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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Dec 20. 2024

내가 있어야 하는 곳

나만의 월든


내가 있어야

하는 곳


필동 3가에 있는 거래처를 들렀다가 오는 길에 남산골한옥마을이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12월 18일 겨울이 체감되는 날씨임에도 어쩐지 한옥마을은 따뜻했다. 햇빛이 정원 전체를 비추는 게 필동에서 가장 좋은 부지인듯했다. 한옥과 기와를 살피고, 아름답게 자란 소나무를 감상했다. 눈으로 담는 것을 선호하지만, 참지 못하고 사진도 찍었다. 평일 오전, 한옥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진권




나만의 월든

종로구와 중구는 특별하다. 이곳이 고향이라거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쩐지 종로구에서 걸어 다니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니 애정이 생겼다. 나의 실내 월든Walden은 집안 서재다. 당연히 실외는 종로구와 중구다. 그중에서도 삼청동과 필동이 독보적이다. 삼청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해도 예술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필동은 충무로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와서 좀만 더 걸으면 인쇄소의 잉크 냄새가 난다. 그 잉크 냄새가 어쩐지 창작 욕구를 불태운다.


예술계 종사자가 아니라도 자신만의 월든은 만드는 게 좋다. 그게 많을수록 인간의 인생은 편해진다. 숨돌릴 틈이 생기는 것이다. 되도록 빨리 만드는 게 유리하기도 하다. 이미 만들어 둔 월든은 남이 침범하기 어렵다. 이미 결혼했거나, 아이까지 낳았다면 월든을 만드는 게 훨씬 어려워진다. 미리 만들어 둔 월든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없는 월든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듯, 아내도 남편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개인의 자아가 깊게 관여되어 있는 월든을 함께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일심동체로 향하는 부부의 길을 지향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예술가는 선택권이 없다. 꼭 만들어야만 한다. 그들에게 월든은 특정 장소가 아니다. 예술가에게 월든이란, 사람, 장소 또는 공간, 상황, 냄새일 수도 있다. 월든은 두 개 정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그것은 나만의 월든과, 우리의 월든이다. 우리의 월든에서 영감을 얻고, 나만의 월든에서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에 아무도 없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그 글의 원천은 깊은 경험에서 나온다. 바로 우리의 월든이다. 우리의 월든엔 여러 사람을 초대하지만, 까다롭게 선정한다. 보통 가족과 연인 등 소중한 사람을 자주 초대한다. 그들과의 대화는 어떤 경험보다도 값지고 의미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동질성이 짙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들의 기운은 또 다른 영감을 선사한다.


피해야 할 것은 서술할 필요도 없다. 내게 월든의 반대말은 파괴다. 무분별한 술자리, 변별력 없는 대인 관계, 아무 의미 없는 장소는 독과 같다. 예술인이 아니라 해도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예술가에는 사약과 다름없을 것이다.


누구든 자신과 동질의 종류만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것이, 천박한 사람에게는 천박한 것이, 두뇌가 명석하지 못한 자에게는 혼란스러운 것이, 저능한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동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자신에게 완전히 동질적인 자신의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고대의 전설적 인물 에피카르모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저들은 자신이 제 마음에 들어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 그들은 칭찬받을 만할지도 모른다, 개에게는 개가, 황소에게는 황소가 나귀에게는 나귀가, 돼지에게는 돼지가 가장 멋져 보이는 법이니.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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