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인을 끝내고 지하철을 타고 웨스트 민스터로 향했다. 어제는 밤의 빅벤을 봤으니 오늘은 낮의 빅벤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 시간 웨스트 민스터에는 누군가 방문한 듯했다. 건너편 도로에 카메라와 기자들이 가득했고, 검은 정장을 입은 가드들이 궁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딱 봐도 국가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온 분위기였다.
영국의 정치인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내가 어차피 봐도 모른다는 점이랄까.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변을 서성이며 구경하다가 발길을 옮겼다. 행인들도 나처럼 조금 두리번거리다 다시 제 갈 길을 걸었다.
이날 이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주일 뒤,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4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란 걸 말이다.
낮의 런던아이는 밤보다 더 활달했다. 부모님과 함께 놀러 온 어린아이부터, 현장학습 온 학생들까지 밤보다 관광객의 연령층이 더 다양했다.
혼자 여행 중이란 걸 알아보고 어떤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다가왔으나 거절했다. 사람들의 친절과 관심이 애초에 나에게 향하지 않았으면 했다.
관람차 주위로 버스킹 연주, 노래, 마술쇼 등의 길거리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마술쇼를 보기 위해 군중들 사이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마술키트로 장난치는 것을 제외하고 진짜 마술쇼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술사의 정중한 인사와 함께 쇼가 시작 됐다. 마술사는 군중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를 지켜봤다. 무대 구성에서 마술사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절대 안 들킬 수 있다 이거지. 좋아, 한 번 내가 매의 눈으로 찾아내 주마.’라는 어리석은 오기가 올라왔다.
마술사는 관객들에게 20유로 지폐 하나를 빌려 달라고 했다. 현장학습 나온 남학생 하나가 주머니에서 20유로를 꺼내 마술사에게 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돈이 다시 남학생의 주머니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마술사는 20유로짜리 지폐를 없애기도 하고, 찢기도 하고, 불태우기도 하고, 백지로도 만들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마술쇼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분명 셜록 홈즈였는데, 끝나고 나니 열린음악회 관객1이 되어 있었다.
마술사는 남학생에게 돈을 돌려주었지만 남학생은 웃으며 그 돈을 그대로 마술사의 팁박스에 넣었다. 다른 관객들도 하나 둘씩 나와 박스를 채웠다. 얼핏 보기에도 꽤 많은 돈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인생은 실전이고 현실은 정글이라고.
마술사에게 선뜻 20유로를 넘겨준 남학생을 눈여겨보던 사람이 또 하나 있었으니...
흩어지는 군중들 사이로 색색의 끈을 가득 쥔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남학생과 그의 여자친구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이 커플의 앞을 가로막고 밝은 미소를 띠며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충 멀찍이 서서 들어 보니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고, 사랑이 더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이 사랑스러운 커플의 팔에는 남자가 들고 있던 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 행동이 마치 담 넘어가는 구렁이처럼 자연스럽고 순식간이라 이게 남자의 평소 수법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친구들은 별안간 나타난 친절한 이웃이 자신들을 축복해주었단 사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두 사람이 꺄르르 거리는 와중에 팔에 묶인 끈 팔찌의 매듭이 지어졌다. 얘들아… 너희 지금… 아니다…
남자는 두 사람의 손을 맞잡고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진지하고 그럴듯해서 조금 감탄이 올라왔다. 이것도 프로라면 프로인 걸까…
기도가 끝나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남학생에게 돈을 요구했다. 남학생은 싱글벙글하며 아까 전 20유로가 나왔던 바지 주머니에서 또 다른 지폐를 꺼내 남자에게 주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세 사람 모두가 행복해졌으니 된 거겠죠… 잠깐 머물렀다가 떠나는 이방인의 어이없음은… 절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이 여행에서 나는 나만의 빅맥지수를 만들었다. 그런데 내 빅맥지수는 가격이 아니라 맛이다.
빅맥은 일부 재료를 해당 국가에서 제조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별로 빅맥의 맛도 다를 거란 가설이 세워졌다. 나는 그 가설을 바탕으로 내가 방문한 모든 유럽 국가의 빅맥을 전부 먹어봤다. 아, 맥도날드가 없는 나라도 있으니 거기는 빼고.
그래서 정말로 달랐냐고?
달랐다. 맛의 차이가 있었다. 다행히도 나의 가설은 성공했다.
빅맥 맛이 인상 깊었던 나라에 관해서는 해당 국가에 대해 쓸 때 함께 이야기하겠다.
영국은 나만의 빅맥 데이터의 첫 번째 나라였다. 참고로 맛은 그렇게 인상 깊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방문한 런던의 맥날은 내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바로 직원 때문이었다.
나는 백발의 직원에게 빅맥을 주문했다. 주름진 손은 나에게 거스름 돈을 건넸다. 그녀는 곧바로 다음 손님의 주문을 받았다. 능숙하게 러시 타임을 해내는 걸 보면 맥도날드에서 근무한 기간이 오래된 것 같았다. 중간중간 직원들과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미소를 띠고 일하는 모습이 굉장히 유능해 보였다.
그녀를 할머니로 인식하고 있던 건 그곳에서 나뿐이었던 듯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서비스업종에서 사장이 아닌 직원이 노인인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했다.
도대체 왜. 나는 그게 왜 당연했을까?
똑같이 교육받고, 배우고, 익히면 되는 일일 뿐인데.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일까?
한국에서 노년이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환경미화, 전단지 나눠주기, 건물관리, 청소 같은 모두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직업들 뿐이다.
왜 한국은 노인이 되면 일상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 밖에 할 수 없게 되는 걸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일상에서 노인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걸까?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백발의 직원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상황이 당연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카페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는 사회가 됐음 싶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백발의 현역을 보지 못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