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아프다, 아파
회사원 박진권, 참고 자료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머릿속
그냥 다 그만하고 싶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내려가, 그곳의 작은 서점에서 일하고 싶다. 최저시급은 사치요, 근로계약서 없이 월 백만 원만 받아도 좋다. 허름한 시골집을 매일매일 적당히 수리하며 작은 밭을 일구며 살고 싶다. 자포자기나, 포기하는 심정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글 쓰며 남은 인생을 안온하게 살아내고 싶다. 사실 잡지사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언젠가는 재택 기자 또는 마케터로서 집 밖으로 나오는 횟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삶을 위해서 말이다.
금요일 하루에 면접 일정이 몰렸다. 무려 네 번의 면접 일정이 잡힌 것이다. 낯선 장소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마지막 면접을 보기 전 나는 자일리톨 껌을 씹었다.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고, 입에선 단내가 느껴졌다. 아침부터 밥도 먹지 못하고, 전철로 서울 사방을 돌아다니며 드디어 마지막 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일정은 분명 18시였고, 나는 17시 30분에 도착했다. 관계자는 면접 담당자가 회의 중이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다릴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비상구의 계단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렇게 50분이 지나서야 나는 면접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은 것이다. 만약 면접자가 20분 늦었다면 어땠을까? 볼 필요도 없이 떨어졌음을 직감해야 할 것이다.
10분이 지났을 때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시간도 아까웠고, 면접도 경험이라면 경험이기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언짢은 기분을 안고 임한 면접은 생각보다 잘 본 것 같았다. 다음 주부터 바로 일 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필요 서류 문자를 받았다. 일사천리였다. 그러나, 식은 마음 때문일까, 고된 몸 때문일까.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때 국장에게 연락이 왔다.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받지 않았다.
국장은 내가 해고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과 방법을 물어봤다. 그런데, 그가 예전에 한 말이 있다. “사람 생계가 달려 있는데, 해고할 땐 하더라도 다른 직장 구할 시간은 줘야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내게 귀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임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두 달 전에 나는 선임 기자에게 ‘혹시 제가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미리 알려주길 원했다. 그래야 내가 대처할 수 있으니까.
겨우겨우 15일까지의 시간은 벌었으나, 여전히 촉박하다. 그리고 이 회사의 인간들이 마지막까지 골치 썩히지 않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해고를 해놓고 상실신고서를 써주지 않으면 골치 아파진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한 달 월급을 더 받고자 세무사를 찾을 수도 없다. 오롯이 내 신체를 이용해서 발품을 팔아야 하고 감정을 소모해야 한다. 이 잡지사에 일하며 내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선임 기자의 무능력함을 지적했듯 선임 기자도 나에 대한 단점을 참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처사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근무 환경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때문에, 잡지사 일대기는 계속해서 작성할 생각이다. 절대로 취업하면 안 될 잡지사에 대한 글이다. 넓게는 피해야 할 회사라고 할 수 있겠다.
면접이 주먹구구식이고, 초면부터 반말로 시작한다. 물론 약속 시간도 지키지 않는다.
회사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 사무실이 어수선하고 어쩐지 더럽다. 건물이 오래돼 낡은 것과는 다르다. 물론, 오래된 건물에서 사업을 운용하는 사장의 능력도 의심해야 할 문제다. 또한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고, 청결도가 좋지 않다.
당일에 바로 출근하라고 하거나, 시간도 주지 않고 다음 주 바로 일 하자는 소리를 한다. 또한 일을 알려주겠다는 명목으로 임금을 주지 않는 OJT(사내 훈련: On The Job Training)를 강요한다.
면접 중 열정, 끈기, MZ, 애사심을 중점으로 ‘요즘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는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열정과 끈기 있는 사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개인 시간을 중요시하는 애사심이 일절 없는 MZ에게 볼멘소리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면접 장소에서 면접관이 자신의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하고, 전방위로 비난하는 행태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입사하게 된다면, 더한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상급자는 차가울수록 일하기 편하다. 정 없어 보이고, 냉혈한처럼 보이는 사람은 타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계획한 퇴사도 막상 밖으로 나오면 막막하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는 더욱 막막하다. 단 15일 안에 해내야 하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지내기에 생활이 녹록지 않다. 이럴 땐 나보다 힘든 사람이 넘치는 세계를 망각한다.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는지도 모르겠다. 면접 일정을 조율하느라 바쁘고, 온갖 곳을 걷느라 다리가 아프다. 이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 다니는 잡지사를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다. 하지만 어쩌겠나. 얼마 남지 않은 일수라도 일단은 출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