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와이너
[들어가는 말 - 출발]
지식이 깊어지면 지혜가 배어 나온다고 생각했다. 틀리거나 비틀린 정보도 쌓이면 결국 지식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잘못된 지식인 지도 모르고 습득하는데 열을 올렸다. 실용적이지 않은 철학은 멀리하고, 실용적이고 빠른 디지털 정보의 늪으로 뛰어들었다. 편리하고 아늑한 빠져나오기 어려운 늪으로 푹하고 빠졌다.
[1부 새벽 -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명상록>
안전을 추구한다. 하나, 무조건적인 안일한 안전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발전 없는 안전은 이 세상에서 나를 도태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안전한 인생'을 추구한다. 맹목적으로 발전과 계발만을 추구하는 인생은 절대 아니다. 아주 가볍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것 정도의 어렵지만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점철된 인생을 꿈꾼다. 그렇게 오늘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 그 관심이 곡해와 편협으로 사람 재는 자가 하나뿐인 사람들은 피곤하다. 그들은 사실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 걱정이라는 방어막을 설치하고, 남을 연신 까내린다. '확실한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마음먹었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마음껏 폄하한다.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니 골치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생각을 멈추고 이불을 개고 나올 시간이다.
[1부 새벽 -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대화록>
여유로운 삶을 원한다. 느리고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운다. 말을 할 때 한번 더 생각한다. 그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기에 문제에 휘둘리지 않았고, 해결은 쉽게 됐다.
항상 무지에 대해 한탄한다. 더 많은 지식을 원한다. 그러나 지혜는 질문을 통해 찾았다. 스스로의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지식은 스스로 찾고, 지혜는 타자에 의존했다. 나는 지혜롭지 않다. 지식도... 이제는 모르겠다.
염세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기 연민을 태웠다. 그러나 통찰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길이 보였다. 정답의 길이 아닌 문제의 길이었다.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끝없는 문제들의 길이 기대된다. 그 문제를 어떻게 넘어갈지 궁금하다.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목표다. 그렇게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목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사라진 세상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1부 새벽 - 3 루소처럼 걷는 법] <에밀>
밤 산책을 즐긴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퇴근 후 일과를 모두 마무리하고 사람이 없는 동네를 거닐었다. 의도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고 속으로 한 발 한 발 되뇌며 걸어도 보고, 해일처럼 몰려오는 생각의 바다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걸어 본다. 무엇인가 해결하고 싶어 걷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걷고, 걷고 싶어서 걷고, 걷기 싫어도 걸었다.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당시에 걸었던 기억이 나를 지탱한다. 루소의 걷는 법에 대해 서 깊이 이해한다.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재밌는 생각이 나면 기록하고, 슬픈 생각이 나면 우울해한다. 이내 털어버리고 희망찬 생각을 하니 결국 행복해졌다. 끝없는 변덕의 길을 걸었다. 사람도 빛도 최소화된 21년 동안 살았지만 생소한 동네를 걷는다. 그렇게 지쳐 고꾸라진 후 정신을 차리면 침실이었다.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말끔해진다.
[1부 새벽 - 4 소로처럼 보는 법] <월든>
나만의 월든은 무엇일까. 혹은 어디일까. 일단 내 방은 아니다. 집에서 들리는 화목한 웅성거림은 읽고 쓰는데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층간소음은 당장이라도 집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다. 카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라면 월든이 될 수 있겠지만 대게 그런 곳들은 주변에 없다. 음악소리 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거슬릴 수도 있다.
집이든 카페든 결국 소리가 문제라면 이어 플러그나, 이어폰을 착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물을 수 도 있지만, 나는 이어 플러그나 귀마개를 착용할 수가 없다. 군대에서 이어 플러그 없이 K3(기관총) 사격을 한 후부터 심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가끔 들리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중 24시간 내내 항상 들린다. 이어 플러그나 소리 나지 않는 이어폰을 착용한다면 나에게만 들리는 이명 때문에 더욱 방해된다. 소리 나는 이어폰을 착용 후 귀에 때려 박히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읽은 글자들이 머리에서 팝콘처럼 펑펑 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월든을 생각해본다. 스스로 만들어본다.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너무 춥지 않은 가을 어느 날 주변에는 단풍나무가 세 그루 정도 있다. 내가 집적 만든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선선한 바람이 건조하게 불어온다. 곧 누리지 못할 감성을 최대한 만끽한다. 읽기도 쓰기도 싫지만 계속 앉아있는다. 이내 펜도 손도 놓고 자연을 받아들인다. 시야에 걸리는 모든 것을 훑으며 자유를 만끽한다. 이내 누군가 나를 부르는 기분 좋은 소리에 책을 덮는다.
[1부 새벽 -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행복론과 인생론>
명상을 하거나, 밤 산책을 할 때 밀려오는 생각의 파도는 도무지 막을 수가 없다. 그 생각의 파도를 막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번거롭고 의식적이다. 밀려오는 생각의 파도보다 막는 행위가 더 고통스러울 지경이니 도무지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내 것만 밀려온다면 참 좋겠는데, 남의 생각도 같이 밀려온다. 끝내 남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져 내 생각을 찾아볼 수도 없다. 아니 결국 타인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된다. 그렇게 다른 색의 생각들이 섞이고 점철되어간다. 옳은 방향인지 그른 방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것이 싫다. 온전한 나의 생각이 실로 재밌기 때문이다. 끝이 없는 오락과 같은 생각은 세상 어떤 것보다 흥미롭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딴생각을 하고, 걷거나 뛸 때도 그리고 운동을 할 때조차 딴생각에 빠진다. 그렇게 하루 동안 생각의 늪에서 주야장천 허우적거린다. 그게 나쁘진 않다. 염세적인 생각보다는 주로 좀 더 방향성 있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딱딱해 보이는 말을 내뱉을 때도 종종 있지만, 생각만큼은 그리고 글만큼은 희망차다. 항상 밝은 쪽을 향해 최대한의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