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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Nov 11. 2021

같은 시대에서 나와 다른 태도로 사는 사람들


빅벤은 예상대로 웅장하고, 아름답고, 화려했다. 

화면으로 질릴 만큼 본 건데도 예뻤다. 아니,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감흥이 생겼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물이라도 사진으로만 접한다면 그건 그저 평면에 불과하다. 내 셀카나 파르테논 신전 사진이나 재질과 크기가 똑같으니, 솔직히 말해서 사진으로 큰 감명을 받은 적은 없었다. 


시간이 만든 낡은 그을음들이 빅벤의 벽돌 하나하나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실감이 났다, 사진 속 건축물들이 모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볼 수 있다는 것도. 


실물 빅벤은 피터팬 속 이미지와 제일 가까웠다. 사람들 틈에 섞여 가만히 시계탑을 바라봤다. 첨탑 주위로 금가루를 흩날리며 날아다니는 피터팬과 웬디, 팅커벨이 그려졌다. 


… 피곤해서 헛것 본 거 아니다. 내 감성이다. 


피터팬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동질감은 느낀다. 정확히는 피터팬의 심리학적 분석에 공감한다. 


피터팬 증후군. 영원히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회피형 인간. 사회에 내 자리가 없을 거 같다는 두려움에 유럽으로 도망친 내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만약 피터팬이 21세기까지 놀러 왔어도, 나의 회피한다는 사실조차 회피하는 지독한 회피성을 보고 혀를 내두르며 네버랜드로 떠나 버렸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윤솔입니다. 제가 한국의 피터팬입니다." 


그러면 피터팬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겠지. 


"아니요, 제가 영국의 윤솔입니다." 


피터팬은 영원히 아이인 채로 모험을 떠나고, 나는 지방소득세 내야 하는 어른인데 도망을 쳤다. 게다가 비겁하게도 불안감을 ‘여행’으로 포장까지 해버렸다. 


그 사실은 한동안 나의 부끄러움으로 자리 잡았다. 이 생각이 바뀐 것은 근래에 들어서였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비겁함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내가 그런 인간으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만큼, 나와 비슷한 이유로 현실에 겁 먹은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마음은 ‘겁쟁이’라고 남에게 한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기 딱 좋다. 그래서 더 꽁꽁 숨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자신 뿐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글은 어딘가에 있을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이렇게 안팎으로 사회 부적응자 같은 인간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답니다. 여러분, 의외로 세상한테도 호락호락한 면이 있어요.



런던아이는 빅벤과 달리 실망스러웠다.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멀리서 봐야 아름답다. 런던아이도 거기에 적합한 랜드마크였다. 어쩌면 런던 ’아이’라는 이름 덕에 더 유명해진 걸지도 모른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런던아이 중앙에 코카콜라가 광고를 하고 있었다. 런던아이를 타면 스피커를 타고 ‘웰컴 투 코카콜라 런던아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참으로 자본주의적인 랜드마크다.  


템즈강 주변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베이징행 비행기에서 옆자리 여자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런던탑에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런던에는 비둘기만큼 까마귀가 자주 보인다. 당연히 런던탑에도 까마귀가 살고 있다. 근데 그 까마귀들은 국가에서 사육하며 보호하는 새들이란다. 


런던탑에서 근무하는 까마귀 사육사들은 새들을 돌봄과 동시에 까마귀가 런던탑을 떠나지 않게 관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왜냐하면 런던탑에 거주하는 까마귀가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면,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멸망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전설 같은 소리라 말이 끝나자마자 진짜냐고 되물어버렸다. 여자는 영국에 사는 친척이 해준 이야기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니, 영국 전설인데 망하면 영국만 망하지 왜 전 세계가 멸망한대요?”

“왜냐하면 영국이 세계의 중심이니까요.”


새삼 그 시절 영국의 오만함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제국의 생각이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야경 사진을 찍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한 무리의 여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나에게 카메라를 내밀며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아마 내가 들고 있던 DSLR이 의도치 않게 사진에 대한 신뢰감을 준 모양이었다.


카메라를 건네받으며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날 어떻게 믿고 이 비싼 카메라를 선뜻 맡기는 걸까. 친구들 중에 달리기가 빠른 사람이 있나. 물론 훔칠 마음은 1도 없지만. 영국에서 제 인권이 그대들의 인권보다 보호받을 거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서도… 


멀리서 쳐다보기만 해도 인종차별인가, 하고 가시를 세우는 나와 다른 태도인 건 분명했다. 


친구와 함께라서 인가, 백인이라서인가, 해외여행에 익숙한 환경에 살아서인가. 아니면 이 모든 이유가 다 해당되어서인가.


같은 세상에 태어났는데도 나와 다른 태도로 산다면 그 차이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어쨌든 내가 그들보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건 바로 알았다. 카메라에 플래시가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둡다고 플래시를 키고 촬영했다가는 그 시절 싸이월드 감성되기 쉽상이다.


나는 최고의 각도와 화각을 찾아 모델들의 위치를 바꾸고, 플래시 대신 조리개를 열어 인물과 야경의 조화를 맞추면서 그거로도 부족해 높은 계단에도 올라갔다가 몸을 낮게 숙이기도 했다가 하며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의 인생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이건 자존심 싸움이다.


노력한 보람 있게 카메라를 돌려받은 여자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런던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티는 안 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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