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다
잘해주면 선을 넘고, 만만하게 보이면 콩떡처럼 쉽게 씹히는 게 사회고,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듯 관계에서 무한정 희생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오명뿐이다.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주지 않는 게 옳다. 보답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면 적당히 퍼주어도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주 미세하게라도 기대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베푼 도움은 오래도록 기억되길 원하지만, 타인에게 받은 호의의 고마운 감정은 유통기한이 편의점 삼각김밥보다 짧다. 돌아서면 잊고, 하루가 지나면 까먹는다. 적절함을 유지하거나,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글 박진권
나는 타인에게 바라는 게 없어 함께 있을 때 무미건조하다. 가까울수록 서운할 수도 있고, 멀리서 보면 친해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타자에게 궁금한 게 없고, 질문하지 않은 것은 듣기 싫어한다. 가장 곤욕인 상황은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내뱉은 사람의 말을 끊을 수 없을 때다. 연장자의 말, 상급자의 말은 끊을 수 없기에 더욱 듣기 싫기도 하다.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오랜 대화는 피로도가 상당하다. 그렇게 쌓인 피로도는 인내심이 소모되고, 부족한 인내심은 사실적시 기분 훼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그 말씀은 어제도 했습니다.” 라던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는 것들이 걸러지지 않고 튀어나온다. 기분이 상한 그들은 입을 샐쭉 내밀고는 뜬금없는 것으로 트집 잡을 가능성이 증가한다. 기분 상해죄의 죗값을 묻는 것이다.
물론 사회인이라면 부당한 일이라고 해도 묵묵히 시행하는 게 옳을 때가 있다. 내 업무가 아닌 잡무라도 별말 없이 이행하는 것, 완전 사적인 업무라고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면 도와주는 것이 그 예다. 그런 가벼운 도움이 쌓이면 사소한 어려움이 있을 때 쉽게 도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에서 말했다시피 보상 심리는 적을수록 좋다. 돌려주지 않아도, 보답이 없어도 너그러울 수 있을 때 손을 내밀어야 한다. 100을 주고 200을 받고 싶은 사람은 안 주고, 받지 않기 운동을 하는 게 옳다. 100을 주고 10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인간은 종종 안하무인처럼 100을 받고도 5조차도 주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배려 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듯, 받는 것 또한 권리일 수 없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사람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는 이유는 그 권리를 챙기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지 않고자 하는 선의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임산부 배려석이 항상 배려받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서 헤드셋을 끼고 다리를 꼰 상태로 바로 앞에 있는 임산부를 무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진정 도움받고 싶다면 먼저 나서는 게 옳다. 그러나, 주지 않았다면 받지도 않는 게 세상 이치다. 사회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바라는 것 없이 먼저 나서보는 게 어떨까.
인간은 너그럽게 대하면 버릇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어린아이와 비슷하다. 그 때문에 타인을 너무 관대하거나 다정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중략) 너무 친절하고 싹싹하게 대하면 상대가 오만하고 참을 수 없는 태도를 취해 의 상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