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을 잡아 먹은 망상
오래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어든다. 새로운 관계, 장소, 생각이 서로 다른 사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여러 책장 앞에 서서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했던 사람도 지금은 늘 같은 책장 앞을 서성인다. 간혹 과거의 상념에 빠지던 문학청년도 거대한 돼지 아가리에 금전만을 던져넣기 바쁘다. 이따금 인간을 밀어 넣기도 하지만 금세 까먹는다. 옷, 신발, 시계를 먹여도 끝이 없다. 망각은 신이 주신 축복일까? 어느새 중년이 된 그는 아직도 그 행위를 멈추지 않고 반복한다.
글 박진권
부모님. 어머니의 불어 터진 손과 아버지의 삐걱거리는 다리가 희생된다. 어느새 돼지는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졌다. 그럼에도 남자는 또 돼지에게 밥을 주러 모임에 참석해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며 즐긴다. 교양 없이 침을 튀기며 큰 소리로 떠든다. 어두운 공간 안에 흐리멍덩한 눈알들이 즐비하다. 그 눈알들이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 커진다. 그리고 당신을 뚫어질 듯 바라본다. 그것들과 함께 머리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든다. 즐기는 건지, 깨어나려고 노력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같이 흔들 뿐이다.
도로변에 있는 상가 건물에 한 여자가 살고 있다. 구조가 특이하다 못해 이상한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더욱 심각했다. 불법 임시건축과 증축, 개조 등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 건물에 대한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문을 열자마자 구분되어 있지 않은 주방과 거실이 보였다. 정사각형에 가까웠기에 한눈에 집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정면엔 방 두 개의 문이 나를 맞이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장판 안에 있는 돌조각들이 느껴졌다. 울퉁불퉁한 바닥은 수평이 조금도 맞춰져 있지 않았다. 5평 남짓 하는 장소 한 가운데 어울리지 않는 테이블이 있다. 그곳에 어우러지지 않는 여자가 존재한다. 절대 섞일 수 없는 옷과 액세서리가 걸려있다. 상황과 맞물리지 않는 유유자적 한량의 삶도 보인다. 중년의 여자와 남자의 등을 밟고 서 있는 커다란 돼지가 흡족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황금빛 공간 안 테이블에 교양이 한가득 모여있다. 남들과 똑같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만이, 타인을 무시하며 배려할 줄 모르는 인색함이, 현실을 살지 못하는 질투가,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분노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질척이는 음욕이, 교만에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탐욕이,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나태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밑엔 각기 다르게 생긴 돼지들이 서로 이마를 맞댄 상태로 괴성을 내고 있다. 그 흉포한 돼지에 대한 말을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된다. 그곳에서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보여도 안 보이는 것처럼,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양손으로 소리가 들어가는 곳을 막고, 눈꺼풀의 건막을 자른다. 실과 바늘을 이용해 고통을 참아내며 소리가 나오는 곳을 꿰맨다.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방의 문고리 잡고 문을 열었다. 좁고 어두운 적막 속에서 타자 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남자의 손가락 두 개가 떨어지더니, 이내 두꺼워진다. 끈적한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입에선 괴성과 비슷한 신음이 새어 나온다. 일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방이 멀어지는 것처럼 늘어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져 툭 하고 떨어진다. 이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고독으로 이중의 이점을 얻는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함께한다는 이점이고, 둘째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이점이다. 모든 교제에는 많은 강제와 고충, 위험이 따름을 감안할 때 두 번째 이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데서 생긴다”(『성격론』)라고 라브뤼예르 Jean de La Bruyère (1645~1696) 가 말했다. 사교성은 우리가 대체로 도덕적으로 떨어지고 지적으로 우둔하거나 불합리한 사람과 접촉하게 하므로 위험하면서도 해로운 경향을 가진 것 중 하나다. 비사교적인 사람이란 그런 사교성을 지닐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사교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고뇌는 사교로 인해 생기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