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한 인간은 타인을 본인과 동일 선상에 두거나, 아래로 짓누르려고 한다. 그들은 지성이 없어 상대의 지성을 가늠하지도 못하고, 개념이 없어 누군가의 설명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쓸데없는 말을 길게 내뱉고, 해야 할 말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남이 하는 일을 시도 때도 없이 방해하려 하고, 만약 그 일이 본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최대한 깎아내리려고 한다. 남의 노력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노고만을 피력한다. 타인이 스스로 생각할 수 없도록 최대한 괴롭히고, 본인의 뜻만 주입하려 한다. 되도록 그들과는 맞서지 않는 게 상책이다. 저열한 이들은 이기는 게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상대방을 흠집 내는 더 큰 의도를 가지고 있다.
글 박진권
지성 있고 품격 있는 사람은 여유로운 태도를 지니고 있다. 성공한 누군가를 끌어내리는 데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말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끝까지 듣는다. 반박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굳이 반론하지 않는다. 상대를 존중하는 게 몸에 배어있고, 돼지들의 모욕적 언사에도 조금의 감정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기에 화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계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가 모른다고 어림짐작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모른다고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 지식을 주입하려 들지 않는다. 또한, 사상을 전파하려 하지만, 무차별적이거나 극단으로 치우쳐있지 않다. 자신만의 논리를 설명할 뿐, 그것이 진리라고 표명하지 않는다. 타인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의 영혼을 훼손하지 않는다. 타자의 성공에 시기심을 느끼지 않고, 진정한 축복을 보낸다. 앞에서도 하지 못할 말은 뒤에서도 하지 않는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말을 뱉어내고 싶어 안달인 저열한 사람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성인군자를 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열한 사람들이며, 그의 곁엔 항상 비슷한 성인이나, 군자가 머물러 있다.
그러나 저열한 사람들은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안 좋은 점을 파헤치려 든다.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라며 폄하하거나, 위선자라며 증오한다. 그들의 말을 최대한 곡해해서 듣고, 완전히 다른 뜻으로 만들어 전파한다. 인간은 모두가 성인군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저열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성인군자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사람,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 적절하게 헌정하는 사람 등 틀린 길은 없다. 진리의 길도 없다. 그러나 돼지들이 걷는 혐오의 길은 그저 시체 밭일 뿐이다. 공기 중에 썩은 내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벌레가 들끓는 가시밭길 말이다. 인간은 굳이 그런 길로 걸을 필요는 없다. 개개인의 삶은 위대하든 아니든 그 모든 과정이 아름답고, 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돼지의 삶을 살아가려는 것은 추악하고, 거짓된 삶이다. 그것은 존재로서의 길이 아니다. 그들의 안식처에는 사람이 없다.
지성이 매우 저급한 종류의 것이라면 어떤 정신적 재능도, 비록 아무리 위대한 재능일지라도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는 위대한 재능의 소유자에게서 그 사람의 가장 저열한 것, 즉 그가 지닌 모든 약점, 기질과 성격의 결함밖에 감지하지 못해 그 사람을 그런 결점과 약점을 지닌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 장님에게는 색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에게는 그 사람이 지닌 좀 더 높은 정신적 능력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무릇 정신이란 그것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모든 가치 평가는 평가자의 인식 범위로 평가받는 자의 가치를 따져서 생겨난 산물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