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부를 읽고 에세이 <5화>

에릭 와이너

by 박진권

[3부 황혼 -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영원회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가설로 인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욱 명확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다시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편집할 생각부터 한다. 그러나 영원회귀에는 그런 게 없다. 모든 인생이 토씨 하나 빠짐없이 똑같이 흘러가고 똑같이 되돌아간다. 단편적이게 생각했을 때 이보다 끔찍한 일이 있을까 싶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쁨은 인생을 살아가며 얻어낸 고통을 뛰어 넘긴 어렵다. 즐거움보다, 괴로움을 더 깊이 각인한다.




인생을 그대로 다시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은 괜찮았다.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다시 범해야 한다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다시 겪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영원회귀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스스로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 당연하게도 범죄를 저질러서도 안된다. 더 이상 비겁해서도 안된다. 될 수 있으면 타인을 흉보는 행위도 그런 자리도 피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상황을 반전시키도록 노력은 해봐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봉사를 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허영심을 채워야 한다. 이대로 다양한 무채색으로 살아가면 인생을 그대로 다시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다. 악한 것만 보고 살기에 인생은 짧다. 부정적인 말과 글만 쏟아내기에는 시간이 없다. 좋은 말엔 행복의 힘이 깃들어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칭찬을 할 필요도 없이 그저 악담만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인격은 한츰 더 성장할 수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사람으로 태어나 벌레가 되어서 사람인척 살아갈 순 없다. 남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해충이 되기에 우리는 각자 위대하고 소중하다.




모든 사상가들은 불확실성을 사랑한다. 분명 그렇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것만 있을 뿐 정답은 없다. 불확실성에서 달아나 확실성으로 뛰어갔으나 결국은 불확실성이었던 경험이 있다. 이 실패의 경험을 토대로 개선하고 계발했다. 그렇게 다시 확실성으로 뛰어갈 때쯤 알게 되었다. 다시금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그렇게 받아들였다. 실패하나 성공하나 무엇이 그렇게 바뀔까. 달라질 것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최대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것이 성공의 길이든 실패의 길이든 상관없다. 걷는 게 좋은 사람은 그저 계속 걸을 뿐이다.


[3부 황혼 -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항상 고통에서 성장했다. 고통이라는 과일은 배움이라는 씀과 동시에 단 과즙을 토해냈다. 나에게 고통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다. 나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그런데 고통이 좋으면서 싫다. 고통이 두렵지 않다. 일 평생 고통과 살아가는데 이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덜덜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겪은 고통들은 전부 경험치였다. 뜻 없고 의미 없는 고통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의 철학에서 말한다. 타인에게 너를 맡기지 말라고. 옳은 말이다. 절대 타인에게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양도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조언을 구하는 행위는 멍청한 짓이다. 스스로 답을 내리고 정당화를 위해서 타인의 힘을 빌린다. 귀가 얇은 사람은 그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망각한다. 타인의 생각이 마치 원래 자신의 뇌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처럼.




철학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염세적이고, 자조적이고, 비관적이다. 그리고... 딱히 할 말이 없다. 내 편협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조금 힘을 뺐다. 직장, 타인과의 관계, 내 일 그리고 내일. 한 번에 내려둘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꽤 오래전부터 천천히 내려두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놨다. 그리고 호기심으로 인한 연락의 빈도를 줄였다. 독서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놨다. 등등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또 내려놨다. 그중 아주 잘 내려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이 섞인 모든 것이었다. 내 사람이 아닌 내 사람일 수도 있는 타인 말이다. 그들과의 연락을 줄이다 못해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을 짐작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그렇게 천천히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언젠가는 세상만사 모든 것을 내려놓는 그날이 오겠지. 그렇게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더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더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행복하겠지. 물론 그러지 않을 수도 있고.




온갖 고통 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고의 시나리오를 항상 생각한다. 수만 번은 했을 테다. 이제는 무엇이 최악이고, 무엇이 최고 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저 하루 즐거움에 겨워 살아갈 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3부 황혼 -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노년>

2021년 11월 16일 내일이면 만 28세가 되는 나로서는 노년이란 미래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은 해볼 수 있다. 원리원칙을 썩 싫어하지 않는다. 글과 음악을 즐긴다. 타인에 대해 크게 괘념치 않는다. 그렇게 증폭된 나의 노년은 고집이 강하고 따분한 이기주의 사색가 정도가 될 것 같다. 생각보다 재밌다.




노화의 큰 문제점은 신체가 쇠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정신이 쉰내가 풀풀 풍길정도로 상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만은 이팔청춘이고 싶지 않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정신만은 상하지 않았으면 한다. 얼굴도, 몸도, 마음도 늙을 수 있다. 초연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이 상해감을 느끼는 순간이 세상 그 어떤 때 보다도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될 테다.




