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쉼, 네 번째 이야기
하얀 운동화를 좋아합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원피스를 즐겨 입고
겨울이면 목이 긴 장갑을 낍니다.
립스틱보다는 립밤을 좋아하고
날씨와 기분에 맞춰 향수를 고릅니다.
외면의 편안함은 제게 있어
쉼을 이루는 또 다른 조각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외면보다 내면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곤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명상을 하거나 일기를 씁니다.
그에 비해 외면을 돌보는 데에는 점점 인색해집니다. 피부의 탄력을 높이는 시술이나 늘어난 뱃살을 줄이는 운동처럼 '관리'에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나의 외면이 어떤 순간에 가장 자연스럽고 충만한 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해야 건강하듯 내면과 외면의 돌봄이 균형을 이뤄야 삶이 편해집니다.
H라인 스커트에 검은색 하이힐.
또렷한 눈화장과 정돈된 헤어스타일.
저는 언제나 캐주얼보다는 정장이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수적인 대기업에서, 외부에 얼굴을 내비칠 일이 많은 직무를 맡은 탓에 그런 차림은 어느새 저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직장을 쉬면서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건 바로 차림새였습니다.
블라우스는 티셔츠로, 정장 스커트는 트레이닝 바지로, 하이힐은 운동화로 바뀌었습니다. 캐주얼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입다 보니 저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을 보아왔는데도 저의 외면에는 숨겨진 이면이 있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너무 익숙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월의 흐름이나 살고 있는 환경에 따라 외면도 계속 변하는데 참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된 외면에 맞춰 차림새에 변주를 주었습니다. 화장을 덜어내고, 머리를 잘라보고, 옷장에 잠들어 있던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입어보았습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나다운 이미지 위에 새롭게 찾아낸 어울림이 겹쳐지며, 일상에 작은 활기와 생기가 피어났습니다.
우리의 외면은 내면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합니다.
내면의 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여야 마음을 이해할 수 있듯, 우리의 외면도 관심을 가지고 자주 살펴야 그 변화를 알아채고 반응해 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을 살피는 일을 뒤로 미루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앞서 복장부터 갖추듯, 쉼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외면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하루를 맞이할 때 쉼은 더 깊어지고 일상은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시간을 내어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한때는 인생템이었지만
요즘은 괜히 겉도는 옷을 입고 있나요?
얼굴은 분명히 달라졌는데 메이크업은
밀레니엄 시대를 맴돌고 있나요?
유행한다고 샀는데 어울리지 않아
당근 거래를 진지하게 고민 중인가요?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당신의 외면에게 말을 걸 때입니다.
변화된 외면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찾아주세요. 오랜 시간 쌓아온 나다움 위에 약간의 변주만 곁들여주세요.
옷장을 다시 열어 안 입던 옷들을 걸쳐보고, 고수하던 메이크업에도 살짝 변화를 주어 보세요. 외면은 생각보다 작은 시도에도 의외로 빠르게 반응합니다.
나의 외면이 마음에 들면, 하루는 조금 더 가볍고 즐거워집니다. 거울 앞에서 괜히 한 번 더 돌아봤던 스무 살의 그 설렘을, 지금의 나에게도 선물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