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1부를 읽고 에세이 <9화>

한강 장편소설

by 박진권

[1부 새 - 1 결정]

힘을 얻게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저 약한 생명체도 이겨내는데, 나라고 못할 게 어디 있나. 할 수 있다.'라며 다시금 한발 내디뎠다. 그렇게 성장했다. 연약한 생명에게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라 꽉 안고서 속으로 고맙다고 연신 되뇌었다.




가끔 무의미한 감정이 나를 감싸고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계획한 모든 게 틀어지고, 사고도 잇달아 찾아온다. 물을 쏟고, 커피를 쏟는다. 쏟아진 커피는 온갖 물체를 적시고, 책의 반을 갈색으로 물들인다. 놀랐지만 작은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힘이 빠진다. 그럴 때 읽고 쓰는 모든 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쉽게 도움이 될 수 없으리라.




관계의 균열은 눈에 훤하게 보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럼에도 관계는 평생 이어지기도 하고, 끝을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그 균열은 덮을 수 없다. 덧댈 수도 없다. 균열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다른 쪽이 질투를 하거나 비교적 관심과 흥미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다시 돌리는 방법은 질투를 하지 않도록 잔뜩 웅크리거나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온 몸에 꿀을 발라 유혹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한 사람을 향한 질투는 끝이 없고, 꿀은 한계가 있다. 균열을 보수할 방법은 많지만 무조건은 아니다. 치유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1부 새 - 2 실]

행복했던 기억이 변질되어 고통으로 각인된다. 쓸데없이 좋은 기억력 때문에 과거의 사소한 일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 기억들은 뜨문뜨문 나를 괴롭힌다. 지속적인 고통에 점점 버틸 힘을 잃어가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한번 더 버텨낸다.




스스로 삶을 바꾸자고 결심했다. 괴로움 속에 매몰된 상태로 방치하기엔 인생이 아까웠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던 일들을 꺼내왔다. 머리 위에 올려두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렇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200일이 넘게 금연을 하고 있고, 브런치 작가도 됐다. 작은 결실의 열매를 맛보았다. 이제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것은 괴로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자주 포기했다. 지키는 것보다 지키지 않는 것이 더 쉬웠기에 고통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렇게 포기하고 도망친 모든 일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배움 이전에 떠났으니까. 그렇게 맞서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했다. 맞서다 다시금 도망가고 또 맞섰다가 더 안 좋은 방향으로도 흘러가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갔다. 걷기 힘들고, 그만 걷고 싶을 때 과거의 기억들이 내 등을 밀어냈다. 내가 만든 과거가 밀어낸 나는 어디로 향할까.




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빠르게 고개를 젓고 '이딴 생각을 해서 뭐해. 현실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회피라고 볼 수도 있겠다. 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 고뇌에 빠진 적이 있었다. 생각을 통해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잔잔한 고통에서 뿌리칠 수 없는 연옥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과거의 망령이 나를 부정하기 때문이었다. 그 망령은 지금의 나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현실을 자각하고, 현재에 집중한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망령도 일어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의지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팔 하나를 걸치는 정도의 의지는 가능하지만 온 몸을 내던져 의지할 수 있는 상대는 없다. 평생을 걷자고 다짐했는데, 단 한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버텨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단련했다. 당장에 나타나는 효과는 없다. 오히려 더 외롭고, 괴로워진다. 씁쓸하고, 쓸쓸해진다. 내 몸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질 무렵에야 보상을 받는다. 그렇게 고독에 나를 던진다.


[1부 새 - 3 폭설]

말을 아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당연히 아끼지 못하고, 내뱉는다. 뱉어냄의 후회는 없으나 작은 불편함의 적막은 분명 존재한다. 고요 속에 부정의 울림은 불편함이란 감정을 자아낸다. 그게 아무리 찰나의 순간이라도 말이다. 그런 순간의 표정들은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다.




미움이란 게 참 무섭다. 미움의 대상을 고르는 작업은 쉽다. 작업이랄 것도 없다. 그저 어느 순간 미워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불편해진다. 분명 이유는 있었을 테지만, 어느 순간 이유 없는 증오만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이내 자신의 심장을 옥죈다. 자신의 심장이 옥죄이는 이유는 단지 증오심 때문인데, 그 이유를 증오의 대상에게 전가한다. 그렇게 증오의 고리는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악화된다.




