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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멀리 떨어진 출발선

by 박진권

공평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어라 달리고, 넘어져 다친다. 변변찮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다시금 걷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조금 나아졌나 싶을 때, 다시금 뛰어 본다. 미약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멈출 정도는 아니다. 치료받을 돈도, 시간도 없다. 몸의 미세한 부분이 망가지는 게 느껴지지만 애써 외면한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목이 타들어 갈듯이 말랐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저들처럼 멈춰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시원한 물을 마시는 시간이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 또 참아 조금만 더 뛰어 본다. 그때, 저 멀리서 하얀 선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무릎에 온 신경을 전달했다. 이제는 거의 걷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양발을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하얀 선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 선을 밟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것은 결승선이 아닌 출발선이었기 때문이다.


박진권




멀리 떨어진 출발선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결국 그 과실을 맛보게 된다. 죽어라 뛰어간 곳이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인간들의 출발지라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을 게으름피우지 않고 잘 살아내는 것이다. 남들의 인생이 조금도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선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공중누각일 뿐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오직 현실만 비관하게 되는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환기하는 것은 선택이다. 망상이 끝에 가서야 공중누각이 산산이 부서지면 그 폐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켜켜이 쌓아두기 전에 빠르게 부수고 현실을 살아가는 게 훨씬 이롭다.


사막에 고립된 인간은 신기루를 목격하게 된다. 하나, 가까이 가봐야 똑같은 모래만 즐비할 뿐 야자나무와 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 있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알고 있다. 진짜 오아시스를 찾는 게 목적이 아니고, 사막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것을. 얼굴이 더 잘생겼다면, 키가 더 컸다면, 부모님이 부자였다면 등 모두 해로운 공중누각이다.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는 없겠지만, 부정하는 건 아주 쉽다. 현실에 놓여있는, 현재 마주한 과제를 떠올리면 된다. 오늘 해야 할 일, 올해 이루어야 할 목표, 평생 잡으려 노력해야 하는 꿈. 그 밖에도 가족, 연인, 친구 등 유념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어떤 근거도 기저도 없는 사치품과 망상을 쌓아 올리기에 인간의 시간은 넘쳐나지 않는다.


억울하다고 하지 않고, 슬프다고 주저앉으면 그대로 끝이다. 결승선인 줄 알았던 곳이 출발선이라고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잠시 숨 고르고, 물 한 잔 마시고 다시금 천천히 걸으면 그만이다. 늦는다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니까.


그와 같은 주관성 덕분에 그들은 비위를 맞추기도, 마음을 얻기도 쉽다. 그들의 판단은 쉽게 매수되며, 그것은 그들의 편이나 계급에 유리한 발언이지 객관적이고 공정한 발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의지가 인식을 훨씬 압도해서, 미약한 지성이 한순간도 의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의지에 완전히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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