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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부모 밑에 이혼한 자식이 나오는가?

그녀 이야기 Part 2.

by 쎄오

'니가 필요하다고 말을 안 해서 몰랐지.'

며칠 전 친정엄마의 칠순 기념 가족 여행에서 나누던 대화 중 엄마와 언니가 동일하게 보인 반응이었다.


나는 유년시절 우리 집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준비물을 사달라는 말을 못 했었고 대신 친구 것을 빌려 쓰거나 그냥 없이 생활했었다.

당연하게도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준비성이 부족함이란 종합 평가가 남아있고 그것을 그저 재미난 어렸을 적 에피소드인 양 우리 가족은 가볍게 다뤄오곤 했는데.


'어쩜 그렇게 모를 수가 있어! 오죽하면 그 어린 7살짜리 아이가 필요한 걸 사달란 말을 못 했겠어. 너무 일찍 철이 들은 거지!!' 라며 분노하는 나에게 남편은 너의 기억이 왜곡되었을지 모르니 엄마와 언니한테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항상 같은 반응을 보여오다가 결국 이번 칠순 기념 여행으로 온 가족이 모인 중에 그가 화두를 던졌다.


'어머니, 쎄오가 그러는데 어렸을 적 집이 너무 가난해서 본인은 필요한 것을 사달라고 말도 못 했었는데 상대적으로 처형은 갖고 싶은 건 꼭 얻어내고 그랬다면서요. 맞아요?'


아... 내 남편... 궁금한 건 못 참는 그가 결국 이렇게 입을 떼는구나.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했었어? 비록 집과 살림살이는 좀 누추했지만 너희는 삼촌이 용돈을 줬었고 어쩌다 한 번씩 밖에서 아빠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현금을 두둑이 받아왔었는데.' - 엄마 왈,


'맞아! 그래서 내가 친구들 중에서도 돈이 많은 편이라 먹을 것도 줄곧 사줬고 당시 휴대폰도 우린 최신폰으로 갖고 있었잖아!' - 언니 왈,


엄마와 언니의 기억은 비슷했고 나 혼자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다니.

'언니, 형부, 남편 모두 첫째들이라 둘째의 설움 이런 건 몰라! 그래서 그런 거야. 태어난 순서에 따라 타고난 기질도 다르다고 했어. 그리고 블라 블라...'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를 하긴 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아니 오히려 새롭게 생겨버린 이 찝찝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은 온통 상처 투성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파생된 수많은 결핍들.

마흔이 넘은 지금도 떠올리면 심장이 조여 오는 순간들이 수두룩한데 동시대 같은 환경을 지나온 그들은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나만 좀 억울하단 생각도 들었다.






일찌감치 혼자서 살림을 도맡아 해 온 나의 엄마.

어린 내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항상,

지쳐있고

치열하고

따분하고

쓸쓸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여자 같았다.

오로지 자식을 위한 희생이 전부였던 그녀.


그래서 나라도 엄마에게 짐이 되진 말잔 생각에 나 힘든 이야기, 돈이 들어가는 상황, 사춘기를 격렬하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 그 어느 것 하나도 말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활이 관성이 되어 우리 둘 사이의 대화의 깊이나 부피는 다소 얕고 작아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무난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지금도 약간의 무게감을 가진 진지한 대화 주제를 꺼내고자 하면 나의 얼굴은 붉어지고 심장은 쪼그라들며 속으로 몇 번을 되새김질하다 겨우 말을 시작한다.

남녀노소 그 누구를 가져다 놓아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말발의 대가인 나인데 오로지 한 사람, 나의 엄마에게만큼은 그렇게 입을 떼기가 어려울 수 없다.

마치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오로지 둘만이 간직한 암묵적 비밀이 있는 관계인 것처럼.


타고난 기질이든 일찍 철이 든 탓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어린아이였고 엄마는 그래도 어른이었으니깐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어린 자식을 좀 더 챙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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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내내 궁금했었다.

어째서 엄마 김혜자는 아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그러한 선택을 하였으며 상처 줘서 미안하다 사과하지 않는지를.

명쾌하거나 납득이 될만한 설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한다는 액션 정도는 취해주는게 인지상정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문득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온 세포로 그를 부정하고 싶어 지는 때가 생긴다는것. 그건 내가 너무 잘 아는 사실인데...

우리들의 블루스에서의 저 대사를 보고,

'아, 그 마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했다.


죽은 어머니를 안고 울며 난 그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이렇게 오래 안고 지금처럼 실컷 울고 싶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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