냉소적인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마음에 얼음덩이를 소지했다. 그런데 어느새 내 주머니에 불씨가 남겨져 있었다. 버려도 버려도 그 불씨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얼음덩이는 녹고 불덩이가 된 불씨였던 것이 가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따뜻해진 마음을 간직한다. 내 주머니에 불씨를 넣어준 사람을 기억한다. 그의 선행을 따라 누군가의 주머니에 불씨를 살포시 넣어본다.


[1부 새 - 4 새]

선선하다 곧 추워지는 그런 계절. 따뜻한 갈색과 노랑 그리고 빨간빛이 난무하는 그런 계절. 그 모든 색들이 바래 어느새 짙은 갈색빛만 남기고 그조차도 다 떨어져 무채색이 되는 그런 계절이 좋다. 가을과 겨울이 지난 후의 나는 매번 한층 더 강해진다. 봄과 여름내 풀어진 마음이 가을과 겨우내 천천히 굳는다. 대장장이가 담금질을 하듯이 스스로를 계절에 던져 녹이고 두들기고 식히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내면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고통은 인내하고 도저히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은 체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씩씩하게 보이기 위해서 강인하게 인내한다. 혹은 쓸쓸하게 체념한다. 어지러운 머릿속이 왜 이렇게 정리가 되지 않는지 인내심으로 참아도 보고, '그래 그냥 계속 어지러워라'하고 체념도 해본다. 인내도 해보고 체념도 해보고 반성도 해본다. 그렇게 아찔한 하루를 억지로 보낸다. 왜 이러는지 이유는 모른다. 그래도 묵묵히 버틴다. 살다 보면 나아지겠지,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겠지.




오랜 시간 결속된 인연은 얼마나 견고할까. 예의 그렇듯 긴 시간이 모든 것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물건도 사람도 집도 동네도 모두 정이 들어야 마음이 쓰이는 것처럼, 아무리 긴 시간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도 정이 없고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면 우무처럼 물렁할 테다. 물렁한 넓은 관계를 유지하느니 견고하고 좁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단단한 건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생긴다. 그렇기에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보수해야만 한다.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다시금 재 정비해야 한다. 그렇게 보수하고 유지해야 우리의 관계는 건강하게 흘러간다.




나는 운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대부분의 일들이 술술 풀리고,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결국 이루어진다. 가고자 했던 장소에 도착해있는 나를 보게 되고, 얻고자 했던 물건 또한 내 손에 위치해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게 술술 풀리진 않는다. 사소한 계획들이 틀어지고, 쏟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엎어버린다. 혼자이고 싶지 않았던 하루의 대부분은 항상 혼자였다.




큰 틀의 계획들은 술술 풀리는데, 작은 틀의 계획들은 자주 그르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제대로 날 잡았구나.'하고 말이다. 정말이지 그럴 때면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잊고 한껏 자조한다. 지나고 보면 '그런 하루도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심심하게 넘긴다. 그렇게 좋지 못한 하루도 결국 나의 일부분이기에.




통증이 극에 달할 때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방에 틀어박혀 스스로 자가 치유에 목을 맨다. 약을 먹고 누워서 버티고, 또 약을 먹고 누워서 버틴다. 혼자 설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꾸역꾸역 홀로 버텨낸다.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가혹하게, 더 가혹하게. 이내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오게 된다면 매몰됐던 자아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걱정했던 모든 이들에게 환한 미소로 보답하려 애쓴다.




억지로 이타적인 마음을 발하려고 해도 도저히 발화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기심이 기어 나온 것은 아님에도 타인들에게 선뜻 베풀기 어려울 때도 있다.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워하며 이내 절망하니까.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어느 날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씻은 듯이 말끔하게 사라진다. 오히려 더 상쾌하고, 기분도 좋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에 말끔하게 회복된다. 우울했던 이유는 어떤 상황과 기분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수면 부족과 휴일의 부재였다. 질 좋은 수면과 통 큰 이틀의 휴일 후의 나는 매번 다시 태어난다.


