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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Mar 25. 2024

사교성에 대한 고찰

모두와 친해질 필요는 없다




    사회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멍청하다. 자신의 최대 장점이 사교성이고 최대 업적이 MBTI 'E'인 인간이 보통 그것에 집착한다. 모든 'E'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보통 남 말하기 좋아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험담하는 것을 선호한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은 서로 무리를 만들고 자신의 무리에 속해 있지 않은 타인을 배척한다. 물론 자신의 무리 안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쉽게 버리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나이가 40이 넘어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지적 수준이 높다고 더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보통 멍청한 사람들이 타인을 자주 깎아내리고, 조금 알고 있는 걸로 거들먹거리는 경우가 많다. 간혹 똑똑한 사람이 잘난 척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가짜다. 총명한 사람은 남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고, 타인을 입에 올릴 시간은 더더욱 없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책 한 줄이라도 더 읽고, 글 한 줄이라도 더 쓰는 게 본질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굳이 비판을 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글터에서 문자로서 표현할 뿐 무분별한 떠벌림은 선호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불행에 대한 면역력이 높다. 굳이 남들과의 교류로 행복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 있어도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에 타인의 관심이 절실하지 않다. 그리고 사람이 모여서 발생하는 피해들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인간이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는 대부분 외부의 것들 때문이고, 가장 대표적인 게 사람과의 교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은 고독 하나뿐이지만, 여러 사람과 같이 있을 땐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 위를 맴돌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칠죄악의 모든 것은 대부분 혼자 있을 땐 피어나지 않는 감정이다. 혼자 있을 때 분노하고 질투하고 교만하게 행동한다면 병원을 가야 할 일이지 고독이 원인일 수는 없다.


    비사교적인 사람에 대한 오해중 하나는 그들항상 혼자일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들 또한 친한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다. 물론 연인이나 배우자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분별하게 여러 술자리를 돌고 모임을 갖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친구를 만나도 서로를 비교하지 않고 음해되는 말을 건네지 않는다. 가족과 연인을 소중히 대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맹목적으로 아무나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만약 사교성이 좋지 않은 사람이 어떤 모임을 참석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수집할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그들은 그 모임을 나와 또 다른 목표가 생기기 전까지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루는 24시간다. 그런데 그중 8시간은 잠으로 할애되고 나머지 10시간 정도는 출퇴근으로 소모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여가 시간은 대부분 4시간 ~ 6시간 정도로 길지 않다.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남는 경우도 허다하고, 자는 시간을 줄여서 사교 모임을 나가는 사람들도 즐비하다. 인간이 겪는 모든 멍청한 고뇌는 전부 교제에서 비롯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복의 시간까지 할애하면서 사람과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찌 이들이 멍청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과의 교제에서 자유로울수록 자신의 시간이 확보되고, 불행에서 멀어진다.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다.


    마지막으로 비사교적인 사람은 협력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교성과 마찬가지로, 무분별한 협력을 바라지 않는다. 적확하게 도움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생 관계가 성립이 되는 협동을 원한다. 바보같이 아무에게나 손을 벌리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함께 하는데 진전은 없고, 체력만 소모된다면 그것은 합심이 아니다.


    고독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에서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사교성은 끊임없는 시험을 요한다. 타인의 기분을 살피며 그들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시험에는 통과가 없다. 말 그대로 끝이 없는 시련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련 중간에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 이후 관상과 MBTI에 매몰되어 그것을 맹신하고 잘 모르는 타인을 예단하고 배척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모든 모임에는 무리가 생기고, 정치를 하기 마련이다. 정치는 공작이 판을 치고 질투심이 팽창해 그 모임을 변질케 한다. 그런 공간을 두둔하고 제집인 양 방문하는 사람은 분명 어딘가 아픈 게 분명하다.


    그러한 대표적인 모임들이 떠오른다. 정상적인 어머니는 그런 모임에 현혹되지 않고 일하는 학부모의 험담을 하지 않으며, 건강을 위한 운동인은 굳이 파벌을 만들지 않는다. 무분별하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또한 거리의 통행을 막고 시민들의 휴식을 방해하며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정의가 아니다. 여러 참사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는 사람들이 우측통행과 두 줄 서기를 할 줄 모르고, 쓰레기를 무단투기 한다. 모든 단체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선을 위장한 괴물들이 분명하다. 사교성은 그런 괴물들을 위장시키는 아주 좋은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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