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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Dec 14. 2024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직급은 허상이다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 없다


무례함과 자신감을 명확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 없다. 누군가에게 하는 아첨은 금전적인 보상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 하나, 무의식에 있는 자존감에는 큰 상처를 입는다. 사회생활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인간은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다. 고개도 숙여본 사람이 잘 안다고, 그딴 건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이제는 알 것이다. 누군가에게 조아리는 게 익숙해진 것뿐이다. 그렇게 자존감을 훼손시키며 사회생활을 한다고 해서 개인의 인생이 엄청나게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럴 시간에 자존감을 지키고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곳에 힘을 분배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 회사는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


박진권




직급은 허상이다

회사는 개인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인생은 회사를 꼭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각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곳은 우리가 꿈으로 향하는 길의 발판 또는 비상식량일 뿐이다. 발판에만 의존하면 멀리 뛰는 것은 가능해도, 다시금 발판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은 더 나아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비상식량만 먹어서는 탄단지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건강에 좋지 않다. 회사는 그런 곳이다. 너무 회사에 의존하면 개인의 인생은 늘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아부하는 게 습관이 되면 고치기 어렵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반복하면 실제로 감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에 진심으로 동화되기 어렵고, 형식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게 회사에서만 그런다면, 크게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 9시간 이상을 보내는 곳에서 형성한 개인의 페르소나를 완벽하게 두고 나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언젠가는 소중한 사람에게도 형식적으로 답하는 자신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아부하면서 다친 개인의 자아를 내 사람에게 해소하는 일도 생긴다. 이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다.


아첨하지 않는다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음속에서는 울화통을 터트리면서 겉으로 웃는 사람이 유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건 그저 가열되고 있는 찹쌀떡일 뿐이다. 얼마간은 겉이 딱딱하겠지만 결국 부풀어 올라 터지는 토치 앞의 찹쌀떡과 다름없다.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지혜가 필요하다. 아부는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진 못한다. 불편한 상황이 발생한 근원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려는 태도도 중요하다. 이것 말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곳에 아부와 아첨은 존재하지 않는다.


볼테르의 표현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틀밖에 더 살지 못한다 해도 경멸스러운 놈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살 수는 없다.” 유감스럽게도 경멸스러운 놈은 세상에 수없이 많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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