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후에 굶주리던 세대를 순식간에 뛰어넘어서 쌀 소비는 줄어들고 그 자리에 밀가루로 만든 후식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내가 제일 애잔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털실로 짠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가 손주에게 주려고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이다.
끈적이는 사탕에 털실이 잔뜩 달라붙어서 먹을 수 없었던 눈알 사탕이 간식 역사를 말해주던 때는 이제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한국 경제가 개화와 만개를 거치는 동안 한국을 떠나 있던 나에게는 한국의 디저트 전성시대가 실감이 안 난다.
한집 건너 카페에 베이커리라는데.
밥, 떡을 건너뛰어 빵, 빵, 빵의 종류도 너무 많다. 포르투갈이나 프랑스를 가야 진한 맛을 볼 수 있는 에그타르트와 마카롱, 까눌레 같은 디저트도 한국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된 것 같다. 한국이 커피 왕국이 된 것도 얼마 안 됐지만 그 바람은 가히 강풍 수준이다.
시장이나 동네 골목에도 커피 파는 가게는 다 예쁘게 해 놨더라. 사실 커피는 마실 때 보다 브루잉을 할 때 나는 냄새가 이미 천국으로 인도하며, 첫 모금을 마실 때 입안에 퍼지는 맛이 황홀함으로 온몸을 떨게 만든다.
영국에서는 홍차에 우유를 듬뿍 넣은 밀크티를 즐기지만 믹스 커피로 단련된 한국인들은 그저 커피만 찾는다. 나도 밤에나 카모마일 티를 마시지 커피가 우선이다.
뜨거운 커피에 중독이 되다시피 했지만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참맛을 알아버렸다. 차거나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내가 한국 사람들의 '아 아'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스벅의 '아 아'를 영접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저 천상의 음료 그 자체였다.
물론 그 후의 배 아픔과 가스는 촌스러운 내 몸의 몫이었다만.
커피와 달달이들을 끊을 수 없으니 다가오는 피검사 날짜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당뇨 때문에 평생을 식이요법(꽁보리밥, 오이, 탈지우유, 반찬은 싱겁게)하셨던 모친이 요즘의 먹방을 보시면 뭐라 하실지 알고 있다.
'웬 입정이 저리 사납니'라고.
절제 없이 먹기 좋아하는 모습의 표현이다.
쌀을 씻을 때나 밥을 먹을 때에도 한 알도 허투루 못 하게 교육받은 부모님 세대가 볼 때는 아주 집안 말아먹는 행태로 보일 것이다. 음식을 산처럼 쌓아놓고 꾸역꾸역 먹거나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망조 들었다고 혀를 차실 것이다. 보통 가정에서도 외식이 그리 흔치 않았던 때에 사셨으니.
'입정'과는 살짝 다른 의미로 '입놀음'이란 표현을 잘 쓰시던 모친은 혼자 사시던 아파트에 놀러 가면 장을 보아 온 생필품만 내려놓고 빨리 가려는 나를 좀 있게 하시려고 '입놀음'을 하고 가라 하시곤 했다.
나로서는 입놀음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주식부터 간식까지 다 당뇨식단이라서 과일이나 먹으려면 깎는 것이 귀찮아서 바쁜 듯이 뿌리치고 나오기가 일쑤였다. 딸과 좀 더 있고 싶어 하는 마음도 못 헤아린 내가 지금 먼 도시로 손자 셋을 데리고 이사 가버린 큰 애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지금 그 죗값(?)을 받고 있다.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입정 사나움'대신에 남의 말을 친절하게 들어주며 다정한 시간을 갖는 '입놀음'을 간단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디저트와 커피를 사이에 두고 너무 많은 말을 하다가 의를 상하거나 지나치게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카페 사장이 아프거나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씁쓸한 커피 속의 우울함까지 마셔버리질 말기를.
'궁금한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라고 호기심 많던 시절에 듣던 말이 사실이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 세상을 헤엄치면 알고 싶은 것을 하나 찾아보면 열개 스무 개가 알고리즘을 타고 고구마 줄기처럼 나온다. 알기 싫어도 접하게 되는 무지막지 하게 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이젠 지쳐간다. 궁금한 것의 초기화 시절 때문에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많아서 맛집이 그렇게 많아지고 유행하는 음식의 흥망주기가 무지 짧아진 것일까?
그나저나 여행을 하고 나서 며칠 내로 피검사하면 이상 수치들이 좀 내려간다니
바로 피검사를 해야겠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먹었던 기름진 크롸쌍, 아이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먹었던 피자, 타코등 평소에 절제했던 느끼한 것들이 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먹다 먹다 비행기에서 귀 아프다고 사탕까지 먹었네.
이제 낼모레 피검사할 몸은, 많이 먹었으나 많이 걸었으니 좋아졌으리라는 요행수 내지는 희망회로를 돌려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