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분세락 轉糞世樂
아직 살아있음에 행복하다. 물론 단언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게 더 고행일 때도 있으니까. 그 고통을 참지 못해 결국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승을 택한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아직은 하고 싶은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굳이 살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과 사의 자연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좋다.
글 박진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고,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 줌의 고운 가루가 됐을 땐 힘들다는 표현도 부족했다. 불행에 불행이 겹쳐 더 큰 불행으로 다가오고 그 지옥 같은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을 원망하고, 나를 자조했다. 한동안 인생이 재미없었다. 무료한 걸 넘어서 무의미해지기까지 했다. 불행이 내 온몸을 감싸고, 공간까지 장악했다.
불행한 마지막이 예견된 영화 주인공처럼 삶을 살아내고 있을 때였다. 36개월 된 첫 조카가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 삼촌을 부르며 내 품에 폭 안겼다.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 인생은 태어난 순간부터 행복했고, 불행보다 안온함이 훨씬 잦았다는 걸 알았다. 겨우 몇 달의 불행에 염세주의자라도 된 것처럼 굴었던 게 부끄러웠다. 인생 별거 없고, 행복 별거 없다는 걸 한 번 더 알게 됐다.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무거운 쇠를 들며 몸을 단련했고, 공기를 마시며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독서 모임에 참석해 사람들과 대화하고, 인연을 만들었다. 한참을 헤매며 찾지 못했던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까지 만났다. 어차피 세상은 개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매번 행복할 수 없고, 늘 불행할 수 없다. 지금 충분하게 행복하고, 별로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시련의 중간에 있다면 더더욱 안온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행복하니까.
자연과 운명의 호의로 이런 혜택을 누리는 자는 행복의 내적 원천이 고갈되지 않게 철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조건은 독립과 여가다. (중략) 행복이란 바라던 바대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일에서 덕을 따르는 활동이라면서, 좀 더 짧은 표현으로 덕이란 기교의 완벽성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