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첫 숙소에서 나와 체크아웃을 했다.
잘 있어라 3층 침대야, 잘 있어라 방에서는 절대로 안 터지는 와이파이야.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안 되는 날. 의자에 앉기만 했는데 스타킹 올이 나가고, 책상 끝에 살짝 부딪혔는데 시퍼렇게 멍이 드는 그런 날.
다음 숙소는 킹스크로스 역 근처였다.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었지만, 전 날 버스에서 멀미와 시차가 셰이크 되어 토하기 직전까지 갔기 때문에 절대 버스는 타고 싶지 않았다.
제 몸만 한 짐가방을 옆에 두고 웬 외국인 여자애가 길 가에 널브러져 있다? 높은 확률로 가출한 마약 중독 청년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 사실 이 나이는 가출이 아니라 출가를 하는 게 맞긴 하지만.
나는 지체 없이 지하철을 택했다. 킹스크로스까지는 노선을 세 번 갈아타야 했지만 멀미보다는 번거로운 게 나았다.
런던의 지하철 개찰구 중에는 상체 쪽에 위치한 작은 판이 양쪽으로 자동문처럼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게 있다.
배낭이 내 몸뚱이만 했기에 개찰구를 통과할 때는 몸이 끼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래서 조심히 들어가려고 한 게…
… 그대로 개찰구 사이에 끼어 버렸다. 지하철 문에 낀 것 같은 압박감에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들고 있던 캐리어는 내가 쪽팔린다는 듯이 재빨리 내 손을 떠나 저 멀리 굴러가고 있었다.
개찰구가 지하철 문과 다른 점이라면 얘는 기계라 눈치가 0에 수렴해서… 다시 문 열 생각을 정전 날 때까지 안 한다는 점이랄까.
아주 융통성이 빵점이다, 빵점. 도의적으로 세 명이상 구경하고 가기 전에 열어줬어야지.
형광 조끼를 입은 지하철 직원이 뒤늦게 ‘이게 뭔 일이냐’ 싶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간절한 얼굴로 손을 휘적거리며 도와달라고 하니 그제야 웃으며 개찰구 문을 열어 주었다. … 근무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나 봐요. 예,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러나 이날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환승에 가까워졌을 때, 나의 지친 발걸음을 출입금지 표지판이 멈춰 세웠다. 앞에 서 있던 직원이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노선 개편 때문에 킹스크로스까지 가는 지하철 운행 안 합니다.”
“…”
나는 황망한 얼굴로 직원에게 킹스크로스까지 가는 방법을 물었다. 직원은 베이커 스트리트에서 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 주었다.
신이시여, 어차피 버스 타는 운명이었다면 꿈에서 '테이크 어 버스'라고 한 마디 정도는 해주실 수 있으셨잖아요.
셜록홈스 그림으로 채워진 베이커 스트리트 역을 빠져나와 어찌어찌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웬 남자가 내 짐을 들어주겠다고 웃으며 다가왔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남자는 순식간에 웃는 얼굴을 차갑 게 굳힌 뒤 쌩하니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일이 한 번은 생길 거 같았다. 그래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만 챙겼다.
해외에서 처음 본 사람의 이유 없는 친절은 항상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슬프지만 그랬다. 낯선 땅에 떨어져 친절이 간절한 외국인을 이용하는 인간들은 의외로 많았으니까.
방법도 다양했다. 지금처럼 짐을 들어주고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돈을 주지 않으면 가방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횡포를 부리거나, 정신없는 틈을 타 물건을 훔쳐가는 일들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왕왕 일어났다.
그렇다고 모든 친절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모든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없어서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행동할 뿐이다
그러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온 사람을 소매치기로 오해하여 후회했던 적도 있었다. 그 사람이 나의 무례했던 행동에 크게 마음 쓰지 않았기를 바란다.
사람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점에서 여행은 슬프고 냉정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항상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살아가려면 현실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숙소 근처에는 인도 커리 가게가 많았다. 인도계로 보이는 영국인들이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역사책 속 텍스트가 현실이 되어 다가 온 순간이었다.
도시 내에서 숙소를 옮기게 되면, 체크 아웃과 체크인 사이에 붕 뜨는 시간이 생긴다. 나는 리셉션의 짐 보관함에 가방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마침 오는 길에 꼭 가보고 싶은 식당을 발견한 참이었다.
가게의 이름은 Cappadocia Cafe & Bistro 였다. 아침과 점심 식사를 파는 곳이었는데, 규모는 작았지만 손님도 꽤 있었고 직원도 친절했다. 소박한 분위기에 긴장도 누그러졌다.
메뉴판에서 무난해 보이는 크림 파스타를 시켰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한가로이 기다리며 창문 밖을 구경했다. 테라스에 앉아 있던 남자 둘이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카페 내에서의 금연이 익숙했기 때문이 그 장면이 생경했다.
나의 첫 번째 유럽 식당 요리가 나왔다.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양이 많았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았다. 마치 냉장고 속 배즙처럼 셀프 번식하는 착각이 들었다.
게다가 다양한 치즈를 사용하는 나라답게 크림소스가 아주 진했다. 이곳에 김치가 있을 리 없었다.
결국 1/3이나 남기고 말았다. 절대로 맛없어서 남긴 게 아니란 걸 어필하기 위해 종업원에게 몇 번이나 맛있었다고 이야기한 뒤에야 가게를 나왔다.
안타깝게도 나의 음식으로 죄짓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국은… 맛보다 양을 선택한 국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숙소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예약한 방을 안내받았다. 이곳은 조식이 제공되는 호스텔이었다. 가난한 여행객에게 조식제공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그게 이 숙소를 택한 큰 이유가 됐단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 근데 조식에 너무 눈이 돌아가버렸던 거지.
내가 선택한 방이 남녀 공용으로 18명이서 같이 쓰는 도미토리 룸이었단 걸 방문을 열고나서야 알았다.
9개의 벙커 침대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광경이란... 이게 게스트 하우스냐… 생활관이냐…
그 18명이서 이 방에 있는 화장실 하나를 공유해서 썼다. 여기서부터 일단 눈치게임 시작이고요... 이 방을 맨 처음 무슨 의도로 사용하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천장 대부분이 온실처럼 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기에 늦잠을 자려면 정수리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이겨내야 했다.
… 하드모드 인생은 한국을 떠나도 하드모드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