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노력, 노력
공부는 완전히 재능의 영역이다. 개인이 공부에 재능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부모의 성적표를 보면 된다. 전문직의 자식은 대체로 전문직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교육을 받아도 천차만별인 성적의 이유는 모두 유전 때문이다. 예체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가의 자식은 똑같이 화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소설가의 부모도 역시 소설가인 경우도 많다. 인간은 저마다 재능이 있는 공간에 발을 들여야 한다. 이 갈리고 몸 망가지는 노력만으로는 원하는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글 박진권
스스로 한 점 부끄럼 없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계처럼 몇 년이 흘러도 똑같이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게 가능한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오늘은 어쩐지 몸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불쾌해서, 날씨가 흐려서, 그냥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게 인간이다. 아무리 계획적이고, 성실해도 평생을 착실할 수는 없다. 결국 나태해지는 때가 올 것이고, 그 공간을 메꾸는 것이 바로 재능이다. 재능은 개인의 나태함을 가려주고, 적당한 노력을 필사의 노력으로 포장한다.
졸음이 올 때마다 안쪽 허벅지를 꼬집고, 눈의 실핏줄이 터져도 인공눈물로 응급처치하며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방전된다. 평생 꾸준히 사용해야 할 노력을 한 순간에 끌어다 쓴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축구선수 이영표는 이렇게 말했다. ‘재능은 없다, 전부 노력이다.’ 아주 좋은 소리지만, 완전히 틀린 말이다. 재능은 분명히 있다. 노력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노력은 재능 있는 사람만을 따른다. 재능 없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등을 돌리는 게 바로 노력이다. 노력은 재능 있는 사람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능 없는 인간에게 노력은 맨땅에 삽질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도, 재능은 필수다. 인간은 성과가 보여야 지속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에 재능도 있고, 운도 따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은, 흥미가 느껴지는 일에 재능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말이다. 재미는 있는데, 재능이 없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단순 취미라면 재능 따위 없어도 좋다. 나만 재밌으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보통 그 분야에 재능이 없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흥미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취미가 아니라 생계가 달려 있다면 더욱 재능이 필요해진다. 취미라면 즐겨라, 하나 꿈이라고 한다면 재능의 여부를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인간의 욕구는 애써 노력하는 것이며, 저항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싸우는 것이다. 인간은 지속적인 향유가 주는 만족감에 의해 초래되는 정체를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행동할 때와 같은 물질적인 종류의 장애든, 학습하고 연구할 때와 같은 정신적인 종류의 장애든, 장애를 극복하는 데서 인생의 완전한 향유를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장애와 싸워 승리를 거둘 때 인간은 행복하다. 그럴 기회가 없으면 어떻게 하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면 된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