 산다. 재즈나 클래식이다. 내가 티켓을 사고 누군가를 초대한다. 이 '누군가'는 그남자(남편)가 아니요, 친구다. 이 행사는 별도의 것이라 그는 빠진다.^


그리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산다. 나를 위한 선물들이다. 책이나 옷, 주얼리(보석이 아닌 액세서리 주얼리)를 사는 일이다. 올해는 책 한권과 화사한 연 노란색의 블레이저 하나를 장만했다.


이어, 꼭 한 끼의 맛있는 식사를 혼자서 한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런치를 주로 먹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들 틈에 끼여 나도 혼밥을 한다. 나에게 혼밥을 하는 건, 청승맞은 짓이 아니라 잠시 쉬는 타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요한 건, 생일날은 일을 하지 않는다. 무조건. 하루 오프다. 미리 부서의 매니저에게 통보한다. '지나가 일하지 않는 날'은 나의 정기적인 루틴이 되었다.


이제는 동료들도 모두 알고 있다. 재미있는 건, 부서의 여직원들이 너도나도 자기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오프 하는 일이 유행처럼 생겨났다. 뭐, 좋은 현상이다.


그 남자도(남편) 이때다! 하고 오프다. 내 생일에 자기가 논다.^(참고로, 나는 그의 생일날에  일한다)^ 음.. 생일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집안일도 잠시 중단한다.


밥과 설거지는 그가 한다. 나도 그의 생일날에는 이 정도는 내가 하니까. 서로 돌아가면서 공식처럼 정해져 있다. 각자의 생일에는 예의 바르게 챙겨주기 뭐 그런 정도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용한 생일이 좋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생일을 떠벌리며 왁자지껄하게 보내는 것은 별로다. 그저, 몇 사람이 모여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와인을 홀짝거리며 조근조근 인생이야기나 살아가는 스토리를 나누는 것이 좋다.


영혼이 묻은 카드를 읽고,  한번 보고, 예의상 또 한 번 골똘히 들여다본다. 나는 이런 생일 카드들을 금방 치우지 않는다. 다음 생일이 다가오기까지 눈에 보이는 데스크에 쫘~악 진열해 놓는다. 그리고 몇번을 들여다 본다.


언젠가부터 첨부된  '내 생일 멋 내기'는 나를 위안하는 법이다. 뭔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특별한 것 하나정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시작한 일이다. 이 일도 몇 해 동안 해보니 재미있다. 잘한 일이다.


 나이가 드는 만큼 소중하게 나를 가꾸어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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