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며.
조산 가능성이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쉬셔야 합니다.
아직 출산까지 10주나 남아있는데 조산이라니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다.
첫째 때는 막달까지 직장 생활도 했고 출산 예정일에 맞춰 자연분만을 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큰 이슈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소파에 누워 티브이나 보면서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팔자가 되어버린 나.
전엔 결혼 후 임신 준비를 한다며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는 여자들의 삶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역할과 책임에 대한 부담이 적은 놀고먹는 생활.
내가 생각한 그녀들의 삶에 대한 한 줄 평.
물론 집안일이나 각자 나름의 활동 영역이 있겠지만 이 험한 한국 사회를 살아낸 다 큰 성인 여자에게 그 정도의 역할은 대단한 스트레스도 아닐 것이고 비교적 다루기 쉬운 업무 패턴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의무 교육이 시작되는 만 7세 이전의 삶을 제외하고는 죽을 때까지 인생의 8할 이상을 특정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가계 경제의 책임도 없고 꼴 보기 싫은 사람이나 억지로 참아내야 하는 상황을 대면할 필요도 없는 애 없는 신혼의 전업 주부의 삶이란 얼마나 꿀 같은 시간이겠는가.
소비하는 삶.
그렇게 꿈꾸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물론 나는 첫째 아이 육아에 대한 의무가 있고 뱃속에 아이를 잘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도 있어 온전한 자유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론 좀 더 누워서 쉬거나 집안일에 소홀해도 되는 합당한 이유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이 시간이 꿀 같이 달지도 않고 즐겁거나 편안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앉거나 서있기보다는 주로 누워있으란 처방이 내려져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하루 종일 누워만 있자니 소화도 안되고 없던 두통도 생기고 무엇보다 그마저 남아있던 근육도 다 빠져나가 조금의 움직임에도 숨이 찰 지경이다.
이 상태로는 다시없을 이 소중한 잉여의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원인이고.
사실 그보단 마음이 불편한 것이 더 큰 이유이다.
몸은 힘들어도 무엇이든 생산하는 것이 더 좋고 과정보단 눈에 보이는 미시적 결과에 집착하는 내 성향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그저 흘려보내는 듯한 이 생활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않고 미뤄둬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
이런 나의 설명에 지역 사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심리 상담 프로그램 담당자분이 하신 얘기가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쎄오님은 지금 뱃속에 아이를 키워내고 계시잖아요.
잠을 자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아이는 자라고 있고 그 누구보다 쉬지 않고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니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편안하게 받아들이세요.
내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돼 전 직장을 퇴사한 이후에도 난 단 한순간도 경제 활동에서 손을 뗀 적이 없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을 뿐이지 프리랜서 형태 또는 개인사업자로 꾸준히 일을 해왔고 고정적인 생활비에 일조하진 못하지만 내 용돈과 가계 대출 일부를 맡아 부담하고 있는 생활이 햇수로 5년 차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당분간은 하지 못하게 되어 우울감이 조금은 밑바닥에 깔려버렸다.
당장은 조산 위험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이고 출산과 회복 과정 중에선 그냥 뭐... 산 송장 같은 체력과 건강상태가 뻔히 예견되어 한몇 개월은 생존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을 상황이 불 보듯 뻔하다.
생산하는 삶.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다.
처한 상황이 바뀌어도,
아이가 생기고 퇴사를 하고 건강이 허락지 않고 나이를 먹고 훝날 충분한 부가 축적이 되더라도 형태만 바뀔 뿐 내 인생의 8할을 살아낸 그 순간까지 여전히 나는 생산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번외 이야기]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임신과 출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 라는 TV 프로그램을 재밌게 시청하고 있는데 문득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출산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이미 한 번의 자연 분만의 경험이 있는 내가 보기에도 괴롭고 고통스러움이 신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직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그렇지만 계획을 하고 있거나 또는 애를 낳을지 말지 고민 중에 있는 예비 엄마 아빠들이 봤을 땐 아기 낳는 것이 너무 싫어질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출산 장려 프로그램은 아닌 듯...?
애를 낳는 과정은 그 고통의 크기를 알고서는 감히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낳고 셋 낳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인데.
요즘 많이 거론되는 표현이 있다.
농경사회에서 아이는 생산재 =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노동력.
현대사회에서 아이는 소비재 = 돈 먹는 하마.
생산재와 소비재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경제용어일 뿐인데,
오죽 먹고사는 일이 팍팍하고 힘들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숭고한 일을 경제 용어로 나타내고 이해 득실만을 따지게 되었을까.
모든 삶에 애로사항 있고 힘듦이 있을 것인데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손해만 큰 것 같이 이야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누구보다 계산적이고 사회에서의 성공을 바라고 명함이 중요했던 내가 아이를 둘이나 낳고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되면서 경험하고 느끼는 이 삶의 대한 긍정적이고 '득'되는 사실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표현해 보고 싶은데 글 솜씨의 한계에 부딪혀 그러질 못하고 있다.
애를 낳으면 들어가는 돈이 생활비 얼마, 학원비 얼마, 일 년에 들어가는 돈 얼마 이렇게 숫자로는 명확하게 잘 표현이 되는 반면 새로이 경험하고 갖게 되는 감정, 성장, 관계등에서 얻게 되는 '이익'은 대체로 추상적이고 미사여구 같은 단어들이 지배적이라 이것만 가지고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납득시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글이나 말, 또는 문화적 장치로 긍정적인 부분이 좀 더 보여지길 바라고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사회적 시선 또한 점진적인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