누군가를 받아들이지도 밀어내지도 않는다. 지금은 그러한 상태다. 그저 수용한다. 그렇게 받아들일 뿐이다. 두 손 벌려 받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양 손으로 힘껏 밀어내지 않았다고 해서 내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가온다면 충분히 수용하고, 멀어진다면 단호히 받아들인다. 틈은 없다. 조금도.




원했으나, 크게 초점을 두지 않았던 일들은 이내 현현했다.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추억을 만들고 현재를 살고 미래를 탐냈다. 반복 반복 반복의 현실은 지루함이 되었다. 지루함은 다시 찬란한 추억이 되었고, 추억은 지질함이 되어 방구석에 박혀있는 내게로 돌아와 고통을 선사했다. 그 고통은 엄청난 경험치였다. 나는 버텼고 이겨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똑같은 고통을 받고 이겨낸 후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다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그렇게 걷는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잃었다는 표현은 나를 변호한다. 지금 없게 된 친구들은 내가 직접 밀어냈다. 모두를 밀어내고 단 한 명의 친구만을 남겼다. 서로에게 크게 의지했고, 서로를 깊게 이해했다. 그렇게 평생의 우정도 이기심에 밀어냈다. 혼자가 된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했고, 누구도 기댈 수 없게 했다.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된다는 내 지론이 박살 났다.




그는 여전히 내 친구다. 내가 밀어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친구다. 덕분에 다시금 발전했고, 잃었던 소중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천천히 회복할 수 있었다. 친구는 많다. 소중한 가족도, 직장 동료도, 나를 알고 내가 아는 모두가 친구다.


[3부 황혼 -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에세>

나 자신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맛 본적 있다. 심장이 요동치고, 잠 못 이룬다. 아프지 않은데, 통증이 느껴졌다. 정말 통증이었다. 예고 없이 고통이 찾아왔다. 불안감이 엄습했고, 이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제정신인 줄 알았지만 정상이 아니었다. 일상생활을 잘 이어나갔지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극복을 위해 나에게 위해를 가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나를 통제하며 자해했다. 나 자신을 직접 반으로 쪼갰다. 그렇게 알에서 깨어났다. 다시 태어났다. 물론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앞으로도 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매번 다시 잘 태어났다. 그렇게 돌처럼 단단해졌다.




타인에게서 멀어진 만큼 나 자신에게 가까워졌다. 가까워진 만큼 더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나를 혹사시키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나를 알게 된 이후로 그까짓 시선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하고 있는 것, 해야 했던 것, 하지 못 했던 것을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먹어 치웠다. 마구잡이로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렸다. 지치고 힘들었다. 그리고 개운했다.




나는 아직 나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에세이 같은 독후감을 쓰며 언젠가는 나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 믿으면서 의심한다. 내 정의에 대한 완벽한 정의는 있을 수 없지만 미완성의 정의라도 가지고 싶다. 확고한 신념은 사람을 빛나게 한다. 그런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고집스러워 보이고 가까이하기 어렵지만 아름답다.




죽음이 왜 두려운지 몰라서 두렵지 않다. 물론 아쉬운 이유들이야 차고 넘친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다. 어떻게 죽을까에 대한 궁금함과 고민 그리고, 상황에 따라 호와 불호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움은 아니다.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 더 두렵다.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아직 더 살고 싶다. 책을 더 읽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저녁을 먹고, 언젠가는 가정을 만들어 아내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고 싶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이 모든 것을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죽는다면 아쉽겠지만, 무섭지는 않다.




매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 살아 숨 쉬는 동안 아주 많은 자연을 해칠 것이다. 지구를 병들게 할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라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고, 결국 무가 되어 사라질 운명이니 하루를 더욱 알차고 사랑스럽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 한 명이라도 더 알차고 사랑스럽게 사랑하고 싶다. 알차고 사랑스럽게 죽고 싶다.


[나오는 말 - 도착]

주변 환경을 탓하며 지금의 나를 부정해봤자 도움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근래에 유독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유는 당연히 소비가 잘 되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의 이야기들보다 압도적으로 말이다. 단순히 이야기로만 보고, 듣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을 온전히 잡고 있을 수 있고, 절대 자조하지 않는다는 맹세하에 소비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있어서도 안된다.




변덕이 심한 나는 사소함을 사소함으로 넘겨 그 아름다움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사소함에 푹 빠져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정화된다. 섬약한 나는 좌절하고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다. 그렇게 더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우울한 나는 우울한 글만을 쓸 것이다. 그렇게 내 작품들이 탄생한다. 위의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jpg 일러스트 - studio.mindal [스튜디오 민달] (민달팽이의 작업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