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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Nov 15. 2021

사람이 100명이면 여행도 100가지


워털루역으로 가는 길은 시끌벅적했다. 당연했다. 토요일 저녁이었으니까. 


길가에 위치한 펍과 바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모두 찰랑이는 술 한 잔을 들고 한 주의 노고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부러운 눈빛을 숨기지 않고 그들을 바라봤다. 


‘나도 먹고 싶다… 런던 생맥주…’


만약 내게 일행이 있었다면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선사했을 것이다. 별안간 런던 길바닥에서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딱 한잔만 마시고 들어가자며 사정하는 여성 말이다. 


고된 하루를 끝내고 시차를 극복해가며 마시는 맥주. 캬, 생각만 해도 달다 달어.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현재 알코올 중독자의 회고록을 보고 계시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 여행 신조였다. 한국에서 안 하는 짓은 해외 나가서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처음 보는 사람이 엄마 친구니까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따라가지 않기, 낯선 사람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할 때 함부로 얻어먹지 않기, 처음 가보는 술집에 혼자 술 먹으러 들어가지 않기 같은.  


개인적으로 여행의 본모습은 위험천만한 정글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낭만은 무사히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행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쉽게 죽을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죽음에 노출되는지 봐왔고, 들어왔고, 재수 없게도 겪었다. 


이 글을 우리 부모님이 보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비밀로 했던 이야기들을 앞으로 언급하게 됨에 있어서 미리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래도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니 많이 속상해하지는 말아 주시길. 


어쨌든 여행은 내 선택뿐만 아니라 남의 선택으로도 위험해지기 쉬웠다. 그리고 어딜가나 외국인은 자국민보다 더 보호받기 어렵다. 그러니 가능한 한 문제가 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숙소에는 새로운 룸메가 와 있었다.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떠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한국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여행 초반에 이 사람을 만난 게 천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잠깐의 만남이 나의 여행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으니 말이다.


먼저 이 한국인 여성에 대해 조금 소개해보겠다. 물론 전부 여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실제와 다를 수 있긴 하지만 원래 인간관계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여자는 호주에서 워홀을 했다. 요리가 좋아서 무턱대고 떠났다. 그녀는 한국에서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아예 한국을 떠나버리자’, 라고 생각하고는 짐을 쌌다.  


워홀 비자를 받으려면 계좌에 정착금 500만 원이 있다는 걸 인증해야 하는데, 여자에게는 500만 원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주변에서 돈을 빌려 인증만 하고 돌려주었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상태로 호주로 향한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영어를 배우고, 먹고 싶었던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그리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유럽에 왔다. 


여자는 동유럽에서 서유럽 방향으로 이동했다. 런던에 도착했다는 건 여자의 여행이 거의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여자는 런던의 높은 물가에 한탄했다. 동유럽에서는 이 숙소 비용으로 싱글룸을 쓸 수 있다면서. 


여자는 말했다. 사실 자기는 유럽의 유명한 관광지 중 제대로 가 본 곳이 하나도 없다고. 친구들이 어디어디 가봤냐고 물어봐도 그런 게 있는 줄 조차 모른다고. 


하지만 유명한 맛집과 음식은 전부 먹어봤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먹는 데 돈을 쓰느라 관광지 갈 돈이 없었던 거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건 음식이고, 그걸 위해 떠난 여행이니까. 그거만 충족되면 자기는 충분하다면서. 


처음에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거조차 무서워했는데, 이제는 종업원과 스몰 토킹도 나누며 메뉴 추천과 서비스도 받게 됐다고 했다. 


여자는 마지막까지 지금처럼 여행할 것이고, 여행이 끝나면 요리 공부를 위해 미국에 갈 거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  대화를 통해 나의 여행은 명확해졌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여행이 있는 법이었다. 그 당연한 걸 모르고 있었다. 


이제와 터놓고 말하자면 나도 인스타에 인생 샷, 맛집 인증, 유럽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산품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었다. 남들 다 한 예쁜 여행, 누군들 안 해보고 싶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뱁새였다. 그것도 살짝 뻗기만 해도 가랑이가 찢어져 전치 12주 나오는 숏다리 뱁새. 


남들하는 만큼 못 하고 산다는 현실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 쓸데없는 자괴감이 여자의 여행을 보고 사라졌다. 


한국에 있을 때도 맛집을 찾아 다녀본 적이 없었다. 난 한 달 내내 김치볶음밥만 만들어 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먹는 것에 큰 욕심이 없었다. 

유소유 정신이 강해서 물욕은 강하지만 개학 첫날 교과서를 전부 학교 사물함에 두고 갈 정도로 몸이 가벼운 걸 더 선호했다.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예술이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미술과 예술을 택했다. 이 두 가지를 만족할 만큼 즐기기만 해도 절대 후회 없을 여행이 될 것이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잡게 되는 일은 드물다. 아니, 타인을 통해 변화하게 되는 일 자체가 어렵다. 인간이란 고집이 드럽게 센 존재니까. 물론 저도 휴먼입니다. 


운 좋게도 나는 여행에서 인상 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쩌면 숙소 덕일 지도 모른다. 나와 비슷한 상황(호텔 쓸 만큼 돈이 많은 편은 아님)에서 비슷한 고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민의 바탕은 돈일 경우가 큼)을 했고, 더 많은 생각(난 여행 초짜니까)을 한 사람들이 고를 법한 숙소를 갔으니까. 


우리는 여행이라는 흐름 안에서 우연히 모였다가 다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행은 복어 요리 같다.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그 맛은 세계 4대 진미로 뽑힐 정도라 하지 않는가. 


참고로 나는 복어를 먹어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평범하게 닭가슴살 챙겨 먹고 안전하고 평탄하게 살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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