[1부 새 - 5 남은 빛]

혼자인 게 두려울 때가 있다. 친구가 없다거나, 연인이 없는 혼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적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 받지 않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소중한 사람들의 도움조차 거부하게 되는 혼자인 상황은 대부분 상실에서 다가왔다. 상실로 인한 고통의 진면목은 그 상실로 인해 또 다른 상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상실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그것은 무자비하게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소중한 친구, 가족, 동료 모두를 말이다. 결국 그렇게 혼자가 된다.




나에게 최악의 상황은 역설적으로 최고의 상황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견디는 것을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번 참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은 흉내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잘 참아낸다. 예를 들어 금연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날 바로 시작한다. 담배를 태우지 않겠다 마음먹고, 14년을 태운 담배를 한 순간에 잊었다. 금단 현상도 없었고, 현재 태우고 싶은 생각 조차 일절 없다. 그리고 금주는 아니지만, 취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몇 년이 흘러도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쓰고 읽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몇 년은 우습다. 몇십 년도 가능하다. 목숨이 허락한다면 몇 백 년도 읽고 쓸 자신이 있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평생을 읽고 쓸 테니까. 그게 대단히 즐거우니까. 무엇인가를 하지 않겠다 마음먹은 나는 실제로 하고 싶지 않아 진다. 반대로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평생을 바쳐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누군가에게 늘 닿고 싶었다. 표면적으로는 닿아 있었으나 실제로는 발 끝에도 미치치 못했다.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닿는 것을 포기했다. 표면적으로만 닿아 있지만 내면적으로도 닿아 있는 것이라 자위했다. 그렇게 발전은 가동을 멈췄고 전기를 끊었으며 온수를 잠갔다. 다시는 발전하지 않을 사람처럼 문을 꼭 닫았다. 그렇게 퇴보의 길을 택했다.


[1부 새 - 6 나무]

꿈을 많이 꾸는 나는 악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타인들과는 달리 악몽이 싫지만은 않다. 악몽도 여러 갈래의 악몽이 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긴박한 악몽, 그러나 절대 잡히지 않는다. 신체의 일부가 훼손되는 악몽, 그러나 고통스럽진 않다. 둘 다 꿈에서 깼을 때 오는 짜릿한 쾌감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영면하신 아버지가 나타나는 꿈, 항상 오열하지만 깨고 나면 반갑고 상쾌하다. 이처럼 사람들이 말하는 악몽, 악연, 악의는 전부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은 많이 보지만, 그 나름을 실행하기가 어렵다. 그 나름을 실행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사색하며 걷고, 생각 없이 명상하는 게 최고다.




사람은, 아니 인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진리다. 어떤 형태로든 살아있다고 믿는다면 다르게 말하겠다. 사람은 신체적인 죽음을 절대 피할 수 없다. 신체가 있는 사람은 결국 썩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조금의 뼛조각만 남기고 말이다. 옛날부터 인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영생을 바랐다. 불로불사의 영약을 찾은 진시황도, 현대의 이세계물에 집착하는 오타쿠들도, 회귀 물과 뱀파이어 그리고 각종 히어로들을 보며 거침없는 힘과 불사를 동경 한다. 그렇게 생각으로나마 자신과 죽음을 격리한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데 말이다.




죽음은 두려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지의 세계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곁들어 있다. 그런 것 없이 무로 돌아간다 해도 좋다. 현대의 사람들은 늘 수면이 부족하고, 늘 불행하고, 늘 고통스럽지 않나. 죽음이 어떤 형태인들 우리들에게 해가 될 게 없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죽음을 인지하고, 더 열심히 살면 된다. 최대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가정했을 때 남은 사람들이 슬픔에 매몰되어 제 삶을 찾아가지 못하게 만들기 싫다면 지금부터 잘 살아야 한다. 죽고 나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다면 누구에게도 원망의 말을 늘어놓지 말자.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뺏어간 우리의 빈자리를 우리의 글로 채워 넣어야 한다. 우리의 글로 인해 그들은 존재를 인식할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공허가 채워질 테다. 다시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jpg 일러스트 - studio.mindal [스튜디오 민달] (민달팽이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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