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_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반니
스파티필룸, 스노우 사파이어, 호야 카노사 바리에가타, 몬스테라, 테이블야자 등, 수박과 포도씨까지… 2020년 처음으로 키우기 시작한 식물 이름이다. 테이블 야자는 2년 만에 유명을 달리했고, 수박과 포도씨도 새순은 볼 수 있었지만, 끝내 바스러졌다. 나의 식물 지식 및 사랑은 어딘가 고장나 있다. 식물 관련 도서와 홈페이지에서 ‘정답’을 알려주지만,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보통은 식물마다 물주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심지어 물의 온도도 차이가 있다. 나는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스파티필룸만 바라본다. 녀석의 잎이 살짝 처지면 그 주 토요일 정오에 모든 식물에 물을 준다. 물도 수돗물과 영양제를 섞어서 대충 넘치지 않을 정도로 흩뿌린다. 우리집 물 조리개는 분사 마개가 없다. 물이 튀는 게 싫어서 빼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섬세하게 관리할 때도 있다. 일반 물티슈를 한 장 뽑아 몬스테라 잎 위아래를 정성껏 닦는다. 스노우 사파이어, 호야, 스파티필룸도 빼놓지 않고 전부 꼼꼼하게 닦아준다. 그리고 2년에 한 번씩은 꼭 분갈이도 진행한다. 이제는 스파티필룸의 꽃이 새롭지 않고, 몬스테라의 새잎이 두려워졌다. 두 번째 분갈이할 땐 반드시 어머니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쩌다 보니 분갈이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벌써부터 어떤 모래를 얼마나 구비 해야 할지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보고, 뒷정리에 대한 생생한 기억에 한숨을 내쉰다.
글쓰기 싫은 주말 오후, 나는 또 녀석들 앞에 앉아 있다. 내년엔 꼭 보내야지, 반드시 보내야지하고 다짐한다···.
즐겼던 일에 압박을 느끼는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 그럼에도 좋아하기에 놓지 못하는 것이다. 좋다는 감정을 넘어 그 일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 절망감은 배가 되어 마지막 남은 심장을 옥죈다. 그 행위를 할 때마다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은 유튜브 영상으로 찾아올 수 없다. 비교와 질투는 그다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불행의 끝단에서 곰팡이처럼 피어 번지는 희망이 더 고통스럽다. 지워도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곰팡이처럼 희망은 다시금 얼룩얼룩 번진다, 그 곰팡이는 제동장치를 부식시켜 망가뜨리고, 인지하는 기관지를 상하게 한다. 여러 선택지를 거세하고, 오롯이 의지가 보여주는 길만 바라본다. 마치 그 길이 아니면 죽음이 도래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