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쉼, 첫 번째 이야기
저는 인싸의 가면을 쓴 아싸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즐깁니다.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가수 김연자 씨 못지않게 마이크를 꺾어 쥐고, 결혼해듀오의 도움 없이도 일곱 쌍의 커플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다수가 참석하는 모임은 다소 부담스럽고, 에너자이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기가 소리 없이 빠져나가곤 합니다. 집에서 수면 양말을 신고 혼자 책을 읽는 시간, 이것이 제가 하루 중 가장 편안해하는 순간입니다.
스무 해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인싸로 사는데 익숙해졌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열정과 냉정의 가면을 수시로 바꿔 쓰며 업무를 추진했습니다. 무수히 반복되는 회의와 쉴 새 없이 쌓이는 이메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휴직을 하고 그에 이어 퇴사까지!
"일만 하던 애가 어떻게 살려고 그래? 집에 있을 수 있겠어?"
"집에만 있으면 사람이 괜히 우울해져. 밥 사줄게. 얼른 나와."
저의 인싸 생활에 익숙한 지인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고맙게도 걱정과 염려를 보내주었지만 저는 집에 있는 것이 진심으로 좋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 속에서 복작거리며 살아서인지 저는 원초적 본능에 따라 쉬는 기간만큼은 집순이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바람과 달리 인싸 생활의 여파는 오래갔습니다.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전화가 울렸고 카톡창도 수십 번씩 알람을 보냈습니다. 결국 저는 팔자에도 없는 해외체류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 외국 가. 몇 달 동안 한국에 없을 거야. 돌아오면 연락할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거짓말이지만 무작정 잠수를 타는 것보다는 지어낸 핑계를 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는 그렇게 은둔 생활을 누렸습니다.
매일 한 시간씩 걷고, 이틀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고, 가끔씩 사우나를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것 외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생계를 도와주는 당근거래 채팅창과 강의 의뢰 이메일 외에는 최대한 응답을 자제했습니다.
그래도 인싸 시절 버릇이 남아, 아이 엄마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교 활동을 경험하고 소중한 지인들과는 종종 얼굴을 보았지만, 그 빈도는 직장 생활을 할 때에 비할 바가 아니니 이제는 어느 정도 아싸 생활에 정착한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의 화두는 사람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사회초년생 시절 자기소개서에 적었던 문구처럼 저는 여전히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바람이 통할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꽉 끼는 옷을 입으면 숨이 막히는 것처럼 사람 간의 관계도 너무 꼭 붙어 있으면 그 진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저는 그동안 연을 맺었던 수많은 관계들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게 진심으로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웃는 얼굴 뒤에 구겨진 마음을 감춘 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관계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머문 시간은 외로움에 둘러싸인 고립의 경험이 아니라 관계가 맑아지고 넓어지는 정화와 확장의 기회로 남았습니다.
전화와 카톡으로 저의 생사를 확인해 준 지인들에게는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이 남았지만, 그래도 아싸로 살아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올해는 경제적인 이유로 집에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이번 경험을 잊지 않고 관계의 쉼을 잘 활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지인들 중에는 브런치 구독자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생존 신고를 해봅니다.
저 한국에 있습니다.
집에서 잘 살고 있어요.
부르면 나갈테니 편히 연락 주셔요.