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특별한 악마]를 읽고 에세이 <8화>

히메노 가오루코

by 박진권

[제1장 소녀의 기도]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분명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중간에 벌레가 되고 마지막에는 바이러스가 된 사람이었던 것들에 대해 조의를 표한다. 온갖 모든 욕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발버둥 치고, 스스로 움직이며 실패할 테다. 결국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냥 그렇게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다.


[제2장 세레나데]

욕구란 순간의 기분에 지나지 않는다. 욕구가 없는 사람은 없으나, 순간적인 또는 일시적인 욕구가 없는 사람은 분명 있다. 아니 있다고 해도,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해서 남들도 똑같이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자.




타인은 입력한 대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첫인상에 어떤 느낌인지를 파악하고, 헤어지고 난 후 이미지를 재 구현한다. 그렇게 스스로 타인에 대한 총평이 이루어진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똑같다.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여러 번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한 스스로의 작은 평가는 무조건 이루어진다. 그것은 경험에서 나온 자신만의 진실이고, 최고의 방어막이다.




내가 외로울 때 하는 행동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해소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말이다. 신기하게도 독서 후 내 감정은 돌 던지지 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 그렇게 외로움을 이겨낸다. 다시금 외로울 땐 또다시 독서를 한다. 사람을 만나며 외로움을 달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더 공허해지는 경우도 있기에 선호하지 않는다. 공허할 때 더욱 공허한 공간에 나를 던지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사람에게 존재의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스스로 부여해야 맞다. 남들이 말하는 존재의 목적, 이유, 가치 등등은 다 쓸모없는 말이다. 그 모든 것은 스스로 정의 내려야 한다. 타인의 조언을 무조건적으로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의 정의도 확립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타인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그 인생은 누구의 인생인가. 내 인생을 원 없이 살고 싶다면 타인이 말하는 내 가치는 일단은 무시해야 한다. 사실 평생을 살아도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데, 감히 나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남이 그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3장 엘리제를 위하여]

티 없이 맑은 사람은 아름답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항상 순결하며, 고결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다. 당연히 이기적이고 졸렬한 모습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타인들과는 다른 밝음이... 그 특유의 빛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위안을 얻음과 동시에 두려움도 자아낸다. 밝은 빛은, 어둠을 만들기 때문이다. 극과 극은 언제나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렇게 서서히 파멸로 나아가거나, 중화되어 섞인 채 하나가 된다.




연인들에게 가혹한 장애물은 사랑하는 만큼 생긴다.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서로를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지쳐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더 사랑해서, 이별을 만들어낸다.


[제4장 백조의 호수]

한 없이 맑은 미소를 보았다. 그 미소에는 불순한 의도가 없다. 한 없이 맑고 불순한 의도가 없는 조카의 미소에는 치유력이 있다. 있는 그대로 행복함만이 존재하기에 덩달아 행복해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호수에서도 백조는 밝게 빛난다. 다사다난한 인생길에서 조카의 미소는 더 밝게 빛난다. 순수한 존재는 늘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을 하고,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관심을 쏟지 않는다. 세상에 고정된 내 자리는 없고, 지금의 자리도 언제든 툴툴 털고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갈 수 있다. 세상에 의자는 많다.


[옮긴이의 글 - 내 작품을 말한다]

자기부정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행동 그리고 말은 도움은 될 수 있으나 정신적인 피로를 감당할 수 없기에 긍정적이 되도록 노력했다.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지만,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흉내를 잘 내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듯하게.




예술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예술이 무엇인가 물었을 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할 테다. 그림, 사진, 소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마음대로 움직인다. 어디로 향할지 모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예술의 진체가 아닐까.


[지은이의 글 - 내 작품을 말한다 - 히메노 가오루코]

글 쓰는 것은 즐겁다. 작은 내가 이렇게 많은 활자들을 내뱉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글 쓰는 것은 자유롭다. 언제든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기 싫을 땐 쓰지 않는다. 글 쓰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가장 최적화된 방법 중 하나다. 글을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지금 하는 일이 맞는가. 방향 설정에는 오류가 없을까. 적절한 속력과 적당한 연료를 구비하였는가. 나는 무엇일까. 매번 고뇌한다.




큰 슬픔이 나를 침식한다. 그럴 땐 스스로 했던 다짐들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 찰나의 순간 나 자신도 함께 무너진다. 다시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도 보이지 않게 까마득해진다. 그래도 믿음을 잃지는 않았다. 슬픈 날이 있어야 기쁜 날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슬픔을 이겨내고 기쁨을 받아들인다. 책의 말처럼 슬픔은 기쁨의 징조를 띠고 있다고, 무조건 믿는다. 나는 할 수 있다.




스스로를 극복하는 일은 숭고하다. 매번 극복하려 하고, 극복했다고 믿지만 때때로 무너지는 자신을 목도했을 때의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극복하려는 시도는 끊임없다. 생각도 쓰기도 읽기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살아내는 방법이다.


..jpg 일러스트 - studio.mindal [스튜디오 민달] (민달팽이의 작업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