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손 뚜벅이 (오키나와 04)

걸어 다니는 시골살이의 시작

by 밴쿠버 포테이토
01-06-01 나카도마리비치 메인사.jpg 나카도마리 해변

조용히 한 달간 나를 품어준 '나카도마리 마을'의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듯이, 나도 바다를 좋아하고 특히 오키나와의 바다를 사랑해 왔다. 나에게 있어 오키나와의 바다는 뻥 뚫리는 시원함에 더해 어떠한 기분 좋은 감정적인 터치가 있다. 한 달을 보내기로 결정한 숙소는 ‘나카도마리’라는 마을이었고, 이곳 마을엔 인적이 드물지만 멋진 해변이 있었다.


예전에, 처음 마음을 빼앗긴 오키나와의 바다는 햇살이 쨍한 날의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하지만 한 달을 지내다 보면 어떤 날은 푸르게 빛나는 바다이고, 어떤 날은 흐물흐물해진 물색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카도마리 해변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처럼 변화무쌍했다. 흐린 날엔 말 그대로 ‘흐물흐물’한 느낌의 바다가 되지만, 이곳이 해가 쨍한 날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기에, 아쉬움 없이 그대로 매일 즐길 수가 있었다. 내일도 여기 있을 것이기에 가능한 마음이었다.


01-06-02-01 맑은날.jpg 맑은 날의 나카도마리 해변
01-06-02-02 흐린날.jpg 흐린 날의 나카도마리 해변




만약 당신이 앞으로 반년 후에도 여전히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여행중일 예정이고, 아무런 의무가 없는 상태로 좋아하는 바다 옆에서 매일을 보낼 수 있다고 상상해보면, 당시의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한 달은 종합적으로 천국 같은 시간으로 남았지만, 사실 꽤나 긴 시간이었기에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또 오르내림이 있었다.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내 행복에 겨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쉬러 갔기에 아무 생각 없이 기분 좋게 걷다가도, 인생의 고민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마련 아닐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고민들이 있으니까. 지금 잠시 도망쳐 오긴 했지만 사실 나도 인생 고민과 달갑지 않은 일들이 참 많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휴식은 그 고민들을 완전히 외면하기보다는 천천히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씁쓸한 것들도 충분히 음미하며 생각을 풀어보기로 다짐했었다. 혼자서 신났다가 심각했다가 화났다가 슬펐다가 기쁘고, 한없이 가벼웠다 무겁기도 하는, 정체 모를 사람의 마음이란 참 웃기다.

정말 다행히도, 마음이 복잡했던 시간보다는 평온하고 기분 좋게 흘러간 시간이 훨씬 더 많았기에, 종합적으로는 잘 즐겼다고 기억할 수 있었다.




01-06-03-02_마을.jpg 나카도마리 거주지 마을

나카도마리는 조그만 바닷가 마을이었다. 해변 앞에 오래된 집들이 모여있고, 그 집들 사이 골목골목을 걸어 나가면 바다가 보인다. 마을 앞으로 나가면 만나는 곳은 나카도마리 해변의 북쪽 끝이다.

01-06-04 나카도마리 북쪽 끝 .jpg 나카도마리 해변의 북쪽

해변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왼편엔 작은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 오른편엔 해변이 펼쳐진다. 계속 걷다 보면 나무가 울창한 산책로가 나온다. 사람이 거의 없었고, 마을 노인 분들을 가끔 마주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들이 있었다.

01-06-05 산책로.jpg 나카도마리 해변 산책로
01-06-06 웨딩촬영.jpg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




오다가다 늘 지나치는 '시사이드 드라이브 인'(seaside drive-in) 식당이 있었다. 매일 지나쳐도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다. 하루는 햇살이 너무나 쨍하게 비춰서 바다색이 절정이었다. 바다가 너무 이뻐서 꼭 바다를 보면서 밥을 먹고 싶었다. 홀린 듯 처음으로 이 식당에 들어갔다. 함박 스테이크의 맛은 누구에게 소개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밥 먹는 자리에서 보이는 바다의 모습은 아는 사람을 전부 데려오고 싶은 풍경이었다. 그날의 바다 색, 멀리 보이는 작은 섬과 방파제, 그리고 식당 앞에 들이치는 파도의 움직임에 온통 마음이 뺏겨 있었다. 그 식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 딱 한번, 최고로 기분 좋은 식사였다.


01-06-07 시사이드드라이브인.jpg '시사이드 드라이브 인' 식당의 창밖 뷰
01-06-08시사이드드라이브인.jpg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나카도마리, 마에가네쿠는 위아래로 붙어있는 마을의 명칭이다. 두 마을을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글에서는 두 이름이 번갈아 언급될 것이다. 그냥 같은 동네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카도마리의 조용한 마을 거리에는 여러 상점들이 있었지만, 비수기인 건지 폐업을 한 건지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정말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내가 산책로로 루틴하게 다녔던 길은 해변을 따라 편도 3km, 왕복 6km의 길이었다. 거대한 몬토레 리조트 근처에서 출발해서, 나카도마리 초등학교를 지나고, 작은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주지 마을을 지나, 푸르고 넓은 나카도마리 해변 산책로가 나오고, 해변을 지나면 58번 국도 최고의 절경이 펼쳐진다. 그 끝에는 나름 관광지인 나카유쿠이 시장도 있다. 관광코스들이 58번 국도를 타고 온나를 지나서 북부로 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카유쿠이 시장은 58번 국도 중간의 휴게소 같은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주차장엔 차도 많고 사람이 꽤나 많았다. 늘 적적했던 나는 산책로의 끝인 이 시장에 사람구경을 하러 들리곤 했다.

01-06-09 58번 국도.jpg 오키나와 58번 국도 최고의 절경, 나 개인적으로.




나카도마리 초등학교 앞의 화단이 기억에 남는다. 소박하지만 정성 들여 가꾼 게 느껴지는 귀여운 화단들. 하교 시간에 학교 앞 길을 지나면, 집에 가고 있거나 집 근처에 모여 놀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딱 봐도 내가 이방인으로 보였는지, 마주쳤던 모든 어린이들이 생소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몇몇 아이들은 한국인인걸 본능적으로 알았나 보다. 어설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해 주는 아이들에 속으로는 깜짝 놀라며, 신나게 본토발음으로 답 인사를 해 주었다. 너무 귀엽고 한편으로 고맙기도 한, 돌아보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들 덕에 나카도마리 초등학교와 학교 담벼락 앞의 화단, 그리고 주변의 풍경들이 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01-06-10-01 나카도마리 초교.jpg
01-06-10-02 나카도마리 초교 화단.jpg
나카도마리 초등학교, 학교 담벼락의 화단
01-06-11.jpg 벚꽃이 남아있는 나카도마리 초등학교




오키나와의 2월은 더운 날도 많았다. 백팩에 짐을 좀 넣고 걷는 날이면 땀에 온몸이 젖기도 했다. 반대로 기온이 내려가고 해가 없는 날은 추워서 긴팔을 입어야 했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환절기의 오락가락 날씨였다. 하지만 2월 말이 되어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는 2번이나 스노클링을 했다. 하루는 스노클링을 마치고 해변에 앉아 바람에 몸을 말리는데, 바람이 차갑지 않고 포근했다. 이제 완연한 봄이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춥지 않은 바닷바람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오키나와의 무더운 여름이 깨어나는 과정을 몸으로 느끼며, 나의 소중한 한 달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갈 준비, 나카도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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