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집]을 읽고 에세이 <1화>

손원평 단편집

by 박진권

[4월의 눈]

관계에 있어서 아물지 않는 상처를 해소할 방법은 노력과, 시간 말고는 방법이 없다. 간혹 노력은 하지 않고 시간의 편법만을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겁한 행동이다. 시간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냐에 따라서 그 상처가 옅은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질지, 큰 흉터가 될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노력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연고를 덧발라도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어느정도 노력을 했으니 됐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모든 관계의 끝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정도 했으면...'이라는 생각이 깊어질 때 '이 정도만 더 하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괴물들]

행복은 무엇인가를 채워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닌데, 현대의 사람들은 그 물질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돈이 많은데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라고 말이다. 이 얼마나 기괴하고, 슬픈 발상인가. 그러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면, 평생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물질로 채우는 행복은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사랑하는 내 편이 있다면 그 독의 깨진 부분을 몸으로 막아주고, 수리할 방법을 제안하겠지만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존감 낮은 물질만능주의자들의 주변에 그런 소중한 사람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zip]

전반적인 인생을 자조하고, 스스로를 폄하하며 후회를 반복하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을 테다. 이미 삶이 죽음이자 지옥일 테니까. 누구나 결단을 내리고, 결국은 후회한다. 그렇지만 그 상실감이 스스로를 좀먹지는 않는다. 먹더라도 적당히 먹고, 내 몸 전체를 꼭꼭 씹어 삼키게 두긴 어렵다.




한 사람의 지독하게 길고 무거운 그러나 간결한 인생사를 입에 올리기에 입이라는 것은 너무도 가볍다. 남의 고통에 걱정이라는 조미료를 첨가하고 누구도 바라지 않는 조언을 지껄인다. 그렇게 즐거운 조문들이 이어진다. 육개장이 맛없다면 상을 엎어버릴 위인들이다.


[아리아드네 정원]

가장 어려운 일은 평범함이라고들 한다. 특별함은 어렵지만 특이하긴 쉽다. 존재감 없이 바깥으로 겉도는 인생도 쓸쓸하지만 어렵진 않다. 그런데 딱히 모나지도 않고, 튀지도 않는 평범함이란, 그 평균의 굴레 안에 있기란... 끔찍하게 어렵다.




세대의 잘못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 굴레를 끊을 방법은 결국 다음 세대가 나서서 희생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세대도 희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생은 짧고, 행복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행복마저 망치면서까지 희생하고 싶어 하는 인간은 없다.




그렇기에 가장 쉬운 윗 세대를 욕한다. 그 세대는 황금기였다며 매도한다. 그들 때문이 우리가 힘든 것이라며 자위한다. 그래야만 이 지옥 같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걸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강제적으로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에 개목줄이 채워진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의 목줄이 더 질긴가에 대해 울부짖는다.


[타인의 집]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은 발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그렇게 가만히 두면 결국 어떻게 해볼 엄두도 나지 않게 뒤틀려 다시는 마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우습게도 사과 한마디 없이 싸구려 초콜릿 하나에 서먹한 관계까지는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친근하진 않지만, 대화는 할 수 있고 서로 욕은 하지 않는 사이 말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면 관계는 쉽고 빠르게 좋아진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말이다.




그조차도 하기 싫은 관계의 끝은 파국이다. 얼마나 친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사이가 좋지 않고, 뒤틀려 있으며 개선할 용의가 없다는 게 현실이니까.




그런 때와 장소와 상황은 갑자기 그리고 한꺼번에 찾아온다. 가슴 아픈 때의 생각이 어지럽게 머릿속에 맴돌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에 매몰된다. 그리고 실제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 모를 상황이 만들어진다.


[상자 속의 남자] 아몬드

악법도 법이라는 말에 동감하나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선도 선이라는 말에는 크게 동감하고, 사랑한다. 위선적이 넘치는 세상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선행과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행하는 선행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선으로 다가가고 작고 큰 도움의 손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사람들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잘 못 믿지만, 아직 세상은 밝고 멋진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은 한 트럭이고,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며 도움을 주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당사자는 그것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다. 한 개의 생명으로 혼자만을 위해 살아가기보다 이왕 한 번 사는 거 생명 하나로 둘, 셋에게 도움을 주는 게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예를 들면 조혈모세포 기증 같은 훌륭한 일이 있다. 백번의 선행보다 한 명의 생명을 살리는 게 더 값지다. 물론 백번의 선행도 같이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마음에서 우러나와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




길거리에서 나서서 이타적인 행동을 잘하지는 못한다. 그렇게까지 주목받는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최악의 순간에 속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자리를 비켜줄 때도 그냥 말없이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획 하고 가버린다. 물론 비켜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듯 나는 뒤에 숨어서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두려운 내 눈을 들키지 않는 선에서 그들을 돕고 싶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자만심의 덩치와 건방짐의 정도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문학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도 될 수 없다. 문학은 대단하지만 대단하지 않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든 글을 쓰지 못한다. 대단해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그렇게 생각한다. 문학은 문학이고, 글쓰기는 글쓰기다. 너는 평범하고, 결국 결말은 죽음이며 한 줌 재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 100년만 지나도 너란 존재는 잊힐 테다. 길어봐야 몇 백 년이다. 그러니까. 문학이란 무엇인가. 답하라.


[열리지 않는 책방]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나에게 다시는 열리지 않는 책방이 있다. 그 책방은 참으로 아늑했고 달콤했다. 기분 좋은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매번 치유받았다. 책방의 책들은 전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책방에서 만큼은 관심 없는 장르의 책도, 지금은 째마리 같은 책이라며 비난하는 책들조차 경이로웠다. 그런 책방이었다.




지금도 그립다. 그 책방의 생김새와 포근한 냄새가 가슴에 사무친다. 책방은 아직도 그 자리 그대로 존재하나, 내게 각인된 책방은 과거에만 존재한다. 같은 책방이지만 절대 같을 수 없다. 그리운 것은 책방 그 자체가 아닌 내게 자리를 흔쾌히 내주었던 따뜻한 과거의 책방이다.


[해설 -소음과 하모니 - 전기화]

상냥함, 아늑함, 따뜻함은 반드시 전이된다. 꼭 그래야만 한다. 염세적인 마음이 가슴 한편에 항상 남아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상냥함과 어떤 장소의 아늑함으로 가족의 따뜻함이 더해 차츰 냉소적인 마음을 녹인다. 염세적인 태도가 변화한다.


[작가의 말]

가끔 보이지 않는 적을 만들어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를 자아낸다. 그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르며, 이내 주변인들에게 옮겨 붙는다. 현명한 주변인들은 자신에게 붙은 화마를 쉽게 진화한다. 그리고 안전함을 마구 살포한다. 보이지 않는 적은 물론이고, 보이는 적들 조차 적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당사자와는 먼 사건으로 인식하게 되어 가지고 있던 큰 고통이 결국 사소함으로 변모한다.


일러스트 - studio.mindal [스튜디오 민달] (민달팽이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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